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 미안해. 우리 헤어지자.”
“…그런데, 누구세요?”
아, 왜 만난 적도 없는데 벌써 헤어지고 싶지…?
국어 교과서를 펼친다. 소설도 있고, 수필도 있고, 그리고 당연히 시도 있다. 연이 구분되어 있고 행갈이가 되어 있는 게, 옆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오백 보 떨어져서 보나 틀림없는 시다. 오늘이 며칠이더라. 국어 선생님이 내 번호 부르면 안 되는데. 운이 좋으면 낭독, 운이 나쁘면 스무고개다. (자, 이 시어가 의미하는 게 뭘까? 이 시의 주제는 뭘까? 등등.) 시는 아름다운 것이라는데, 시험에서 시를 마주친 내 점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시’라는 정답 없는 미로를 헤매는 너,
행갈이 된 글만 보면 멀미부터 나는 너,
시가 어려워서 시름시름 앓는 너,
바로 너를 위한 책
‘대체 시란 뭘까? 아니, 시는 왜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까? 왜 사랑한다는 말을 놓고 ‘사랑한다’고 하지를 못하고 다른 단어와 다른 표현으로 말하는 걸까?’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시와 책에 대한 애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책들을 써낸 작가이자 전직 국어 교사인 저자가 시를 읽고 공부하면서 품었던 질문이기도 하고, 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서 받은 질문이기도 하다. 1장에서는 이 질문을 탐구하면서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들을 다뤘다. 2장에서는 ‘그럼에도’ 우리가 시를 배우는 이유, 배워야 하는 이유를 다뤘다. 시인이 될 것도 아닌데 시적 상상력 같은 게 무슨 쓸모가 있을까 생각하기 쉽지만, 대답은 ‘아니오’라는 것을 이 책은 멋지게 보여 준다. 마지막 3장에서는 시를 부디 포기하지 않고 좀 더 쉽고 재밌게 읽기 위한 방법들을 소개했다.
사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시는 언어를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고(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듯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거나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시 속에서는 얼음이 사랑의 상징물이 되기도, 슬픔이 사랑의 표현이 되기도 하듯이), 읽는 사람을 멈춰 세워 곰곰이 생각에 잠기게 하니까. 흔히 시를 읽는 데 감수성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시를 이해하려면 적극적인 추론 및 해석 능력이 필요하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시는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도 높은 문해력을 요구하는 장르다.
집 나간 너의 문해력을 찾아
옛 시부터 현대 시까지, 시 읽기 특강
이 책에는 김소월 시인의 「먼 후일」, 이상 시인의 「오감도 시제3호」,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 1」 등 교과서에 자주 수록된 옛 시부터 교과서에서는 접하기 힘든 현대 시까지, 총 56편의 시를 실었다. 소설도 없고, 수필도 없고, 앞에서 보나 뒤에서 보나 오백 보 떨어져서 보나 틀림없는 시밖에 없지만,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을 펼치자마자 까닭 모를 울렁거림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런 울렁거림이 느껴졌다는 것이야말로 이 책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점점 더 다양한 현대 시가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지금, 기존의 주입식⋅암기식 공부법으로는 시 지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든 지금, 이 책은 여러분에게 시를 읽을 방법을, 더 나아가 시 읽기의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 줄 것이다.
『시 읽기 좋은 날』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젊은 날의 책 읽기』 등 시와 독서에 대한 에세이를 썼고, (당시엔 중학생이었던) 고등학생 아들과 24권의 책을 함께 읽고, 감상을 나누고, 토론한 기록 『책 읽기는 귀찮지만 독서는 해야 하는 너에게』을 쓴 김경민 선생님의 ‘시싫증’(시에 싫증 난 것이 아니라 시를 싫어하는 증상) 처방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