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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재상 이원익의 관직 활동


  • ISBN-13
    979-11-6684-263-4 (94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세창출판사 / 세창출판사
  • 정가
    14,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3-11-2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이정철
  • 번역
    -
  • 메인주제어
    역사, 고고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역사, 고고학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00 mm, 172 Page

책소개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해서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였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재상 이원익, 삶으로 보여 주는 정치의 정수”

 

조선시대 재상의 관직 및 정치 생활을 일반화하기 어렵다 해도, 그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지금처럼 무지한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재상은 조선왕조의 정치에서 핵심을 이루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야말로 조선시대 중앙 정치의 주요한 플레이어였다. 따지고 보면 조선왕조실록은 주로 왕과 재상들의 이야기이다.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조선시대 인물 대부분이 사실은 재상 지위에 있던 이들이다. 이들을 모르고서는 조선시대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목차

_차 례

 

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0

1. 관리가 되어 두각을 나타내다 15

이원익의 가계(家系) 17

이원익의 출생, 교육, 입사入仕 21

이원익의 중국어 실력 23

황해도도사(道事) 시절 26

언관, 승지 시절 29

2. 탁월한 행정가, 재상의 반열에 오르다 35

안주목사 시절 37

이공상(李公桑), 이원익의 뽕나무 41

상식적이고 원칙적인 관리 이원익 43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전투에 자원하다 45

평안도순찰사에 임명되다 48

도순찰사로 왜군을 공격하다 53

평안도관찰사로 군사를 모으고 반격을 가하다 62

평양성을 탈환하고 민심을 안정시키다 66

이원익의 정승 승진을 둘러싼 논란 75

우의정 겸 4도 도체찰사로 통제사 이순신을 만나다 82

3. 계속되는 정쟁, 정치에서 물러나다 87

선조의 의도에 맞서 이순신을 변호하다 89

도원수 권율과 갈등하다 92

다시 이순신을 변호하다 99

류성룡과 정치적 진퇴를 함께하다 102

이원익이 임진왜란 경험으로 얻은 교훈 111

경기선혜법을 추진하다 115

임해군 사건과 이원익의 정치 121

계축옥사 처리 논의에 불참한 이원익 124

4. 다시 한번 영의정으로, 임금의 존경을 받는 재상 127

인목왕후 폐비 논의와 이원익의 목숨을 건 상소 129

인조반정 당시 이원익의 처신 136

이원익의 소인론(小人論) 140

정치가보다는 관리에 가까운 이원익 142

대동법을 다시 추진하다 145

사마광으로 칭송받다가 왕안석으로 비난받다 151

왕이 지어 준 집, 관감당 155

나오는 말 162

주석 170

참고문헌 172

본문인용

p. 18

예나 지금이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사람과 소통하고 친목을 다지는 필수적인 행위이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의 빈도와 범위를 통해, 참여자가 소속된 공동체 조직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관계로 과거 지방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사는 곳을 표현할 때 ‘향’이라는 문자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도 왕조의 권위가 높아짐에 따라, 율령(律令) 체계가 지방에 전파되었지만, 그와 별개로 ‘향’에서는 관습적으로 행해지던 공동체 단위의 여러 자치 규약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자치 규약이 율령 체계보다 지방의 현실과 문화를 좀 더 생생하게 담고 있다.

 

p. 24

당시 젊은 문신들 사이에서는 중국어 배우는 것을 그다지 중요치 않게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아마도 중국어 실력이 관리로서의 출세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결과 임금이 몸소 중국어 시험을 보일 때마다 이원익은 언제나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상을 받곤 했다. 그가 중국어를 열심히 배웠던 것이 앞날을 내다보았기 때문일 리는 없다. 그는 약삭빠르지 않은 모범생 타입의 인물이었다. 이원익의 중국어 실력과 인품을 보여 주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p. 39

이원익은 안주목사로 임명된 다음 날, 혼자서 말을 타고 임명지로 떠났다. 지방관에 임명된 다음 날 혼자 임명지로 출발하는 것은, 당시 관행에서는 대단히 파격적인 일이었다. 대개 지

방관에 임명이 되면 한동안 서울에 그대로 머물렀다. 그동안에 여기저기 자신의 임명에 관련된 정부 기관들과 유력자들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방문하여 인사를 차리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신임 수령을 모시러 임명지 고을 아전들이 서울에 도착하면, 신임관은 그들과 함께 부임지에 모양 있게 내려갔다. 신임관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지출했던 것들은 현지에서 온 아전들이 갚아 주었다. 이런 관행은 법은 아니어도 법 이상으로 반복되던 사항이었다. 이원익은 이 모든 과정을 생략했던 것이다. 당사자 개인에게 유리한 관행을 따르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p. 91

선조로서는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 신망을 얻으며 전쟁영웅으로 떠오른 이순신에 대해 결코 기쁜 마음으로 그 승리를 축하할 수 없었다. 아랫사람의 공이 너무 크면 상을 주기 어려운 법이다. 그 공이 윗사람의 지위와 권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선조는 먼저 이순신이 임무에 힘쓰는지 물었다. 그러자 이원익은 그가 부지런히 근무할 뿐 아니라 한산도에 군량이 많이 쌓였다고 답했다. 이어 선조는 이순신이 태만해졌다는 여론이 있다면서 이순신의 사람 됨됨이를 추궁하듯 물었다. 이에 이원익은 그가 장수 가운데 가장 쟁쟁한 인물이며 태만한지는 알지 못하겠다고 했다. 선조는 이순신이 군 지휘자로서 자질이 있는

지 다시 물었다. 이원익도 물러나지 않았다. 경상도 주둔 장수들 가운데 이순신이 가장 훌륭하다고 이원익이 말하자 그제야 선조의 물음이 그쳤다.

 

p. 161

그러나 이원익은 왕이 내려 주는 집을 처음에는 거절했다. 직접 집을 지어 주어야 하는 경기감사 입장에서는 난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는 조정에 “나라에서 집을 지어 주는 일로 이원익이 다른 고장으로 옮겨 가겠다고 하므로 명령을 받들어 집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지극히 황공합니다”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인조는 다시 이원익에게 승지를 보냈다. 자신이 집을 지어 주라고 한 것은 그 뜻이 벼슬아치들에게 본보기를 보이려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기 뜻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서야 이원익은 왕이 지어 준 집을 받았다. 이 집이 현재 광명시 소하동에 있는 관감당(觀感堂)이다. 인조는 집과 더불어 노비도 지급했다.

이에 앞서 이원익이 서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인조에게 허락을 요청하자, 인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경을 바라보는 것이 어린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바라보듯 하오. 이제 경이 떠난다니 나는 어떻게 정치를 하란 말이오?” 인조의 이원익에 대한 마음을 잘 보여 준다.

서평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 기록에서는 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상인이 남긴 일기도 있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이 남긴 마을의 이야기도 있어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의 변두리를 살아간 사람들의 일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원익, 삶으로 재상의 표준을 제시하다”

저자가 밝히는 대로 이원익은 조선 500년 역사에서 수없이 많았던 재상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원익이 반드시 모든 재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행정업무 처리능력, 청렴, 재직 기간, 업적 등 무엇으로 보나 재상을 대표하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원익은 선조, 광해군, 인조라는 세 왕을 겪으며 모두에게 인정받은 재상이었고 청렴하기로 신하들 사이의 칭송을 받기도 했으나 우직한 삶으로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려 모함을 당하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전쟁과 반정을 겪거나 모함을 당하여 유배를 가기도 했고 때로는 정면으로 왕의 정치를 비판하기도 했으며, 끝내는 왕의 존경을 받아 최고의 예우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이원익만큼 오랜 기간을 재직하며 다종다양한 사건을 만난 재상도 드물다고 할 만하다.

그런 만큼 이원익의 삶 자체도 중요한 의미를 지님에도 그보다는 이원익이 보여 주는 재상의 모습 자체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바 또한 대단히 많다. 저자는, 한편으로는 조선의 재상이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으로 인해 재상을 모르고서는 조선 역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즉 재상은 조선 정치의 핵심적인 위치에 자리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재상의 표준이라고 할 만한 이원익의 삶을 차근차근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조선 정치의 핵심 축인 재상을 이해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저자소개

저자 : 이정철
퇴계학연구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시대 대동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퇴계학사전 편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대표 논저로는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권력 이동으로 보는 한국사」 등이 있다.
기획 : 한국국학진흥원(박경환, 김형수, 나영훈, 이규호, 조인희)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전문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서와 유교 목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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