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28일 영국 매체 〈가디언〉에는 〈세계는 정말 이전보다 좋아지고 있는가Is the World Really Better than Ever?〉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기사는 몇몇 지식인들을 “신낙관주의자the New Optimists”라고 일컬으며 스티븐 핑커의 책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신낙관주의자들의 레퍼런스 텍스트”라고 말한다.
여기서 신낙관주의란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아직 낯선 개념이다. 신간 《핑커 씨, 사실인가요?》에서 이승엽 저자는 신낙관주의를 “사회가 좋아지고 있다는 믿음을 과학적 근거에 기초해 정당화하는 입장”이라고 정의하며, “방대한 내용을 가진 사상체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여러 저술과 담론에 걸쳐 나타나는 일관된 지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신낙관주의의 대표서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커의 《지금 다시 계몽》과 스웨덴 공중보건 전문가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꼽는다. 둘 다 2018년에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다.
신낙관주의의 대표서 《지금 다시 계몽》, 《팩트풀니스》
《지금 다시 계몽》의 주요 메시지는 세상은 좋아지고 있으며, 데이터가 이를 보여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데이터가 말하는 객관적 사실에 무지하거나 거부감을 보이는데, 핑커에 따르면 이는 사람들의 심리적 편향과 부정적인 사건만 보도하는 언론 때문이다. 800쪽이 넘는 지면을 통해 핑커는 데이터와 수치, 사실에 근거해 세상의 진보를 입증해 나간다.
어떤 이들은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지금 다시 계몽》의 메시지가 빌 게이츠가 미국의 전 대학교와 대학원 졸업생에게 선물했다는 화제의 책 《팩트풀니스》와 거의 똑같기 때문이다. 이 두 책의 메시지가 바로 신낙관주의의 기본 입장이다.
이승엽 저자는 과학에 근거해 세상을 보자고 하는 신낙관주의자들의 팩트가 정작 자신들이 강조하는 객관성과 합리성을 담보하지 못하며, 핵심 사실관계를 누락하고, 주의주장에 따라 편의적으로 배치되었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핑커 씨, 사실인가요?》 2장부터 6장에 걸쳐 빈곤, 기대수명, 행복, 전쟁, 기후위기의 순서로 세계를 이루는 여러 영역에 관한 신자유주의의 팩트를 꼼꼼히 분석한다. 특히 6장에서는 환경 분야의 신낙관주의 저서라고 할 수 있는 마이클 셸렌버거의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이 비평 대상으로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이승엽 저자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열쇠가 되는 중요 데이터들을 독자에게 균형감 있게 제공한다.
이 책은 세상을 낙관적으로 봐야 한다는 신낙관주의의 주장에 반해, 세계에 관한 회의적 시각을 불러오는 책이 아니다. 《핑커 씨, 사실인가요?》는 신낙관주의자들의 팩트를 딛고 그 너머, 바로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주제로 나아간다.
두 저자를 비평하는 목적이 세상이 실제로는 나빠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에 있다면, 이 책은 유치한 물량 공세로 귀결될 테다. 세상이 나빠지고 있다는 비관주의자의 그래프와 좋아지고 있다는 낙관주의자의 그래프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 따위가 과연 중요할까? 《팩트풀니스》와 《지금 다시 계몽》을 공동체 커뮤니케이션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비평하려면 더 많은 카운터 팩트가 아니라, 그들이 내세우는 팩트의 사실관계와 의미구조를 해부해 그 세계관을 해체해야 한다.
_〈1장 팩트물신주의가 보여 주지 않는 것〉에서
한국인 대학생, 세계적 석학의 맹점을 짚어 내다
현재 서강대 재학생인 저자는 두 책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며 널리 퍼뜨린 잘못된 팩트와 생각들을 독자에게 일깨우고, 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인식의 도구로서 팩트의 역할을 복원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한국의 대학생이 세계적 석학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어느 정도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핑커와 로슬링의 책을 무척 흥미롭게 읽었으며,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빼어난 책조차 간과하고야 마는 인식론적 맹점이 있음을 밝히고, ‘팩트’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의 중립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붙이는 작업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 또한 확증/비확증 편향에서 비롯된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일러 둔다(〈저자의 말〉).
핑커와 로슬링이 사용한 데이터셋을 그대로 활용한 그래프들
이승엽 저자는 스티븐 핑커와 한스 로슬링이 말하지 않은 팩트를 보여 주기 위해 Our World In Data, 세계은행, 한스 로슬링이 설립한 갭마인더 등 두 저자가 세상의 진보를 입증하기 위해 그린 그래프와 같은 데이터셋을 출처로 80여 개의 그래프를 새로 그렸다. 독자들은 같은 데이터에서 기간만 다르게 설정했을 뿐인데, 핑커나 로슬링의 책에서 우상향의 직선을 보였던 그래프가 《핑커 씨, 사실인가요?》에서는 우하향 그래프 또는 높낮이가 그대로인 그래프가 되는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공공 담론은 관련 팩트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어떤 팩트인지에 따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점을 명쾌하게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스털린의 역설, 신낙관주의의 걸림돌이 되다
〈4장 가치: 팩트에도 불구하고〉에서 이승엽 저자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우리나라에서 특히 오해가 많은 이론이다. 저자는 이스털린과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하며,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관한 이스털린의 의견을 들려준다. 신낙관주의자들에게 이스털린의 역설은 큰 걸림돌이다. 만약 사람들이 부유해질수록 더 행복해진다면 이만큼 세상의 진보를 증거하는 사실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털린의 역설은 시간이 지나며 더 부유해진다고 해도 그만큼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로써 신낙관주의자들 앞에는 이스털린의 역설을 매끄럽게 설명해야 하는 과제가 놓이게 됐다.
《지금 다시 계몽》에서 핑커 역시 이스털린의 역설을 반박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핑커는 이스털린의 역설이 “빅데이터의 시대보다 수십 년 앞선 시점”에 나왔다며 낡은 이론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벳시 스티븐슨과 저스틴 울퍼스의 2008년 논문이 이스털린에 반박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는 듯 언급한다. 이에 이승엽 저자는 스티븐슨과 울퍼스의 논문에서 발견되는 오류들을 다루고, 그 논문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이 수정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볼 것이냐, 낙관적으로 볼 것이냐는 이 책의 주제가 아니다. 이 책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입장이 공동체의 이익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를 위해 어떤 팩트를 선택하고, 합의의 기반으로 삼을 것인지에 관한 합리적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우리는 팩트의 객관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이를 이룰 수 있다. 팩트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말이다. 저자의 말처럼 팩트가 구성되는 일련의 사회적 과정을 돌아보고, 팩트의 한계를 고려하는 것, 그것은 “우리가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이다.
어떻게 해도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진 독자, 입장이 다르다면 공동의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고 회의하는 독자, 공동체의 가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독자, 팩트를 도구 삼아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