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시의 태양, 푸시킨
“우리 시의 태양이 졌다!”
1837년 1월 29일, 알렉산드르 푸시킨이 서른여덟의 나이에 결투 끝에 사망한 직후, 당대의 러시아 비평가이자 작가인 블라디미르 오도옙스키는 이토록 비통한 말로 그의 부고를 알렸다. 태양이 지면 만물이 어둠에 잠기듯, 푸시킨의 부재가 러시아 문화의 암흑기를 가져올 것이라는 공포에 가까운 절망이 이 말에는 담겨 있다. 이후 오도옙스키가 말한 “우리 시의 태양”이라는 은유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러시아 문학에서 푸시킨이 지닌 절대적 권위를 상징하는 ‘공식적인 관용구’로 자리 잡았다.
푸시킨은 단순히 ‘뛰어난 시인’으로만 정의될 수 없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빛과 질서를 부여한 ‘근원적 존재’다. 러시아 문학이 서구 문학의 영향 아래 자기 목소리를 찾기 위해 분투하던 시기, 푸시킨의 등장은 문학사적 ‘빅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그는 고대 교회 슬라브어와 귀족의 세련된 언어, 그리고 민중의 생생한 구어를 하나로 융해하여 ‘현대 러시아 표준어’를 확립했다. 그가 ‘태양’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가 창조한 언어의 빛 아래에서 비로소 러시아적인 삶과 풍경, 그리고 러시아인의 내면이 선명한 형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밝은 슬픔’을 선택한 시인의 삶
푸시킨은 황립 엘리트 교육기관 ‘차르스코예 셀로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관리로 임명되어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인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한 시인의 삶은 오랜 유배 생활로 가까운 벗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죽음을 맞는,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시인은 마치 조각가가 거친 돌을 깎아 조각상을 완성하듯, 자신을 둘러싼 적대적인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전기를 능동적으로 빚어 나갔다.
푸시킨은 지독한 절망에 처했을 때조차 삶을 긍정한 시인이다. 그는 비극적 허무주의가 아니라 ‘밝은 슬픔’으로 삶을 바라본다. 그의 시는 행복이나 고통의 어느 일면에 천착하는 대신 삶 전체를 수용하고 삶을 낙관하는 파토스가 넘쳐난다. 푸시킨은 현실에 굴복하거나 이상주의에 빠지는 양극단을 피하고 현실주의자로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 주며 담대히 인문주의의 이상을 견지했다. 그의 시는 인간다움의 기초로서 자유의 소중함에 대한 생각과 자유인의 삶의 이상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불의의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 판단과 행동의 자유와 윤리적 책임을 견지하며 환경에 종속되지 않는 능력이 푸시킨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삶이 너를 속이거든
푸시킨의 시를 읽는 것은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성내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이 나를 속일 수밖에 없는 우발적인 것임을 긍정하고, 그 속임수조차도 삶의 생동하는 유희로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는 일이다.
푸시킨에게 삶이란 복잡하고 모순적인 것이었다. 삶은 때로는 칠흑같이 암울하지만 어둠과 빛, 어느 한 면에 고착되지 않는 것, 실로 그 점에 삶의 매력, 아름다움이 있다. 푸시킨의 삶에 대한 믿음, 삶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적 지각의 기원에는 인간 존재의 ‘우연성’, 그 ‘우발성’ 자체를 긍정하는 그의 ‘삶의 철학’이 놓여 있다. 삶은 흐른다. 어둠과 빛, 공허와 충만의 순간들이 번갈아 삶의 페이지를 채운다. 그렇게 낙관도 염세도 아닌, 단선적인 시각에 갇혀 고여 있지 않은 흐르는 물과 같은 태도로 삶을 대한다. 삶은 새로운 생성의 전망 아래 열려 있다.
그리하여 푸시킨의 시를 읽는 것은, 우리 삶에 도사린 무의미와 허무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는 일이며,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찾아올 ‘우연한 빛’을 기다리는 근본적인 낙관주의를 배우는 일이다. 푸시킨의 시는 ‘경이로운 우발적 순간’을 품고 있는 ‘삶의 찬가’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