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국어사전 문세영 《조선어사전》
“조선말로 해석한 조선말 사전이 처음 나왔다. 집집마다 한권씩!” _1938년 《한글》
“조선학계가 처음으로 받은 가장 값나가는 보물” _1938년 《조선일보》
“조선말은 과연 불사조였다. 영원토록 살아 있을 불사조였다.” _1941년 조선의용군 김학철
1938년 처음 발행된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은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다. 한국어와 관련된 최초의 사전인 미하일 푸칠로의 《노한사전》(1874)은 뜻이 같은 러시아어와 한국어를 대응시켜 만든 대역사전이었다. 《조선어사전》 이전의 우리말 사전으로는 심의린이 펴낸 《보통학교 조선어사전》(1925)이 있지만 보통학교 교재에 나오는 어휘를 풀이한 학습 사전이며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했다는 한계가 있다.
사전의 역사는 곧 국어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공기처럼 당연하게 우리말을 호흡하고, 한국어가 세계 7위 학습 언어가 된 내력의 첫머리에 《조선어사전》이 있다. 이 책은 우리말이 나라말이 될 수 없던 시기, 어휘를 모으고 풀이한 사전인 동시에 한 언어가 아직 살아 있음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부끄러움이 낳은 22년의 분투
“조선어로 된 사전이 있느냐.” 1917년 일본 동양대학에서 유학하던 문세영에게 중국인 유학생이 물었다. 모국에 아무리 수소문해 봐도 우리말 사전은 없었다. 사전도 없는 민족이라는 수치심에 우리말 어휘를 모으기 시작한 문세영은 귀국하여 교편을 잡은 후에도 수집을 계속했다. 1928년에는 교직마저 그만두고 ‘한 칸짜리 움파리 같은 방’에서 하루 네 시간만 자며 사전 편찬에 매진해 1936년에 원고를 완성한다.
1938년, 출판 자금이 없어 전국을 수소문하던 문세영은 서점이자 출판사였던 박문서관의 주인 노익형의 지원으로 22년 만에 《조선어사전》을 세상에 선보인다. 문세영은 원고를 6번, 7번씩 수정하고 이미 완성된 활판을 뜯어 새 낱말을 끼워 넣는 등 마지막까지 열성이었다. 미국의 《웹스터 사전》은 완성까지 28년 걸렸고 그림 형제는 1938년 《독일어 사전》 편찬을 시작해 그들이 사망한 1963년까지 완성하지 못했다. 《조선어사전》은 일제 식민 통치 시기에 개인이 이루어 낸 노작이다.
다채로운 10만 표제어
《조선어사전》 초판본은 8만 7000여 어휘, 2년 후 발간된 수정증보판은 약 10만 어휘의 올림말이 실린 방대한 규모를 자랑한다. 이는 약 4만 어휘가 실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말모이〉나 약 6만 어휘가 실린 조선총독부 사전을 능가한다. 또한 표준말 외에도 방언, 옛말, 이두, 학술어, 속담, 관용구 등 다양한 우리말을 수록하고 있어 당대의 언어생활뿐만 아니라 사고방식과 문화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20세기 조선의 유행어와 신어
“현진건은 《조선어사전》이 처음 나오자 고어와 신어를 비교하면서 문장에 써먹을 어휘를 수십 독을 하였다”라고 문인 월탄 박종화는 《신천지》 1954년 9월호에서 밝힌다. ‘모던껄’, ‘모던뽀이’ 등 근래의 사전에는 수록되지 않은 신어가 실린 사례, ‘러버(Lover)’의 뜻풀이로 ‘마음 속에 있는 사람. 戀人(연인)’을 제시하고 있으면서 정작 ‘연인’은 올림말로 등재되지 않은 사례 등은 서구 문물이 유입되던 시대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국어사전의 국어사전
《조선어사전》은 1원이 넘는 책이 드물던 때에 7원에 달하는 값비싼 책이었음에도 초판 1000부, 재판 2000부가 매진되었다. 1940년에는 전국 독자들의 도움으로 방언과 학술어 등 1만여 어휘를 보탠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이 영창서관에서 발행된다. 이를 바탕으로 《중등조선어사전》(1947), 《순전한 우리말사전》(1951), 《최신판 표준국어사전》(1954) 등 다양한 사전이 나오며 문세영 사전은 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 완간 전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정증보 조선어사전》은 “현대 국어사전의 기틀이 된 기념비적인 사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립국어원의 ‘근현대 국어사전’ 서비스 활용 자료로 채택되었다.
1938년 출간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재현한 영인본
새롭게 출간되는 《조선어사전》 영인본은 한글학회 《우리말 큰사전》 수석 편찬원 조재수 국어학자가 소장한 초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조선어사전》은 그 역사적·학술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온전한 실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국립한글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학교 소장본과 비교 후 원형과 최대한 동일하게 재현했다. 활자체와 4단 세로쓰기 양식은 물론 활판 인쇄 기술의 한계로 발생한 오류까지 고스란히 실어 첫 출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가격은 1938년 초판본의 정가 7원에 지난 86년 동안의 물가지수 상승률을 반영해 책정했다.
1938과 2024, 그 사이를 잇는 부클릿 〈사전말끝〉
《조선어사전》과 함께 제공하는 부클릿 〈사전말끝〉은 사전의 처음이자 끝을 의미한다. 책에 실을 수 없었던 편집자의 머리말과 맺음말을 대신한다. 《조선어사전》에서만 실린 독특한 어휘와 뜻풀이를 만날 수 있다. 머리말 ‘전승(傳承)’은 《조선어사전》 초판본을 입수한 편집자의 사용기로, 《조선어사전》과 현진건의 〈타락자(墮落者)〉를 함께 읽으며 느낀 아름다움과 사전의 소상한 체제를 파헤친다. 맺음말 ‘왕래(往來)’는 편찬인 문세영과 편집자의 가상 대담으로, 사전 집필 과정과 당대 조선 문화를 알 수 있는 풍부한 자료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