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 백작이 마조람 저택에 불을 질렀다. 창고를 가득 채우던 기름을 다 쏟아부은 터라 불은 쉽게 꺼지지 않고 제법 오랫동안 건물을 불태웠다. 때마침 장대비가 쏟아지지 않았다면 불이 바람을 타고 근처 숲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_7쪽(『나쁜 시녀들 4』)
높이 새가 날았다. 배에서 내린 데네브라의 시선이 새를 따라 움직였다.
그녀는 티타니아를 넘지 않고 해로를 통해 오르테가에 왔다. 3척의 거대한 배가 황비와 그녀의 일행을 태우고 움직였다.
그녀를 마중 나온 건 카루스 란케아와 남부 함대 기사단, 그리고 오르테가의 귀족 아르테 백작이었다.
데네브라는 카루스를 발견하자마자 오직 그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 선명한 희열이 떠올랐다. 몸을 움트는 바다처럼 온갖 감정이 싹을 틔웠다. 그중엔 사랑과 기쁨도 있었지만, 증오와 원망도 있었다.
_111쪽(『나쁜 시녀들 4』)
“내 마음이 가짜라서 그가 관심을 주지 않는 거라고?”
“당신은 그분을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네가 그걸 어찌 알지?”
“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소유하고 괴롭히고 싶잖아요. 서로에게 고통뿐인 감정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겠어요. 사랑은 쟁취하는 게 아니에요. 카루스 님은 전리품이 아니고요.”
_118쪽(『나쁜 시녀들 4』)
블라이스가 계속 율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를 찾는 듯 손을 움찔거리기도 했다.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카루스와 레위시아, 바바슬로프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율리아가 그에게 말했다.
“저 여기 있어요.”
그러자 블라이스가 희미하게 웃었다. 처음 보는 미소였다. 능글맞거나 교활해 보이지 않는, 다정한 미소.
율리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_274쪽(『나쁜 시녀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