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이야기를 계속 떠올리다 보니 할머니 어렸을 때 생각이 잠깐 나는구나. 밖에는 눈이 펑펑 내리고 아랫목은 잠이 솔솔 올 만큼 따뜻했더랬지. 그런 날 밤 할아버지 무릎을 베고 누워 옛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문밖에는 눈이 내리고, 마당에는 호랑이도 다녀가고, 꾀 많은 토끼도 다녀가고, 눈이 선한 노루가 긴 목을 빼고 기웃거리는 거 같았어. 한바탕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착해진 마음으로 따뜻한 안방에서 잠이 들곤 했단다. 그리고 꿈속에서 호랑이도 만나고 노루도 다시 만나며 지혜와 용기를 배우곤 했었지. 오늘 밤 너희들 꿈속에는 누가 찾아올지 궁금해. 그 꿈이 얼마나 신날지도. -〈작가의 말〉 중에서
“우리 서로 방귀도 텄으니, 내가 이 편의점의 비밀을 하나 알려 줄까?”
“비밀이요?”
별이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반짝 빛냈어요.
“그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란다. 넌 이 편의점에 과자만 있는 줄 알고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런데 사실 이 편의점에는 과자 말고도 주먹만 한 아이도 살고 있고, 꽁지 닷 발, 주둥이 닷 발인 새도 살고 있단다. 두꺼비와 구렁이도 살고 있고, 해와 달이 된 오누이도 살고 있고, 아참, 방귀쟁이 며느리도 살고 있지.”
“어디요? 어디 살고 있어요?”
별이는 고개를 갸웃했어요. 아무리 둘러봐도 평범한 편의점이었어요. -〈프롤로그〉 중에서
그날 오후 며느리는 이제 방귀를 뀌겠다며 식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어.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시동생까지 다 모였지.
“그럼 이제 방귀를 뀌겠습니다. 모두 꽉 잡으세요!”
며느리는 이렇게 말한 뒤 참았던 방귀를 뀌었어.
“뿌우웅-뿡!”
그야말로 벼락같은 소리였어. 그뿐인 줄 알아? 방귀 소리에 문고리를 붙잡고 있던 시아버지는
문짝과 함께 마당으로 우당탕 나가떨어지고, 솥뚜껑을 붙잡고 있던 시어머니는 솥뚜껑과 함께
훌쩍 솟아올랐다 떨어지며 엉덩방아를 쿵 찧었어. 기둥을 붙잡은 남편도 풍경처럼 뱅글뱅글 돌고, 오동나무를 붙잡은 시동생도 나뭇잎처럼 팔랑팔랑댔어.
“아, 시원해!”
방귀를 뀐 며느리는 얼굴이 다시 발그레해졌지만 집안 식구들 얼굴은 새파래지고 말았지.
-〈방귀쟁이 며느리〉 중에서
오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달려간 호랑이는 엄마인 척 문 앞에서 아이들을 불렀어.
“얘들아, 엄마 왔다. 어서 문 열어라.”
여동생이 냉큼 문을 열려고 하자 오빠가 말렸어.
“잠깐! 엄마 목소리가 아니야.”
창호지에 구멍을 뚫고 내다보니 호랑이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지 않겠어?
오빠가 도망갈 궁리를 하며 호랑이에게 말했어.
“우리 엄마가 맞는지 보게 손을 내밀어 보세요.”
호랑이는 문틈으로 앞발을 척 내밀었어.
“우리 엄마 손이 왜 이렇게 누렇게 됐지?”
아이들이 의심하자 호랑이가 변명을 했어.
“장에서 황토로 벽을 발라서 그렇단다.”
하지만 아이들이 엄마 손을 몰라볼 리 없지.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