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편의 편지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조선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교유했는지 궁금해졌다. 의사소통이란 자기 생각과 뜻을 상대방과 서로 나누며 잘 통하는 것을 말한다. 편지는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화자인 발신자가 청자인 수신자에게 자신의 의사를 직접 전달하는 수단으로, 당대 언어생활의 생생한 모습과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 및 정서가 잘 반영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절박한 외로움과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있을 때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는다. 매개체 중 하나인 편지는 서술자의 체험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서술자의 살아있는 열린 언어로 생생한 현실감과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화자의 진솔하고도 인간적인 모습, 거짓 없는 솔직한 고백은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이해를 유도하고 공감대를 형성하게 한다.
때로는 안부만 전하는 그저 소소한 이야기일지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편지를 쓰는 그 순간만큼 오로지 나를 생각했을 상대방이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진심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나와 너의 소통의 공간, 그 공간으로 발을 디딘 우리는 무엇을 듣고 느낄까.
문학이란 우리가 가지는 생각, 감정을 언어라는 매개물을 이용하여 표현되는 진실한 인생의 표현이다. 편지 또한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으며 생활의 현실을 진실하게 반영하며 개인의 감정이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게다가 내재된 감정을 분출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감정정화가 일어난다.
감사하게도 한글을 매개체로 이용한 편지를 선조들이 남겨준 덕분에 삶의 다양한 모습과 인간의 내면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은 남존여비, 칠거지악, 여필종부 등의 유교 사회였지만,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제도화된 예속과 도리, 법칙 등에 따라 살아간 사람이 있는 반면에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한 사람도 있었다. 선조들의 다양하고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조금은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조금은 세상을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작은 소망으로 글문을 열어본다.
조선시대 한글편지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부모· 자식, 형제자매, 친척, 부부, 친구 등 다양한 사람들끼리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편지의 행간마다 선조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정한과 그에 관련된 생활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선조들의 편지에 나타나는 다양한 부부의 모습에서 오늘날 부부의 모습을 되새겨보았다. 또한 부모의 품에서 금지옥엽으로 자란 딸이 어느덧 부모· 형제와 살았던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는 모습,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기만한 시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토로할 수 있는 수단이자 친정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로 편지가 쓰인 것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결혼한 여성의 편지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왜 살아야 하며, 삶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오로지 순종과 복종만을 강요당하고, 첩을 가진 남편에 대해 시샘조차 하지 못하도록 억압한 사회에서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역할을 한 것이 편지이다. 온갖 감정이 내면에 존재함에도 나이와 체면이라는 허위의식에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에게 편지는 삶에 대한 진솔한 토로이자 인생에 대한 재발견이었던 것이다.
한편 평범하게 살았던 여성이 하루아침에 왕비가 되거나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궁궐에 입성하게 된다. 궁궐에는 지엄한 시어른인 대비가 있고, 사랑이 아닌 정치적으로 맺어진 지아
비인 왕 혹은 세자가 있다. 그리고 후궁을 비롯한 궁녀들이 자신을 예의주시하는 궁궐에서 그나마 그들을 숨 쉴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편지쓰기다.
궁궐에 들어온 그들은 여성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어도 그들은 매 순간 긴장하며 살았다. 왕비가 된 딸로 인해 세도를 누릴 수도 있었고 때론 멸문지화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반면 왕의 딸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라던 공주들의 삶은 어땠을까? 공주는 결혼 후 왕이 마련해 준 화려하고 웅장한 저택에서 살고 막대한 경제력을 갖추며 시댁 어른들에게 사랑받으며 살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편지에서 그들은 일찍 세상을 떠나거나 오랜 세월 동안 고독과 슬픔에 잠겨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왕실의 편지에는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감정과 고백이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여성 간의 주고받은 편지는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허심탄회 하게 일상을 공유하며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따라서 공적인 기록에서 쉽게 살펴볼 수 없었던 왕실 여성이라는 특수한 신분에 감춰진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 그자료적 가치가 높다.
왕이 쓴 한글편지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왕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인다. 예컨대, 효종이 숙명공주에게 보낸 편지에는 다른 공주들이 궁궐에 들어와 노리개를 가져가자, 미처 궁궐에 들어오지 못한 숙명공주에게 제 몫의 노리개를 꼭 찾으라며 당부하는 내용이 있다. 또 다른 편지에는 고양이를 유독 좋아하는 딸을 혼내다가도 감기에 걸렸으면 약을 챙겨 먹으라고 걱정하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날 뿐 왕으로서 권위나 위엄을 찾아볼 수 없다. 현종 역시 아버지 효종을 이어받아 딸들을 사랑하는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인다. 현종이 명안공주에게 보낸 편지 중에 딸을 보고자 하였으나 몸이 편치 않아 딸에게 갈 수 없었던 정황이 드러난다. 현종이 몸이 아픈 중에도 행여 어린 딸이 아버지가 찾아오지 않아 서운해할까 봐 미리 딸에게 편지를 보내는 모습에서 자상한 아버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긴 시간 동안 조선시대 한글편지에 반영된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대적 상황 및 역사적 사실과 관련지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글편지의 주요 대상이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따라서 여성의 관점에서 궁궐 안팎의 삶과 문화를 풀어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솔하고 거침없는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베일에 가려진 당시 사람들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살았던 시간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순간의 시간 모두 같다. 어디에 있든, 어떤 처지에 있든, 삶은 계속 흘러갈 것이다. 때로는 세상과 타협하거나 부조리에 대항하고 좌절할 수 있겠지만 나름대로 삶을 살아가는 지혜 한 스푼을 담아 휘적휘적 저어가길 바란다. 어떤 삶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한 권의 책이 그 물음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찾아 가는 실마리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