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생애가 담긴 대작 중의 대작!
독일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희곡 『파우스트』는, 시인이자 소설가, 극작가였던 독일 고전주의의 대가 괴테에 의해 창작되었다. 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60여 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집필 기간이 길었던 만큼 『파우스트』에는 지식 및 사상을 비롯한 괴테 삶의 총체가 집약되어 있다. 작품은 총 2부 구성이다. 그중 1부에서는 파우스트가 영혼을 담보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한 후에 펼쳐지는 여러 일을 형상화했고, 2부에서는 서구문명 전통의 그리스적 요소들을 가지고 인간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폭넓게 탐구하였다. 개인적 차원에서 현세적 욕망이 드러나는 작은 세계를 다루는 1부에 비해, 2부는 그보다 거시적인 영역의 폭넓은 세계를 다루면서 여러 고전적인 암시가 나타나는데, 그렇기에 1부보다는 해석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부와 2부 사이에 20년이라는 집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작품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것도 그 평가에 한몫할 것이다. 이 시기에 괴테는 바이마르 공국의 정사에 관여하면서 세상살이의 희로애락을 직접 체험하였다. 광물학, 지질학, 색채론, 해부학, 식물학 등 여러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꾸준히 탐구를 계속했으며,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고대문화에 대해서도 깊은 조예를 쌓았을 뿐 아니라 시인으로서도 쉴러와 더불어 바이마르 고전주의 문학을 꽃피우는 데 앞장섰다. 이러한 경험이 괴테의 정신을 살찌우게 하고,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지게 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1부만으로 『파우스트』가 체험 문학으로서 독일 문학사에 길이 남았으리라 짐작될 만큼 작품의 가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2부가 없었다면 『파우스트』가, 인생의 의미를 찾는 철학적 작품이나 인류의 보편적 체험이 용해되어 있는 세계 문학사의 귀중한 기념비로까지는 인정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욕망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파우스트는 지적 욕망을 충족하고자 과학, 의학, 철학, 신학 등 당시 여러 정통 학문에 파묻혀 보았지만 결국 우주 본질에 대한 앎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금기시되는 마법이나 연금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절망한 나머지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려 했던 파우스트 앞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 파우스트의 목숨을 놓고 신과 내기한 다음이었다. 파우스트는 자신의 영혼을 대가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와 거래하면서 세속적 쾌락에 사로잡히게 된다. 젊음을 얻게 된 파우스트는 그레첸을 유혹해 사생아를 낳게 했을 뿐 아니라 그녀의 오빠와 어머니의 목숨을 잃게 하기까지 했다. 세간의 비난에 정신을 잃고 미쳐 버린 그레첸은 아이를 우물에 빠뜨려 죽인 죄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끝내 사형당해 죽고 만다. 그런데도 쾌락에 빠진 파우스트는 거기서 멈출 줄 몰랐다. ‘망각의 수면’, 즉 “레테(Lethe)강의 이슬”(4629행)로 목욕을 하고 난 다음 트로이로 세계를 옮겨 2부에서는 절세 미녀 헬레나를 구한 뒤 결혼하여 아들을 얻기도 하고, 다시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와 업적을 세운 뒤에는 황제에게서 간척지를 하사받기도 한다. 간척지를 개간하는 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노부부를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데….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이렇듯 고뇌하고 방황하면서도 결코 한곳에 머무르는 일 없었던 파우스트는, 전연 만족을 모르는 열망 그 자체였다. 언제나 무언가에 목이 말랐기에 시간 및 공간을 비롯한 자연현상, 윤리 등 모든 한계를 뛰어넘고자 노력하였으나 욕망에 가닿고자 했던 노력은 파우스트에게 방황을 가져왔고, 그 방황은 주위에 여러 희생자를 낳게 했다.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는데도 끝내 그는 구원받게 된다. 종교적 구원에 가까운 결말인 듯싶다가도 그렇게 간명히 치부하자기에는 ‘그 사람들은 과연 구원받을 수 있었을까’ ‘파우스트는 인간의 근대적 주체성을 두둔하는 인물은 아니었을까’ ‘메피스토펠레스란 삶을 피부로 느끼고 싶었던 억눌린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니었을까’ 하는 등의 여러 의문이 남는다. 각자만의 『파우스트』 해석이 있을 것이다. 저자 안삼환 교수의 자상하고 섬세한 안내가 필요한 대목이다. 구원이 마땅했는가에 대한 논의는 제쳐 두고라도, 파우스트에 대한 여러 해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세대를 관통하는 파우스트의 핵심 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