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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기술관료주의

동아시아 탄소 중독의 기원과 종말을 찾아서


  • ISBN-13
    979-11-91383-45-4 (93910)
  • 출판사 / 임프린트
    빨간소금 / 빨간소금
  • 정가
    32,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4-24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빅터 샤우
  • 번역
    이종식
  • 메인주제어
    역사
  • 추가주제어
    환경 , 환경지속
  • 키워드
    #역사 #환경 #환경지속 #푸순 탄광 #만주 #석탄 #에너지 #석유 #동아시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52 * 225 mm, 544 Page

책소개

동아시아 최대 탄광도시 푸순의 놀라운 역사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

 

푸순은 과거에 ‘만주’라 불린 중국 둥베이(東北) 지역의 가장 남쪽에 있는 랴오닝성에 있다. 이 도시의 지하에는 막대한 양의 석탄이 들어 있다. 20세기 전반기에 푸순 탄광을 경영한 일제 기업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등장과 더불어 대규모 석탄 채굴 산업이 발전했다. 1933년에 푸순은 만주 석탄 생산량의 4/5, 일본 본국과 식민지 전체에서 생산된 석탄의 1/6을 책임지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에너지 제국의 칠흑의 심장, 그곳이 바로 푸순이었다.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이었던 푸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의 지독한 의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제국 일본에서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여러 정치 체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바로 국제 경쟁과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자원 자립에 대한 국가주의적 집착 속에서 석탄 중심의 개발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막심한 생태 및 환경 파괴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특히 석탄 에너지를 이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입은 피해를 강조한다. 과도한 탄광 굴착이 초래한 위험 속에서 언제나 높아져만 가는 채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렸던 노동자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

목차

추천사

한국 독자들에게

 

서론 탄소 기술관료주의

1장 수직의 자연

2장 기술의 대업

3장 불안의 연료

4장 추출의 제국

5장 재건의 민국

6장 혁명의 공업

결론 한계의 고갈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본문인용

중국의 근대적 산업화의 기원을 찾고 싶었다. 대신 그 끝의 시작을 발견했다. 2011년 여름, 탄광도시 푸순(撫順)을 처음 방문했다. 그전부터 나는 약 한 세기 전 일본 기술관료들이 개발한 어마어마한 푸순 노천광에 관한 역사적 사진과 문헌을 접했다. 현장은 기계가 만든 광대하고 공업화한 풍경이었다. 바위를 깎고 땅을 파내 구멍을 만드는 대형 굴착기, 전기 및 증기 동력삽, 그리고 덤프트럭.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1878~1942)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푸순 탄광은 과연 대단했다.(12쪽)

 

불길이 퍼지기 전에 상갱의 승강구를 이용해 갇힌 광부들을 대피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승강기가 잔해에 걸려 움직이지 않아서 소수의 중국인 광부만을 구출할 수 있었다. 그러자 “용기 있게 방화복을 갖춰 입고 산소통을 짊어진 사람들”로 구성된 두 구조팀이 모래 주입식 채탄 장비를 작동할 때 필요한 별도의 굴착로를 따라 지하로 내려갔다. 막장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연기가” 구조대원들을 “질식시킬 듯한 기세로 덮쳤다.” 대원들은 “더 이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까지 생존자를 찾아 울부짖었다. 얼마 뒤 “강제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탄광 경영진은 결국 공기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화재를 통제하기로 하고 지표면의 모든 갱구를 순차적으로 봉쇄하도록 명령했다. 수십 년 후 한 생존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악마 같은 왜놈들은 석탄을 지키기 위해 중국인 (광부)의 목숨은 아랑곳하지 않고, 땅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진흙을 발라 갱구를 막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지하에 있는 노동자들이 도저히 탈출할 수 없었던 겁니다.” 총 170명의 광부가 구조되었고, 917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이 가운데 일본인이 17명, 중국인이 900명이었다.(161쪽)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모더성은 주변을 살폈다. 군인들이 주민들을 에워싸고 있었다. 한편에는 “검은 천으로 덮은 카메라처럼 보이는 장치”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장교가 통역을 대동하고 앞으로 나와 주민들에게 연설하기 시작했다. 관동군은 그저 이 지역의 “적비(赤匪)”로부터 주민들과 그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그는 다음과 같이 약속했다. “우리는 여기 핑딩산에서 전투를 치를 것입니다. 그러나 적비만 몰아내고 나면 여러분을 댁으로 돌려보낼 것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연설을 마친 뒤 장교는 주민들에게 사진을 찍어야 하니 덮개를 씌운 장치 쪽을 바라보도록 지시했다. 모더성은 그 뒤 “총알이 비처럼 사람들의 몸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고 회고했다.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총소리가 그치자, 군인들은 쓰러진 사람들 사이사이로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총검을 내리꽂았다. “엄마를 찾으며 울부짖는”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총격이 시작되자마자 땅바닥에 몸을 던진 모더성은 눈을 감고 죽은 척했다.(236-237쪽)

 

막 새롭게 단장한 탄광의 중심이자 기계화된 근대성의 상징과도 같은 시설은 서부 갱도 위에 세운 거대한 권양탑(卷揚塔)이었다. 이는 계속해서 팽창하는 탄소 기술관료주의 에너지 레짐의 청사진을 기리는 진정한 기념비였다. 경사면을 따라 운반 작업이 이루어지는 채굴 방식과 비교했을 때, 갱도 채굴은 석탄층에 이르기 위해 지하로 곧게 터널을 뚫어야 했으므로 내부에서 인부와 물자를 오르고 내리는 데 훨씬 더 많은 동력이 필요했다. 따라서 갱도 광산의 지상에 승강기, 모터, 여타 기계 장치로 구성된 권양탑을 설치해 인양과 하강 작업을 했다. 승강 설비, 석탄업 전반, 그리고 거의 모든 공업 부문에서 1930년대 일본 엔지니어들은 독일을 최고의 전범으로 삼았다. 만철의 어느 기록에 따르면, 61미터가 넘는 룽펑의 권양탑은 쾨닉스보른(Koenigsborn), 한니발(Hannibal), 미니스터 슈타인(Minister Stein)과 같은 독일 최대 규모 탄광의 권양탑과 견줄 만했다고 한다. 그러나 케이지 권양 시스템(cage winding system) 측면에서 룽펑탑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한 번에 12.2톤, 시간당 650톤을 들어 올릴 수 있어 각각 회당 11.7톤, 시간당 293톤, 회당 8.4톤, 시간당 420톤 용량의 쾨닉스보른과 미니스터 슈타인의 권양탑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났다. “크기나 용량 면에서 룽펑탑은 다른 어느 사례보다도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문헌의 작성자는 자랑스럽게 말했다.(259쪽)

 

공산당군이 푸순을 점령하기 직전에 남아 있던 일본인 광산 엔지니어와 기술자는 불과 8명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국공내전 중에 송환되었다. 공산당군이 근접해 오자 이들 8인은 인근 선양으로 피신했다. 선양에서 비행기를 타고 톈진으로 간 다음, 그곳에서 일본행 배편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나 선양 또한 너무 빨리 공산당군에 함락되었다. 일본인 엔지니어들의 발이 묶여 버렸다. 며칠 뒤 기타무라가 이들을 찾아왔다. 8인 중 한 명으로 과거 푸순 기계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했던 호키모토 히로미는 기타무라를 만났을 때, 특히 기타무라도 푸순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반갑고 놀라웠던지” 회고했다. 기타무라는 자신과 함께 다시 푸순으로 돌아가자고 엔지니어들을 설득했다. 일행이 푸순에 도착하자마자 왕신산이 몸소 “환한 미소로 이들을 맞이”했고, 곧이어 “성대한 잔치”를 열어 주었다. 이는 푸순의 복구와 재건을 위해 일본인 엔지니어들이 힘을 보태게 될 것임을 알리는 행복한 신호탄처럼 보였다.(384쪽)

 

삐걱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은 여전히 궁극적으로 지속 불가능한 소비 패턴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문제를 풀어 줄 모종의 과학적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굳게 붙들고 있다. 기술관료주의는 특정한 진보 관념에 얽매여 있다. 이런 진보관은 좋은 삶을 오로지 막대한 에너지 소모와 그로써 가능한 과잉 풍요라는 요소만으로 정의하려 한다. 따라서 기술관료주의는 대안을 상상하는 능력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사유를 고착시켰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대안을 상상해야만 한다. 카라 뉴 대거트(Cara New Daggett)는 에너지라는 개념의 계보를 추적하면서 19세기 후반의 신생 과학인 열역학이 어떻게 에너지를 일(work)과, 진보를 생산주의와 결부하는 데 일조했는지 검토한다. 그런 다음 포스트워크(postwork)의 지적 전통 위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류세의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제 성장과 탄소 에너지에 따른 환경 파괴를 분리하는 것보다, 에너지를 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곧 “에너지 자유,” 다시 말해 보편적 기본소득, 노동 시간 단축과 같은 조치를 통해 “임금을 받고 생산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구속으로부터 더 많은 에너지를 자유롭게 하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대안이 급진적으로 보인다면, 실제로 급진적인 제안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진보에 관한 근대 산업 사회의 이상이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을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가고 있는지를 고려할 때, 이러한 이상을 급진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시급한 과제 중 하나다. 그리고 이는 틀림없이 지난한 작업이 될 것이다.(464-465쪽)

서평

동아시아 최대 탄광도시 푸순의 놀라운 역사

푸순은 중국의 둥베이(東北) 지역―과거에는 ‘만주’라 불린―을 구성하는 세 개의 성(省)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는 랴오닝성(遼寧省)에 있다. 도시의 지하에는 녹색 이암(green mudstone), 유혈암(oil shale), 응회암,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지층들 사이로 막대한 양의 석탄이 들어 있다. 과거에 이 석탄은 오랫동안 삽으로 채굴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전반기에 푸순 탄광을 경영한 일본제국 기업 남만주철도주식회사(南滿洲鐵道株式會社)의 등장과 더불어 대규모 석탄 채굴 산업이 발전했다. 1933년에 푸순은 만주 석탄 생산량의 5분의 4를, 일본 본국과 식민지 전체에서 생산된 석탄의 6분의 1을 책임지고 있었다. 일본이라는 에너지 제국의 칠흑의 심장, 그곳이 바로 푸순이었다.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與謝野晶子, 1878~1942)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한때 동아시아 최대 탄광이었던 푸순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화석 연료에 대한 우리의 지독한 의존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제국 일본에서 공산 중국에 이르기까지 확연히 다른 여러 정치 체제를 가로지른다. 그러나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정권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경로를 따른다. 바로 국제 경쟁과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자원 자립에 대한 국가주의적 집착 속에서 석탄 중심의 개발주의를 수용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막심한 생태 및 환경 파괴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그것이 다가 아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특히 석탄 에너지를 이용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저런 노동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입은 피해를 강조한다. 과도한 탄광 굴착이 초래한 위험 속에서 언제나 높아져만 가는 채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렸던 노동자들 가운데 너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었다.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

이 책은 “탄소가 만든 세계”에 대한 역사학적 비판이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현재 우리가 누리는 산업화한 근대 세계의 혜택 이면에 막대한 에너지 소비의 역사가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시작한다.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의 빅터 샤우 교수는 석탄과 석유로 대표되는 탄소 에너지를 끊임없이 퍼부어야만 유지할 수 있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세계를 “에너지 집약적 산업 근대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기후 위기, 여섯 번째 대멸종, 혹은 “인류세”를 둘러싼 최근의 논의들이 잘 보여주듯, 오늘날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이 세계의 대단원을 목도하고 있다. 샤우는 역사가로서 자신의 시좌(視座)가 갖는 역사성과 현재성을 구태여 감추지 않은 채 만주의 탄광도시 푸순으로 독자를 이끈다. 푸순이야말로 “탄소가 만든 세계”가 어떻게 동아시아에 도래해 발전하고 파탄에 이르는지를 보여주는 소우주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20세기 초 제국 일본의 만주 침략과 더불어 일본인 기술관료들에 의해 “탄소 기술관료주의”라는 구조가 형성되었으며, 일제 패망 후 만주와 푸순을 뒤이어 차지한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 또한 이러한 구조를 비판 없이 답습했다고 주장한다. 샤우에 따르면, 탄소 기술관료주의란 “각종 기계 및 경영관리 수단을 통한 화석 연료의 대규모 활용을 이상화하는 기술정치 체제”를 뜻한다. 더욱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층위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석탄 중심의 “에너지 레짐”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과 중국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가 뿌리내리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근대국가의 형성 과정과 중첩되었다. 국가는 과학의 힘 및 관료주의적 계획에 대한 맹신과 푸순의 석탄 매장량이 무궁무진하다는 환상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양의 석탄을 최대한 값싸게 채굴해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근대 동아시아의 과학 만능주의, 생산 지상주의, 발전주의와 궤를 함께한다. 저자에게 탄소 기술관료주의와 그 상징인 푸순 탄광은 결코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수많은 보통 사람의 땀과 피 그리고 환경을 희생시킨 이데올로기였다.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우수한 학술성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2022년에 발간된 저자의 첫 번째 연구서로, 미국 아시아학회 존 휘트니 홀 저술상, 미국 외교사학자협회 마이클 헌트상 등을 수상하며 그 학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중요성으로 주목받고 있다. 《적색혁명, 녹색혁명(Red Revolution, Green Revolution)》의 저자 시그리드 슈말저는 “《탄소 기술관료주의》의 광범위한 분석 범위와 중요성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 책은 중국 안팎에서 화석 연료 경제와 근대 국민국가의 부상이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독자는 화석 연료 중독의 뿌리와 그 대가―생태 파괴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폭력적 착취와 국가의 사회 통제 역량 강화 등―에 대해 신선한 관점을 얻게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 책은 저자가 다년간 일본, 중국, 타이완, 미국에서 수집한 다량의 사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일본 관련 자료의 경우, 일본 외무성 아카이브, 동양문고, 히토쓰바시대학 도서관, 와세다대학 도서관, 도쿄대학 도서관, 홋카이도대학 아카이브 등에 소장된 문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국의 자료로는 푸순시 당안관, 랴오닝성 당안관, 지린성 당안관, 상하이시 당안관, 제2역사당안관 소장 사료들을 이용했다. 그 외에 타이완의 중앙연구원 근대사연구소 아카이브(the Institute of Modern History Archives at Academia Sinica) 및 국사관 아카이브(國史館, the Academia Historica Archives)의 자료들과 미국 국회도서관과 스탠퍼드대학교 후버연구소(the Hoover Institute)의 자료들이 눈에 띈다. 이러한 아카이브 자료 외에도 샤우는 《대공보(大公報)》, 《푸순일보》, 《오사카아사히신문(大坂朝日新聞)》, 《만주일보》 등 각종 중문, 일문, 영문 언론 자료를 두루 참고한다.

 

문학적 글쓰기로 발견되는 역사 사건들

이 세심하고 방대한 역사책은 의외로(?) 문학적이다. 책의 서론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중국의 근대적 산업화의 기원을 찾고 싶었다. 대신 그 끝의 시작을 발견했다.” 이런 표현이 가능한 까닭은 자신의 체험적 연구를 글 속에 적극 반영하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이렇게 이어진다. “2011년 여름, 탄광도시 푸순을 처음 방문했다. 그전부터 나는 약 한 세기 전 일본 기술관료들이 개발한 어마어마한 푸순 노천광에 관한 역사적 사진과 문헌을 접했다. 현장은 기계가 만든 광대하고 공업화한 풍경이었다. 바위를 깎고 땅을 파내 구멍을 만드는 대형 굴착기, 전기 및 증기 동력삽, 그리고 덤프트럭. 1928년에 푸순을 찾은 일본 시인 요사노 아키코는 노천광을 “마치 하늘을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열어젖힌 지상의 괴물과도 같은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형상”이라고 묘사했다. 내 눈으로 보기에도 푸순 탄광은 과연 대단했다.”

 

또한 이 책의 문학적 글쓰기는 역사 사건에 대한 “지극히 인도주의적이며 세심한”(케이트 브라운)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각 장에 광대한 푸순 탄광을 둘러싼 정치, 경제, 기술, 사람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데, 이 이야기들은 저자의 문학적 글쓰기로 더욱 호소력을 얻는다. 그 가운데 1932년 ‘핑딩산(平頂山) 학살’ 장면은 읽는 이의 가슴을 두드린다. “마침내 군인들이 떠났다. 모더성은 몸을 일으켜 가족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담요 아래에서 온기를 잃은 어머니와 여동생의 시신을 발견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무참히 죽임을 당했다. 모더성은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아버지를 찾아냈다. 단지 기절한 것이기를 바라며 소년은 곁으로 다가갔다. 팔을 세게 깨물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리라 생각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목에서 솟구치는 피가 눈에 들어왔다. 여섯 식구 가운데 모더성은 유일한 생존자였다.”(237쪽) 그리고 이러한 ‘문학적 글쓰기로 발견되는 역사 사건들’은 이 책을 높은 가독성으로 이끈다.

 

동아시아 탄소 중독의 기원과 종말을 찾아서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느슨하게 연대기 순서를 따르는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석탄 에너지 채취를 그 존재 이유로 삼는 푸순이라는 근대 도시가 어떻게 처음 등장했는지 추적한다. 저자는 우선,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푸순의 지하에 매장된 석탄이 지질학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에서부터 시작해 20세기 이전까지의 푸순의 전사(前史)를 개괄한다. 이어서 의화단 사건과 러일전쟁 이후 1900년대에 만철을 중심으로 만주에서 활동을 개시한 일본인 기술관료들이 서사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이들은 푸순 일대에서 여러 차례 지질조사를 벌인 뒤, 향후 일본의 발전에 활용하고도 남을 무한대에 가까운 부존자원이 존재한다고 결론 내린다. 이에 만철은 푸순을 본격적인 탄광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한 각종 제도적 준비에 착수했다. 이 과정에서 외교적으로 탄광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해 나가는 동시에 수만 명의 중국인 노동자를 모집해 푸순 탄광촌에 수용했다. 샤우에 따르면 탄광도시 푸순은 그 시작부터 수직적인 공간이었다. 지상의 인간과 지하의 광물 사이의 관계, 일본과 중국의 관계, 현장 엔지니어 및 관리인과 말단 광부의 관계 등 여러 겹의 수직성으로 직조된 도시가 바로 푸순이었다.

 

2장은 1910~1920년대, 푸순 탄광의 석탄 채굴 현장을 자세히 분석한다. 샤우는 훗날 푸순의 상징으로 기억되게 될 거대한 노천광이 이 시기에 어떤 기술들에 의해 탄생했는지 상술한다. 뒤이어 노천광을 정상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했던 기계 설비와 노동자 관리 기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일본인 엔지니어는 중국인 광부를 무능력하고 불온한 존재로 간주했다. 그들은 언제나 노동을 대체하기 위한 기계화를 선호했는데, 저자는 이러한 기계화가 생산 규모의 확대로 이어지고 이는 더 많은 노동력을 푸순으로 유입시키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음을 보여준다. 푸순은 점점 더 신기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석탄 생산량의 무한 증대를 추구하기 위한 장소로 변해갔다. 탄소 기술관료주의에 의해 인위적으로 개조된 푸순의 공학적 환경 속에서 노동자의 안전은 언제나 뒷전이었다. 

 

3장은 1920년대 제국 일본의 에너지 인식의 변화를 다룬다.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일본은 하나의 교훈을 얻었다. 언제든 전쟁과 지정학적 변수에 따라 핵심 연료 공급선이 차단되거나 교란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푸순 등 개별 탄광의 풍부한 자원 부존량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는 별개로, 일본은 제국 전체의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깊이 의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잠재적 에너지 부족에 대한 제국의 불안은 석탄의 대체재인 석유에 관한 관심의 제고와 연료의 자급자족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되었다. 제국 일본의 기술관료들은 이러한 “연료 문제”의 심각성을 환기하기 위해 대중 강연을 조직하고, 관련 국가 정책을 입안하며, 여러 기술적인 해결책을 마련했다. 또한 이들은 푸순의 석탄층 사이에서 발견된 상당량의 오일셰일을 개발하기 위한 기술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오일셰일의 채산성이 석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기술관료들은 결국 정치적인 해결책으로 선회했다. 그것은 곧 제국의 영토적 팽창을 통해 더 많은 에너지 채굴의 장소를 직접적으로 통제한다는 방안이었다. 

 

4장은 1930~1940년대의 푸순을 살펴본다. 일본은 1931년에 만주사변을 일으켜 이듬해 종속국인 만주국을 건국했다. 푸순산 석탄은 1930년대에 만주국의 산업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연료였으며,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부터는 제국의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었다. 저자는 제국이 원료를 찾아 과도한 팽창을 거듭했으며, 이렇게 확장된 제국의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역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어야만 하는 일종의 악순환을 “심화의 전경”이라는 개념으로 묘사한다. 에너지 제국주의의 기호지세는 결국 1945년, 제국의 패망을 향해 치닫게 된다. 

 

5장의 초점은 1946년 3월부터 1948년 10월까지 푸순 지역을 통치했던 중국국민당에 맞추어져 있다. 저자는 먼저 시간을 되돌려 1930년대 초부터 1945년까지 장제스의 난징국민정부가 석탄 및 에너지 자원에 대해 어떠한 접근법을 취했는지 검토한다. 1931년, 만주사변이라는 제국 일본의 폭거에 항의하기 위해 국민정부 치하의 중국인들은 일본산 석탄 불매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푸순의 석탄이 일본산 석탄으로 여겨져 난징과 상하이 등으로 수입되지 못하자 도리어 심각한 석탄 기근 현상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난징정부는 중국 본토 내륙의 탄광 개발과 에너지의 자급자족을 위한 각종 사업에 박차를 가했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국가자원위원회 소속 기술관료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폭 강화되었다. 바야흐로 중국의 중앙정부가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내재화하게 되었다.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을 거치며 전시 상황이라는 비상사태 아래서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고 강화되었다. 2년 반 동안 국민당은 푸순산 석탄을 직접 통제할 수 있었지만, 그 막대한 석탄 채굴량으로도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하는 에너지에 대한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국민당을 타이완으로 몰아낸 중국공산당은 어땠을까? 6장의 주요 내용은 중화인민공화국 첫 10년, 즉 1949년 건국부터 1958년 대약진운동까지 공산당의 푸순 경영에 관해서다. 마오쩌둥의 붉은 깃발 아래 노동자와 농민의 나라를 표방하며 집권한 공산당은 일본제국주의자와 국민당 반동분자 치하의 “구(舊)사회”와 고별하고 “신(新)중국”의 탄생을 공언했다. 그러나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공산당은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답습했다는 점에서 그 전임 정권들과 한 치도 구별되지 않았다. 이러한 연속성의 이면에는 푸순 접관(接管) 초기부터 공산당을 지원한 소련인 기술 고문들과 잔류한 일본인 엔지니어들의 역할 또한 상당했다. 더 나아가 공산당은 전임자들의 그것보다 더욱 열화(劣化)된 탄소 기술관료주의를 선보였다. 석탄의 질, 광부의 안전, 탄광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희생시키며 더 급진적으로 단기적인 생산량의 극대화만을 추구했다. 

 

푸순에서의 근시안적이고 낭비적인 채굴 관행은 20세기 후반 내내 계속되었다. 결국 푸순 탄광은 여전히 석탄 부존량이 남아 있는데도 안전성 문제로 충분히 채굴할 수 없는 탄광이 되어 갔다. 그렇게 2019년, 푸순의 서부 노천광은 약 100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완전히 폐광되었다. 희생된 것은 푸순의 지층과 광물뿐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갱도 붕괴와 폭발 사고로 다치고 목숨을 잃었다. 저자에 따르면, 1954년 1/4분기에만 자그마치 823건의 사고가 있었고 10명이 사망했다. 또 1956년 1월부터 10월까지 2,100건이 넘는 사고가 발생해 36명의 사망자를 냈다. 마오쩌둥이 사망한 1976년에도 푸순에서는 큰 사고가 있었다. 이 한 건 사고의 공식적인 인명 피해만 무려 92명이었다. 이렇게 인간과 환경의 건강을 대가로 자기 복제와 강화(혹은 악화)를 거듭해 온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채, 폐광으로 전락한 푸순이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화석 연료를 태우며 대기를 향해 온실가스를 내뿜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빅터 샤우
미국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 부교수. 전 지구적 맥락에서 20세기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기술사, 과학사, 공업사, 에너지사, 노동사에 관한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다. 《탄소 기술관료주의》는 2022년에 발간된 저자의 첫 번째 연구서로, 미국 아시아학회 존 휘트니 홀 저술상, 미국 외교사학자협회 마이클 헌트상 등을 수상하며 그 학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근현대 중국 공업심리학의 역사적 발전과 역할을 중심으로 《인간이라는 요소: 과학, 노동, 생산 정치의 역사(The Human Factor: A History of Science, Work, and the Politics of Production)》(가제)라는 두 번째 연구서를 진행 중이다.
번역 : 이종식
포항공과대학교 인문사회학부 과학사 담당 조교수. 20세기 중국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과학사, 의학사, 동물사, 농업사를 연구하고 있다. 첫 번째 영문 연구서 《인민을 넘어서는 인민공사: 마오 시대 중국의 수의 노동자와 비인간 동물들(More Than People's Communes: Veterinary Workers and Nonhuman Animals in Mao-Era China)》을 집필 중이다. 《애니멀 히스토리: 동물을 사랑하고 혐오하는 현대인의 탄생》(근간)을 썼고, 《리센코의 망령》, 《사회정의와 건강》(공역), 《적색혁명, 녹색혁명》(근간)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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