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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족


  • ISBN-13
    979-11-306-5246-7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다산북스
  • 정가
    18,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5-03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박경리
  • 번역
    -
  • 메인주제어
    소설: 일반 및 문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박경리 #장편소설 #뱁새족 #소설: 일반 및 문학
  • 도서유형
    종이책, 양장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33 * 215 mm, 220 Page

책소개

“삶에 고통이 없었다면, 문학을 껴안지 못했을 것이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또 다른 걸작 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아우르며 격변하는 시대 속 한민족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하소설 『토지』. 한국 문학사에 다시없을 걸작을 남긴 작가 박경리의 장편소설이 다산책방에서 새롭게 출간된다. 원전을 충실하게 살린 편집과 고전에 대한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부수어줄 디자인으로 새 시대의 새 독자를 만날 준비를 마친 이번 작품은 『뱁새족』이다. 당대를 풍미한 1960년대 지식인의 허영과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꼬집으며,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무한루프”를 그리는 ‘뱁새족’의 욕망과 삶을 들여다본다. 박경리만의 위트와 유머 감각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을 통해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생동하고 있는 박경리 문학의 힘을 느껴보길 바란다. 출판사 리뷰 “제 삶이 평탄했다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삶이 문학보다 먼저지요.” 고전의 품격과 새 시대의 감각을 동시에 담아낸 박경리 타계 16주기 추모 특별판 1957년 단편 「계산」으로 데뷔해, 26년에 걸쳐 집필한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이정표를 남긴 거장 박경리. 타계 16주기를 맞아 다산북스에서 박경리의 작품들을 새롭게 엮어 출간한다. 한국 문학의 유산으로 꼽히는 『토지』를 비롯한 박경리의 소설과 에세이, 시집이 차례로 묶여 나올 예정인 장대한 기획으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누락과 왜곡 없이 온전하게 담아낸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번 기획에서는 한국 사회와 문학의 중추를 관통하는 박경리의 방대한 작품들을 한데 모아 구성했고, 새롭게 발굴한 미발표 유작도 꼼꼼한 편집 과정을 거쳐 출간될 예정이다. 오래전에 고전의 반열에 오른 박경리의 작품들은 새롭게 읽힐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번에 펴내는 특별판에서는 원문의 표현을 살리고 이전의 오류를 잡아내는 것을 넘어, 새로운 시대감각을 입혀 기존의 판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을 선보인다. 이전에 박경리의 작품을 읽은 독자에게는 기존의 틀을 부수는 신선함을, 작품을 처음 접할 독자에게는 고전의 품위와 탁월함을 맛볼 수 있도록 고심해 구성했다. 이전의 고리타분함을 말끔하게 벗어내면서도 작품 각각의 고유의 맛을 살린 표지 디자인으로, 독서는 물론 소장용으로도 손색이 없게 했다. 한국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이름, 박경리 문학의 정수를 다산북스의 기획으로 다시 경험하길 바란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지식인과 상류층의 위선과 허영을 꼬집는 박경리의 내공 있는 위트와 유머 다산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된 『뱁새족』은 박경리의 또 다른 걸작이다. 이 작품은 1967년 6월 16일부터 9월 11일까지 《중앙일보》에 약 3개월간 연재(총 75회)되었으며, 이후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파리로 미술 유학을 다녀온 ‘유병삼’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1960년대 상류사회의 세태’를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팽개치고” 어쭙잖게 ‘미술평론가’라는 “상표를 붙인” 자신의 삶마저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이 같은 태도는 타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그 잣대는 특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골육”인 누이 ‘유 여사(유신애)’에겐 더욱 명민하고 신랄한데, 틈만 나면 가차 없이 면전에서 그녀의 속물성을 까발리기 일쑤다(“귀부인이고저 하고, 여류 명사이고저 하고, 청렴결백한 인격자이고저 하는 그 화장이 너무 짙어서 회벽이 되었다면, 그건 흉물이지 어디 미인이라 할 수 있겠어요?”). 그의 냉소적인 시선은 작가의 그것과 맞닿아 있다. “눈앞에서 황금덩이가 번쩍번쩍하는데 구경만 하고 있으려니까, 답답하고 조갈증이 나서 저러는 거”라며, 주변인들이 욕망의 노예가 되어 끝없이 탈주하는 광경을, 부부간에서조차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지며 속물적인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속속들이 펼쳐놓는다. 처세에 능하지도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도 못하는 유병삼에게 “단순하고 배짱 좋고 만사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약고 재빠르며 능청스런 그네들”, 즉 뱁새족은 경멸의 대상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들과 “공범자”가 되지 않고서는 대학에 변변한 자리 하나 얻을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뱁새족)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연줄과 재력, 심지어 결혼까지 이용해 어떻게든 ‘황새’가 되어 더 높은 계급, 계층으로 도약하려 고군분투한다. 그리고 그러한 헛된 노력들이 전부 수포로 돌아가면서 절망에 빠진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들 눈에는 그들의 비극적 삶이, 채플린의 영화처럼 한 편의 희극으로 느껴질 뿐이다. 기존 출간된 박경리의 장편들은 비극적인 연애나 결혼, 한국전쟁, 전쟁미망인의 삶 등 다소 밀도 있는 서사와 묵직한 주제의식을 담아낸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면, 『뱁새족』은 그와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다. 작가의 현대적 감각과 유쾌한 필치,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박경리 문학의 색다른 매력과 그의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허기가 들어서 저러는 거다…… 욕망 무한, 실로 욕망 무한이로다.’ 교활함은 필수, 교양과 체면은 선택 순진하고 정직한 것이 ‘악덕’이 된 사회 다섯 개의 장 중에서도 특히 「3. 객실 풍경」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장에서는, “이사장님 댁 사모님”이자 외양부터 “돈이 남아돌아가는 계층의 여성”인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은숙 여사’의 주도로 그녀의 집에서 파티가 열리는데, ‘뱁새족’들이 각자의 속내를 감추고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세상을 살아가려다 보면 때론 “원수 같은 사람도 친한 체하고 가까운 사람도 먼 것처럼 꾸미는 일”이 허다하며 “소위 정치의 냉혹함과 마찬가지로 사교계에 있어서도 그 이치가 통”용된다. ‘은애 여사’는 상당한 재력과 연줄을 쥔, “재빠른 계산”과 “결코 현실을 거역하지 않는 약삭빠름”, “하찮은 것이라도 목적을 정하기만 하면 그것을 위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가짜배기 자존심”을 장착한 ‘최상위 포식자’다. 병삼은 누이의 ‘영리함’과 “권력과 금력, 명성이 지닌 권위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그 현실성과 바탕에 착한 면이 있어 음모를 꾸미는 일이 없고 중상모략을 깊이 삼가는 그 신중성이 신뢰를 얻”어 그녀의 신임을 얻었을 거라 판단한다. 유 여사는 은숙에게 기대어, 동생 병삼의 교수직과 더불어 은숙의 동생이자 미국서 유학한 디자이너 ‘은애’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싶어 한다. 병삼은 이를 부정하지만, 그 역시 당대의 ‘뱁새족’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누이가 마련해놓은 기반 위에서 생활하면서 “재능도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인 병삼을 포함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그러하다.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인 M대학 교무처장 ‘홍재철’, 정략결혼도 불사하고 “남의 재산을 계산”해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업가 ‘박영수’, 전직 고관에 “국회 출마, B당의 공천을 노리”면서 “건달”처럼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고” 아내 몰래 “살림을 차린 여자”가 있다는 ‘차영호’, 현실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고 “사랑의 순결을, 사회의 정의를 목마르게 외치”는 시대착오적인 친구 ‘양두연’, 여배우가 “용모도 연기도 신통치 않”으면서 “정조만 제공하면 황홀한 스타의 자리를 차지할” 거라는 착각에 빠진 두연의 정인 ‘강순미’, “사십을 넘은 황혼의 미모”를 무기로 또 한 번 인생 역전의 “호사를 바라보는” ‘김윤이’, 웃음을 팔아 모은 “한밑천으로 사내 발목을 묶어놓”고 “어부인으로 승격”되리라 믿는 요정의 마담……. 사실상 이들 모두가 뱁새족이며, 이는 우리 사회를 이루는 모든 구성원들이 ‘뱁새족’이나 다름없음을 작가가 선언한 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박경리는 자신마저도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던 듯하다. 연재에 앞서 그는 ‘작가의 말’(《중앙일보》 1967년 6월 14일자)에서 이렇게 술회한 바 있다. “작중인물 중 단 한 사람이라도 쭉 뻗은 성격을 그리고 싶었”으나, “끝내 모든 등장인물은 희화로 멀어지고 맹렬히 조롱할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 괴롭다”고, “남의 이야기인 동시, 지금 이 시점에서 남들과 함께 열심히 뛰고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의 경우도 물론 조롱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며 자화상임을 어찌 부정하겠”느냐고 말이다. 모두 “피투성이”가 되어 “물고 뜯고 싸우는 세상”, 하지만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의 밤은 찬란하여 불빛과 별빛이 꿈같”다. “이 땅이 가난한가? 천만의 말씀이다. 판잣집도 지게꾼도 보이지 않는 서울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광대이기 때문에 슬픈 거다…… 슬프고 비참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웃기겠는가.’ 예술가에게 고독이란 형벌이 아닌 창조의 근본 박경리가 그린 예술가의 고뇌 『뱁새족』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예술가소설’로서의 한 측면이다. 병삼은 S대학 강사일 적에 친구 ‘양두연’의 부탁을 받는다. 두연이 자신이 운영하는 극단 운영 자금을 마련하는 일을 도와달라기에, “이름 석 자를 대면 제법 알아보는 실업가의 저택”에 그림을 봐주러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말실수를 하는 바람에 “약장수” 꼴이 되어 망신만 당한다. 그 기억이 잊힐 즈음, 그 집 딸이 자신의 수업에 들어오면서 소녀가 자신을 볼 때마다 “순 엉터리, 약장수, 겉멋 들린 건달이”라고 하는 환청에 시달린다. 결국 그는 그림 장수 짓을 한 과거의 일이 부끄러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그 자리를 그만두고 방황하게 된다. 후반부에서 유병삼이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날 당시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그는 “고독하게, 철저히 고독하게 작품과 대결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것은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을 향하여 한국을 떠났”지만, “철저히 고독할 수도 없거니와” “이방의 거리를 헤매는 것은 무서웠고, 낙엽을 밟으며 혼자 가는 마음에는 절망 이외 아무것도 없었”으며, “더러운 다락방은 자살 아니면 미칠 것 같은 충동을 주었다”고 고백한다. 재능에 대한 불신으로 괴로워하는 젊은 예술가의 절망과 고독, 우울과 자살 충동 등 ‘예술가소설’에서 나타나는 ‘예술가의 고뇌’가 엿보인다. 고독과의 대결이 절망이며, 그 끝에서 예술을 버린 일은 유병삼의 성격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이 ‘고독’은 작가 박경리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던 것 같다. “고독하지 않고 글을 쓴다면 참 이상한 일 아닙니까?”라며 박경리 역시 예술가에게 고독은 창조를 낳는 “틀이며 본(本)”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두연은 낙향하고 병삼은 ‘화상(畫商)’이 되는 것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역시도 작가로서의 삶이, 예술가로서의 욕망이 실현되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그것은 고독과 절망, 창조에 따르는 고통의 무게를 견딘 후에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임을 넌지시 던지는 메시지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1. 유신애의 집 2. 매만 보고 가는 사나이들 3. 객실 풍경 4. 아마릴리스 5. 다이아몬드와 오물차 작품 해설

본문인용

“내가 여기저기 줄을 놓아서 마련한 자리를 떠밀어내도 안 나와야 하는 건데 뭐가 잘났다고 사표를 내고, 한다는 소리가, 아이구 기가 막혀. 그래 불란서까지 갔다 와가지고 시민금고냐? 차라리 노랑 바가지 쓰고 시청 앞에 가서 길이나 쓸어라. 아이 치사스럽다!” 조그마한 주먹을 쥐고 열이 나 못 견디겠다는 듯 유 여사는 동생을 노려본다. 순간 병삼의 눈이 싸늘해졌다. 칼끝처럼 날카롭고 잔인한 눈에 장난기나 조롱 같은 것은 싹 가셔졌다. [……] “남의 앞에서 화장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귀부인이고저 하고, 여류 명사이고저 하고, 청렴결백한 인격자이고저 하는 그 화장이 너무 짙어서 회벽이 되었다면, 그건 흉물이지 어디 미인이라 할 수 있겠어요?” 21쪽 “이제 부자들도 고상해질 시기가 오지 않았습니까?” 아차 이것은 오발이었구나 생각했을 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부인은 완연히 불쾌한 낯빛이었고 양두연은 당황한 나머지 지금껏 마시고 반쯤 남은 커피에다 설탕을 처넣으며 범벅을 만들고 있었다. 부인은 무슨 생각을 했던지 불쾌한 낯빛을 펴고, “그럼, 여태까지 부자들은 모두 천박했었다는 얘기가 되겠군요.” 멋쩍은 듯 웃었다. 그만해두었음 좋았을 것을, “아아, 아닙니다. 저, 그, 그 벼락부자 말이죠. 아니 저 해방 후 탄생한, 아니 전후에 탄생한 부자들 말입니다.” 이거 나올 돈도 안 나오겠다 생각하니 병삼은 초조했던 것이다. 양두연의 얼굴은 시뻘겋게 변해 있었다. “우린 해방 후의 부자예요. 아니 육이오동란 후죠, 정확히는.” 부인은 피부를 바늘로 찌르듯 말했다. 40쪽 모두 한결같이 웃고 있었다. 슬픔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들은 얼굴을 주워 모아 웃기고 있는 만화의 한 컷 같았다. ‘단순하고 배짱 좋고 만사를 자기 편리한 대로 해석하고 약고 재빠르며 능청스런 그네들…….’ 여자들의 얼굴이 지워지자 안가의 얼굴이 대신 솟았다. 비애에 젖은 것 같은, 심약하게 깜빡이던 안경 속의 눈. ‘고독한 사나이다. 소심하고 복잡하며, 뽐내고 등쳐먹고 굽실거리는, 그래도 슬프니 말이다. 광대이기 때문에 슬픈 거다. 광대는 자고로 남자였었다. 여자는 아름다워야 노리개가 되고 남자는 병신에다 못나야만 노리갯감이 된다. 슬프고 비참하지 않고서 어찌 남을 웃기겠는가.’ 65쪽 “왜 그네들을 딴따라라 합니까? 오히려 딴따라였던 그 옛 시절엔 그들 자신에게 낭만 같은 것이나마 있었습니다. 기분에 취할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이야 딴따라도 못 됩니다. 도떼기시장 판의 장사꾼이죠. 장사꾼 손끝에서 예술이 나오겠습니까? 예술은 부재입니다. 예술은 빈사 상태입니다. 누구든 나와야죠. 사명감을 갖고 나와야 합니다. 배우도 감독도 제작가도, 모든 면에서 미쳐 돌아가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대담하게 개성을 찾아야 합니다. 배우만 해도 안 그렇습니까? 배우는 인형이 아닙니다. 살아 있는 생명, 그 발랄한 생명이 어디 숨어 있는가, 그것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강렬하게 표출해야 합니다…….” 두연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는 목마른 것도 잊었는지, 침을 튀기며 내리 지껄이는 것이었다. ‘미쳐나는군, 미쳐나. 좋다. 그런 식으로나마 배설을 해보아라. 공수표면 어떠냐. 기집앨 잡아서 모가지를 비트는 것보담은 낫다. 콩밥 먹을 염려도 없고.’ - 90쪽 “박영수 씨가 학생회장으로 있을 때 나는 벌써 그가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간파했거든. 어느 길에서든 그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돈 있는 여자만 낚으면 틀림없지.” “그 면을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야. 그의 첫 번째 결혼이 정략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나 사나이는 클려면 그래야 하는 거구, 그만한 양심의 묵살쯤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부도덕? 개나 먹으라지. 소인배가 무서워하는 말이지. 부도덕? 자넨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지? 박영수 그 새끼 믿을 만한 위인 이 못 된다구. 시저…… 음, 응, 우리 같은 어디 인간에게만 그런 줄 아나? 나폴레옹, 히틀러는 모두 성인군자였었나? 수천수만의 인간을 살육한 그들이야말로 도덕적 척도에서 본다면 극악분자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은, 그리고 역사는 그들을 영웅이라 한다! 가치의 우위에서 열성을 잡아먹는 것은 보다 큰 가치 확립을 위해 소위 필요악인 것이다! 삼라만상은 그 원리 원칙에서 순환하고 있는 거야.” “흠, 한국의 라스콜니코프가 나타났군. 그런데 자네 언제부터 웅변을 배웠지?” - 93쪽 “어쩌면 그리 감쪽같으니?” “가발 같지 않지? 글쎄, 말도 말어. 이젠 식모까지 미니컷이란다. 온 창피스러워서, 모두들 원숭이처럼 흉내는 자알 내지. 처지도 모르고, 어울리고 안 어울리는 것 가릴 것 없이, 줄에 엮은 동태처럼 너도나도야. 외국에선 유행이라면 상류사회를 돌다 마는 건데.” “그러니까, 뱁새가 황새 따라갈려면 가랑이가 찢어진다잖어.” 107쪽 항간에서는 요즘 삼종(三鐘)의 신기(神器)라는 말이 나돌고 있는 모양이다. 대일본제국의 왕통의 상징인 삼종의 신기를 유행어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해방의 덕분이겠는데 그 삼종이 뭔고 하니 텔레비전과 냉장고, 피아노? 이것이 소위 잘 산다는 상징으로써 중류 이상으로 기어 올라가려는 계층에게는 신기와 맞먹는 위력을 갖는 모양이다. 여자 사기꾼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빌려서라도 끼어야 하고 남자 사기꾼은 세놓는 자가용을 얻어서라도 타야 하듯이 가구의 단가에 따라 상·중·하가 형성되는 판국에 신기 운운은 그럴싸한 얘기겠고 따라서 평생 가야 뚜껑을 열지 않을 피아노도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뭐 그렇다고 은숙의 저택이 저속하여 헐뜯자는 것은 아니다. 삼종의 신기를 아득히 넘어선 지 오랜, 명실공히 상류층의 교양 있는 가정인 것만은 틀림이 없으니까. 109쪽 ‘파리 갔다 온 화가구 미술평론가야. 대학의 교수직도 싫다고 그만두었지. 재산이 상당하거든. 게다가 멋쟁이구, 나이 틀린다고 싫다 했는데 그까짓 무슨 상관이냐구 결혼하자는 거야. 예술가니까 자유지. 날보구 뭐래는 줄 알어? 완전히 예술품이래. 그것도 생명이 있는 예술이라나? 호호…….’ 친구한테 자랑을 늘어놓은 것이 바로 엊그제였었는데, 윤이는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해서 병삼에게 항의할 하등의 건더기도 없었다. 그렇게 믿은 것은 자기 자신의 잘못이었다. 아니 그렇게 믿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윤이는 마음속으로 병삼의 흠을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 말랐다는 둥, 나이 젊다는 둥 자기를 위해 큼지막한 선물을 주지 않는다는 둥 하며. 꿈엔들 병삼의 입에서 결혼하라고 타이르는 말이 나올 줄 알았으랴. 사랑은 오직 받는 거로서 주는 것을 몰랐던 윤이는 또한 자기의 불행도 자각할 수 없는 아름다운 피에로였던 것이다. 161쪽 병삼은 홍등가처럼 등불이 켜진 무슨 궁 옆을 지나서, 그러나 힐끗힐끗 뒤돌아보며 그 쩨쩨하고 교태 어린 선들을 먹으로 북북 지우고 몇 개만 남겨본다. 물론 마음속으로. ‘우리 조상님들은 그러고 보니 선에 대한 감각, 그거 천재였던 거야. 짜장면집 접두 양식과 일본식 유흥가의 등불과 구미의 공장지대…… 그런가? 색채도 모양도 범벅이다. 잡화상이다. 곡마단의 빛깔도 전통이 있는 법인데 민주주의니 할 수 없지. 술이 오르네? 웬일일까? 우중도 많으면 이긴다. 진리는 다 수에서 탄생하게 마련이요, 그러니 힘철학의 논법도 생기는 거지. 역학이 진리로다. 사람의 마음 같은 것, 개나 먹으라지.’ 163쪽 “일생일대의 모험을 앞두고, 그거 아셔야 합니다. 행운이란 잡는 것도 한순간. 잃는 것도 한순간이니까요.” “뭐라구요?” 강한 반응이 왔다. “솔직히 말씀드리죠. 나는 박 사장이 은경 씨하고 결혼하는 데 대해 아무 이의가 없소. 그리고 둘째로 박 사장께서 양두연에게 베푸신 관심을 현실화하라는 거요. 오늘 요정 낙산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두연 군과 함께 영화 문제를 논의했거든요.” “낙산!” “그곳에도 약혼자가 한 분 계시더군요.” 병삼은 수화기를 놓았다. 그리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돌면서 웃어젖힌다. 167쪽 “좋습니다. 말이야 바로 하지, 원작료를 받는다는 것은 고마운 이야기죠.” 장일 씨의 뜻하지 않은 저자세에 두연은 다소 어리둥절해한다. “작품을 여기저기 뜯어서 훔쳐 먹는 판국에 원작료라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이야기요?” 뒤의 말은 맵싸했다. 173쪽 파리에서 자취하던 시절이 바람처럼 그의 뇌리를 쓸고 지나갔다. [……] 한국을 떠날 때 그는 아는 사람 없는 이방의 거리를 혼자 거닐고 있을 자신을 상상하며 희열에 떨었던 것이다. 고독하게, 철저히 고독하게 작품과 대결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것은 오랜 꿈이었고 그 꿈을 향하여 한국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고독할 수도 없거니와 고독은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방의 거리를 헤매는 것은 무서웠고, 낙엽을 밟으며 혼자 가는 마음에는 절망 이외 아무것도 없었다. 더러운 다락방은 자살 아니면 미칠 것 같은 충동을 주었다. 이런 현상은 재능에 대한 불신에서 온 것이었다. 어쩌면 파리에서의 생활은 자살에의 충동에서 늘 도망치는 그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절망과 자살에의 충동을 극복했을 때, 병삼은 화필을 버렸고 성격에는 엄청난 변화가 왔다. 오늘의 병삼으로 변모한 것이다. [……] 옛날같이 어딘지 모르게 격렬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179쪽 “진실이 모욕이 되는 세상이죠. 뭐 오늘날만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가랑이가 찢어져도 황새를 따라갈려는 뱁새의 비극은 바로 그것이 희극이라는 데 있죠. 재능이 없으면서 천재가 되어보겠다고 파리까지 비싼 여비 쓰고 갔다 온 놈을 위시하여 돈푼이나 긁어모은 상놈이 어느 명문 호적에 기재된 이름 석 자밖엔 가진 것 없는 거지 처녀를 비단에 싸서 데려오는 위인, 졸업장 한 장 우물쭈물 얻어둔 덕택으로 학자 행세하게 된 인사, 남의 재산을 계산하고 장래의 대재벌을 꿈꾸는 사람, 사업가 호주머니 털어서 여자나 끼고 다니며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를 넘보는 건달이, 남들은 천 미터 지점을 통과하고 있는데 겨우 백 미터 지점에서 허둥지둥 뛰면서 사랑의 순결을, 사회의 정의를 목마르게 외치는 전 시대적인 친구, 어디 그뿐인가요?” 194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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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저자 : 박경리
박경리 朴景利 (1926. 12. 2.∼2008. 5. 5.)
본명은 박금이(朴今伊). 192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1955년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단편 「계산」으로 등단, 이후 『표류도』(1959), 『김약국의 딸들』(1962), 『시장과 전장』(1964), 『파시』(1964~1965) 등 사회와 현실을 꿰뚫어 보는 비판적 시각이 강한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69년 9월부터 대하소설 『토지』의 집필을 시작했으며 26년 만인 1994년 8월 15일에 완성했다. 『토지』는 한말로부터 식민지 시대를 꿰뚫으며 민족사의 변전을 그리는 한국 문학의 걸작으로, 이 소설을 통해 한국 문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거장으로 우뚝 섰다. 2003년 장편소설 『나비야 청산가자』를 《현대문학》에 연재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중단되며 미완으로 남았다.
그 밖에 산문집 『Q씨에게』 『원주통신』 『만리장성의 나라』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 『생명의 아픔』 『일본산고』 등과 시집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우리들의 시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등이 있다.
1996년 토지문화재단을 설립해 작가들을 위한 창작실을 운영하며 문학과 예술의 발전을 위해 힘썼다. 현대문학신인상, 한국여류문학상, 월탄문학상, 인촌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칠레 정부로부터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문학 기념 메달을 받았다.
2008년 5월 5일 타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문학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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