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다. 따라서 법우선의 원칙대로 국가작용이 법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전에는 국가작용이 개인의 자의가 아니라 법에 따라 이루어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서는 국가와 국민을 규율하는 법은 헌법에 합치되고 그 내용을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다.
헌법재판관으로 재직하면서 법률이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를 가리는 재판을 많이 다루었다. 그런데 법을 잘 만들면, 즉 좋은 입법이 이루어지면 처음부터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텐데 하며 아쉬움을 가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한 적지 않은 법률에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가가 일정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이 기대한 성과를 이루지 못한 경우도 많이 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많이 변화했는데, 법은 그대로 있어 우리 실정에 적합한 사회적 규율로 충실하게 기능하지 못한 경우도 종종 보게 되었다.
법률을 제정하는 권한을 헌법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부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입법절차에 참여하는 국회의원과 관계자, 구체적 입법절차와 과정은 일반 국민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 사회를 규율하고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이 어떠한 내용을 담는지 국민이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고 있다. 입법과정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생활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와 정책들이 많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법은 현실변화에 따라 살아 움직여 효과적으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과정에 입법정책보좌관이나 입법조사관으로 참여한 경력을 가진 법무법인(유) 지평의 변호사들과 입법·정책데이터를 제공하는 SNR 박원근 대표가 입법절차와 입법현실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담아 이 책을 펴낸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우리 사회에서 국회 입법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국민에게는 입법절차에 대한 안내서야말로 소중한 나침판이 되어 줄 것이다. 국회 입법절차에 대한 이해를 돕는 동시에, 그 과정에 참여하는 길을 안내함으로써 우리나라를 한 단계 더 높은 법치국가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 지평법정책연구소 이사장 (전 헌법재판관) 이 공 현
살아 움직이는 법, 법률로 완성되는 정책,
그리고 민주와 법치주의
국회 보좌관 생활 10년을 정리하고 나이 50세에 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법무법인 지평의 입법지원팀장으로 일한 10년을 합치면 국회 입법과정과 관계를 맺은 지 20년이 넘었다. 20년 넘는 기간 동안 국회 입법과정에 대한 많은 경험을 했지만, 입법과정에 대한 소개책을 쓰는 것에는 엄두를 내지 않았다.
국회 입법과정에 대한 소개책자가 이미 많고 국회 홈페이지만 들어가도 절차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많아 굳이 또 다른 소개책자를 만들어야 하나 싶었다. 또한 입법절차를 자세히 소개한다는 것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유용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은 다른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럼에도 결국 입법절차 가이드북을 발간하기로 결심하게 된 데에는 지평법정책연구소 이사장으로 계시는 이공현 대표님의 말씀과 국회 입법 경험을 가지고 있는 다른 지평 변호사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 약속도 영향을 끼쳤다.
이공현 대표님은 의외로 많은 사람이 법률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실제 법률을 개정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이가 대부분이라 쉽고 생생하게 입법절차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또한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국회 경험과 관심을 공유하는 변호사들의 집단 지성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고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회 입법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입법 과정에 대한 여러 가지 분석을 같이해 온 SNR 박원근 대표와의 의미 있는 협업의 성과물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한 것도 책 출간 최종 결정에 큰 몫을 했다. 빅데이터 분석으로 얻어진 여러 가지 결과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 상식들을 확인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대한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이 단순한 입법과정에 대한 소개를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법은 국가의 강제력을 수반하는 사회규범으로 정의되지만 보다 실천적 의미에서 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를 더 나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근거이기도 하다.
법과 정책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법이 살아 움직여야 하고, 정책은 헌법과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법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이는 최종적으로 입법을 통해 실현된다.
입법은 일련의 절차를 거쳐 완성되며, 입법절차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특정한 정책과 목적을 반영하여 제출된 법률안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심사와 의결을 마치고 정부 이송 및 공포를 거쳐 법률로서 효력이 발생되는 전체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입법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입법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이 가능하며, 이러한 능동적 대응은 단순한 이해관계의 조정을 뛰어넘어 궁극적으로 사회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를 확장하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가 된다.
이 책은 국회 입법절차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과 사례를 통해 절차에 대한 이해를 돕고 동시에 입법 과정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내용을 구성하였다.
특히 특정 법률안의 입법에 이해와 관심이 있는 기관, 기업, 단체, 시민의 관점에서 입법 과정과 대응 방안을 현실감 있게 추적해 봄으로써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능동적으로 국회 입법절차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집단 지성으로 발간하는 이 책이 입법에 관심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생생한 경험으로 전달되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입법 참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 이런 능동적 참여를 통하여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진정한 법치주의를 강화하고 바로 세우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원고를 작성해 준 민창욱 변호사, 김우연 변호사, 신용우 변호사, 곽경란 변호사 그리고 입법데이터 분석을 통해 생생하고 유용한 통계를 만들어 주신 SNR 박원근대표, 그리고 초안 작성 및 전체 책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해 준 이춘희 박사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법무법인(유) 지평 파트너변호사 김진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