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아픈 역사를 가졌던 공간
‘우리 땅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땅이 아니었던 백만 평의 너른 평야.’
이 책의 지은이 안선모 작가는 전작인 굿바이 미쓰비시에서 일제 강점기 조선 최대 조병창과 미쓰비시 줄사택에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렸다. 그리고 이 책 《오빠는 하우스보이》에서는 그 조병창 부지가 해방 후 미군 기지 애스컴으로 바뀌는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어린시절 미쓰비시 줄사택에 살았던 작가는 하우스보이 경험이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또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우리가 주인이 되지 못했던 우리 땅과 그럼에도 삶을 살아내야 했던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다.
일제 강점기 시절 부평에 위치한 일본군의 인천육군조병창 부지는 해방 후에는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하며 애스컴이라 명명한다. 우리 땅이지만 여전히 그 땅의 주인은 우리가 되지 못한 것이다. 6.25전쟁 이후 미국은 계속 주둔하면서 피폐해진 우리나라에 물자와 기술을 지원하였는데 물자가 풍부한 미군 기지를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미군이 먹다 남은 잔반으로 만든 꿀꿀이죽부터, 미국의 밀가루 원조 상징인 일명 ‘악수표 밀가루’, 대중음악인의 꿈의 무대였던 미8군 밴드, 미군을 상대해야 했던 양공주까지 1960년대 생활상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소중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저마다의 치열한 삶에 경의를 표한다.
“웅기야, 미군 부대에는 네 또래 아이들도 많아.”
“하우스뽀이 말하는 거죠? 하우스뽀이는 무슨 일을 해요?”
《오빠는 하우스보이》의 시대적 배경은 5.16 군사정변 이후 1962년부터 1969년까지다.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는 격변기였으며 경제적으로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혼돈의 시절이었다. 세상은 혼란스럽지만 평범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차분하기만 하다. 살기 위해, 때론 가족을 위해 주어진 일상을 묵묵히 수행하는 구도자의 삶처럼 보인다.
1호부터 10호까지의 줄집마을은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인물들이 스쳐 간다. 호기심이 많아 이웃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하고 신기한 주인공 선기,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밥벌이와 살림을 도맡아 하는 엄마, 책상 귀신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큰오빠 명기.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속이 깊어 가족을 위해 하우스보이가 되고자 하는 작은오빠 웅기. 언니 선기보다 더 크고 단단한 동생 정기. 이들의 일상은 힘들지만 정겹기만 하다.
미군 부대 식당에서 일하는 1호집 아저씨. 아저씨가 밀가루 포대를 털어내는 장면은 눈앞에 생생하다.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잔반으로 만든 꿀꿀이죽과 밀주를 만들어 파는 돼지댁, 세상의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던 양공주 예분 언니, 노름꾼 아버지 밑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은자 언니, 그리고 미8군 공연무대에서 서는 게 꿈인 재학이 오빠까지 때론 사는 게 힘에 부치지만 하루하루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 누구 하나 삶의 무게에 작고 가벼운 것이 있으랴. 하지만 저자는 이들의 삶을 담담히 표현한다. 이들의 삶을 옳다 그르다, 잘했다 잘못했다 표현하지 않는다. 아마 그들의 삶이 모두 소중하고 저마다 치열한 삶을 사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은 아닐까?
1960년대 격동의 시대, 역사를 돌아보는 재미
《오빠는 하우스보이》에는 역사를 돌아보는 재미가 있다. 1960년대 개봉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월하의 공동묘지〉, 라디오 드라마 〈섬마을 선생님〉 등 역사적 장치를 곳곳에 두어 찾아보는 재미를 갖게 한다. 또한 하우스보이라는 시대적 특수성을 보여준다. 하우스보이는 6.25 전쟁 이후 우리나라에 주둔한 미군의 개인적인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남자아이로 점차 우리나라가 안정이 되고 정식 채용 절차가 정착되면서 사라진
직업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통해 경험하는 하우스보이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고 특별하다.
선기의 당당함이 지금 시대 청소년의 모습에 투영된다.
매사 호기심이 많으며 세상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지 않는 당당한 선기의 모습에서 지금 시대 청소년의 모습을 보게 된다. 아들을 중시하는 풍조에 분노하며, 양공주이지만 더할 나위 없이 친절한 예분 언니 그리고 예분 언니 남편 미군 제임스에게 어떠한 편견 없이 똑같은 사람임을 느끼는 주인공 선기의 모습에서 현재를 사는 청소년의 모습이 비친다.
‘왜 아버지는 자신이 하우스보이였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거지?’
그건 아마도 이 땅에 들어와 주인처럼 군림했던 미군들의 뒷바라지를 했다는 사실 때문 아닐까요? 자존심 강한 아버지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구십을 훌쩍 넘은 아버지를 보면서 한 소년이 떠올랐어요. 가난했지만 비굴하지 않았고 자신의 미래를 개척할 줄 알았던 소년.‘
〈작가의 말〉 중에서
이오앤북스 청소년문학 시리즈
IT 강국, K팝, 한류 등 문화 강국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룬 대한민국.
이오앤북스 청소년문학 시리즈는 오늘의 삶이 있기까지 시대별로 과거 청소년들의 삶을 되돌아 보며 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가고자 기획한 청소년 역사문화 시리즈이다.
물질은 더 풍요로워졌지만 더 많은 고민과 갈등,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요즘 청소년. 이들 청소년에게 1960년대부터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시대별 청소년들의 삶을 통해 오늘의 눈부신 발전과 풍요로움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시대적 아픔을 겪어왔기에 가능했던 것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