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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통신사, 일본을 오감하다


  • ISBN-13
    979-11-6684-275-7 (94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세창출판사 / 세창출판사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3-11-2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심민정
  • 번역
    -
  • 메인주제어
    역사, 고고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역사, 고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00 mm, 196 Page

책소개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통신사(通信使)’는 육로를 통해 중국으로 가는 사신단과는 달리 바닷길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 때문에 통신사는 바닷길에서 ‘언제 만날지 모를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나라에 대한 충성의 여정’이라는 두 가지 감정 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의 짐을 짊어지고 다녀와야 하는 사절이었다. 그래서 사행 전후로 통신사들이 남긴 사행록의 시작에는 이런 두려움과 막중한 임무에 대한 상념들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통신사들의 유람기를 보고 있노라면 현재 일본의 유명한 관광지로 그대로 이어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유명한 유람지는 고금을 막론하고 그 가치가 지속되는 것 같다. 자, 과거의 유람을 현재에서 다시 한번 천천히 실행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목차

_차 례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궁궐에서 하직하고, 한강나루에서 이별하다 

궁궐에서, 관왕묘에서 사신의 임무를 되새기다 

이별의 한강나루 

 

2. 배 띄우기 전, 부산을 유람하다 

동래와 부산진에서의 통신사 맞이, 그들의 ‘축제’ 

통신사선(通信使船)을 점검하다 

부산진성(釜山鎭城)의 풍광과 일상 

영가대에서의 해신제(海神祭)와 전별연(餞別宴) 

부산 명소(名所) 유람 

배를 띄운 후, 바람을 기다리며 보내는 일상 

 

3. 일본 사행로의 첫 기착지, 쓰시마섬 

부산에서 쓰시마섬 후추로의 항해 

통신사들의 숙소 ‘세잔지[西山寺]’, 막부를 대신한 감찰기관 ‘이테이안[以酊庵]’ 

후추에서 행해지는 통신사 하선연(下船宴) 

1811년 역지통신 접대를 전담한 쓰시마섬 

 

4. 이키섬을 거쳐 일본 본섬 시모노세키에 이르다 

11차 사행까지 필수 경로였던 이키섬[壹岐島], 배로 만들어 낸 육지 

대한해협을 뒤로하고 바라본 아이노섬[藍島](현재 相島)의 등불 

바닷길의 관문 시모노세키[下關](아카마가세키[赤間關])로 

시모노세키의 숙소 아미다지[阿彌陀寺]와 안토쿠천황 사당 

번주의 화려한 다옥(茶屋)에 가려진 가미노세키[上關]에서의 식수 조달 

 

5. 일본의 바닷길, 세토나이카이를 가로지르다 

세토나이카이의 첫 방문지, 가마가리[蒲刈] 

명승절경 도모노우라[鞆浦](韜浦) 

넓고 고요한 바다를 품은 우시마도[牛窓] 

 

6. 바닷길과 육지길이 만나는 번화한 도시, 오사카 

바닷길의 끝

오사카에서 갈아탄 화려한 누선

넓은 숙소와 번화한 도시, 오사카 

 

7. 천황의 역사가 스민 교토를 밟다 

요도우라에서 교토로 들어가는 길 

천년 사찰을 숙박지로 삼고 

조선인의 귀와 코로 만든 무덤 

 

8. 무사들의 격전과 평온함의 시대를 동시에 보여 준 히코네와 오가키 

망호루(望湖樓)에서 바라보는 비와호[琵琶湖] 

세키가하라와 오가키성 

 

9. 성신교린의 도시 나고야, 배로 다리를 잇다 

배를 잇대어 만든 다리로 강을 건너고 

번성한 거리와 아름다운 여성들 

통신사와의 시문창화가 활발한 나고야 

 

10. 통신사의 유묵이 있는 세이켄지를 품은 시즈오카 

물살 센 오이강[大井川]을 건너고 

아름다운 풍광과 통신사의 유묵이 남아 있는 세이켄지 

험난한 사타[薩陲] 고개를 넘어 후지산을 바라보다 

 

11. 하코네의 절경은 통신사들의 시가 되고 

험준한 하코네 고개를 넘어 하코네 호숫가 숙소로 

시로 승화된 하코네의 산수 

 

12. 사행의 종착지, 에도에 입성하다 

에도에 들어서 니혼바시를 거닐다 

에도에서의 숙소, 히가시혼간지 

에도성의 화려함, 국서전달 의례 

일본의 연회 문화 

 

13. ‘천하명승지 유람’으로 둔갑한 닛코 방문 

닛코산[日光山] 유람, 억지유람이었을까? 

닛코에서 지내는 제례 

 

나오는 말

본문인용

사신단은 대체로 배를 띄우기 전에 부산에서 40-50여 일을 머물렀다. 이렇게 머무는 동안에는 대체로 본연의 업무를 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하지만 배가 출발하려면 해류나 바람 등 모든 조건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했기 때문에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부산에서 보내야 할 경우도 있었다. 이 기간에는 업무 외에 휴식을 하며 긴장감을 늦추기도 했지만, 부산에서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경치를 찾아 돌아다니기도 했다.

_38쪽

 

세토나이카이에 있는 항로 중 조수를 타기 원활하고 중간 지점에 위치한 곳이 도모노우라이다. 도모노우라에서는 통신사들이 평균 1박을 머물렀는데, 도모노우라로 들어갈 때는 밀물을 타고, 이곳에서 나올 때는 썰물을 이용해 배를 움직였다고 한다. 도모노우라는 통신사들에게 훌륭한 경치로 많이 알려진 곳이었다. 1617년, 오윤겸은 “세토나이카이에는 경치가 훌륭한 곳이 많이 있지만 도모노우라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라고 하였다. 1711년, 조태억도 “도모의 경치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들었는데, 일본에 와서 쓰시마섬에서 관동까지 둘러본 중에 여기 경치가 가장 훌륭하다”라고 했다

_87-88쪽

 

통신사들은 히코네를 지나면 이마스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세키가하라를 거쳐서 저녁 즈음에는 오가키에 도착했다. 세키가하라는 센고쿠시대를 마무리한 세키가하라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세력이 격전을 벌인 장소이다. 통신사들도 이러한 사정을 알고 있었기에 유심히 보았던 곳 중 하나였다. … 이곳을 본 통신사들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세력으로부터 승리를 거두고 조선에 화호를 청한 일에 대해 도리에 맞은 일이었다고 평가하곤 했다.

_120-121쪽

 

하코네 고개는 통신사행로 중 험준하기로 유명했다. 이 길에 이르렀을 때 통신사들은 가마를 메는 사람이 있는 힘껏 올라가고, 계속 교대하면서 가도 숨을 헐떡거리는 모습을 자주 접하곤 했다. 신유한이 하코네 고개를 오를 때 말에서 내려 걸어가는 아메노모리 호슈를 보고 그 연유를 묻자, “이 고개가 몹시도 험하니 말을 타면 내가 상성할까 염려되고 가마를 타면 사람이 병이 들까 염려되니 내가 괴로운 것이 낫다”라고 했다 하니 그 험준함이 상상이 간다.

_151쪽

 

1636년 통신사들에게는 전에 없던 유람 일정이 주어졌다. 천하절경의 명산인 닛코산을 유람하는 것이라 하였지만, 실제로는 얼마 전에 완성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당으로의 방문을 유도한 것이었다. 통신사들은 하나같이 조선 국왕의 명이 없으면 유람을 할 수 없다고 하였지만, 이 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막대한 부담을 지게 된다는 쓰시마도주 측의 간곡한 부탁에 닛코 유람을 거절하지 못하였다.

추운 날씨 탓이었는지, 조선으로 귀국한 후 국왕의 추궁이 염려되었던 탓이었는지, 1636년 사행원들의 기록에는 하나같이 닛코 유람에 대한 악평으로 가득했다.

_187-188쪽

서평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캐나다에서 시크교 지도자가 암살되면서 인도와 캐나다 간의 외교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서로 외교관을 1명씩 추방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처럼 외교관이 해당국에 주재하면서 외교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근대에 와서의 일이고, 본래 국가 간 서로 소통할 일이 있을 때는 사신을 파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리고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냈던 사신이 바로 통신사였다.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서는 바다를 건너야 했기에, 항해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는 육로로 가는 중국 사행에 비할 때 일본 사행은 매우 위험하고 또 고단한 사행이었다. 그런 사행을 떠나야 했던 통신사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길을 거쳐서 일본으로 갔을까? 흥미로운 점은 통신사가 거쳐 간 곳들이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신사들은 위험한 바다를 건너 일본에 도착한 후에는 관광지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까? 이 책은 통신사들의 기록을 통해서 그들이 느낀 일본의 모습을 그려 낸 책이다. 물론 조선의 외교는 주로 중국과의 관계가 중심이었다. 그러나 근린 관계로서 일본과의 관계도 그 중요성은 작지 않았다. 통신사의 기록을 통해 그들이 걸은 발자취를 따라가다가 보면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그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심민정
부경대학교 해양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부경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선시대 통신사(通信使)와 일본사신 왕래를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조선시대 한일 양국 사신의 왕래와 외교관계, 해양교류로 연구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조선후기 일본사신 왕래와 접대』(2022), 「조선 후기 통신사 員役의 차정과 변화」(2005), 「《朝鮮漂流日記》(1819)에 나타난 표류왜인 호송과 접대 실태」(2020), 「1682년 임술통신사행의 임술약조 강정과 조일 교린관계의 재편」(2021) 등이 있다.
기획 : 한국국학진흥원(박경환, 김형수, 나영훈, 이규호, 조인희)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전문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서와 유교 목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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