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것 같지만 다른색으로 한 문장 덧붙이면 축복이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중고등학교를 1.6km 거리의 산동네에서 6년동안 절룩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등산하듯 오르내리는데 지옥같았다.
고 3때는 감기, 몸살에 시달리다가 대학 입시 1주일 전에 피 토하고 결핵에 걸렸다.
수학을 못해 평균 점수가 낮아 4년제 대학은 못가고 전문대 치기공과에 들어갔다가 글이 저절로 나와 학과공부는 안되어 중퇴하고 집에 들어앉아 글만 썼다.
다시 대학을 가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대학을 가지 못하고 장애 때문에 취업도 안되고 실업자가 되어 밤과 낮을 거꾸로 생활하며 글만 썼다.
늦은 나이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돈이 없어 중퇴하려고도 생각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장애인이라 취직은 안되어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지냈다.
작은 사무실을 차렸지만 경험과 인맥이 없어 6개월만에 문 닫고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백수였다.
지인에게 내가 사업을 시작할테니 그때 부르면 같이 하자고 약속했으나 돈은 없고 지인은 언제 사업 시작하냐며 재촉했다.
사업이 사소한 일로 망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편도선 수술을 했다.
여자를 사랑했지만 나를 왜 싫어하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차였고 그리움의 고통으로 지독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우연히 들어간 회사에서는 잘 안맞아 2주만에 자발적으로 나왔고 정말 어렵게 들어간 원하는 회사에서 1달만에 쫒겨났다.
이렇게 쓰면 불행하고 어두운 일생 같지만 문장 하나를 덧붙이면 어떨까?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다리를 절어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숨지 않고 아이들과 부딪히며 싸우다가 친해졌다.
중고등학교를 1.6km 거리의 산동네에서 6년동안 절룩거리며 무거운 가방을 들고 등산하듯 오르내리는데 지옥같았다.
고통을 견디니 팔이 강해져 턱걸이를 15번 할 수 있었다.
고 3때는 감기, 몸살에 시달리다가 대학 입시 1주일 전에 피 토하고 결핵에 걸렸다.
2년동안 약을 먹으며 결핵을 치료하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겼고 폐를 앓아 숨쉬는 자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수학을 못해 평균 점수가 낮아 4년제 대학은 못가고 전문대 치기공과에 들어갔다가 글이 저절로 나와 학과공부는 안되어 중퇴하고 집에 들어앉아 글만 썼다.
문학이 좋아 저절로 글이 써지는 4년동안 지하실에서 많은 글을 써서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비로소 환한 햇빛으로 나왔다.
돈이 없어 다시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장애 때문에 취업도 안 되고 실업자가 되어 밤과 낮을 거꾸로 생활하며 글만 썼다.
학력고사 1주일 남겨놓고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 봐서 합격하여 남보다 5년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했다.
늦은 나이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돈이 없어 중퇴하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어떻게든 다니려하니 장학금 등 여러 방법으로 등록금을 마련하여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장애인이라 취직은 안되어 작은 사무실을 차렸지만 경험과 인맥이 없어 6개월만에 문 닫고 프리랜서라고 하지만 사실상 백수였다.
지인에게 내가 사업을 시작할테니 그때 부르면 같이 하자고 약속했으나 돈은 없고 지인은 언제 사업 시작하냐며 재촉했다.
300만원이라는 터무니 없는 돈으로 30평 사무실을 얻어 사업을 시작했는데 수없이 많은 손품과 발품을 팔며 2년동안 잘 유지했다.
사업이 사소한 일로 망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급성편도선 수술을 했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 노력하니 이후부터 편도선이 붓는 일은 없었다.
여자를 사랑했지만 나를 왜 싫어하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차였고그리움의 고통으로 지독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이 때의 체험을 소설로 써서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하는 소설로 선정되었다.
우연히 들어간 회사에서는 잘 안맞아 2주만에 자발적으로 나왔고 정말 어렵게 들어간 원하는 회사에서 1달만에 쫒겨났다.
취업은 나에게 안맞는다고 생각하고 방송 작가, 카피라이터, 출판기획 등을 하며 내가 하고싶은 분야를 스스로 고용하여 다양하게 경험했다.
혼자서 터득하여 이벤트 기획, 컴퓨터 조립 매장, 네이미스트, 학원, 출판사를 창업하여 20년동안 재미있게 운영하고 있다.
불행한 문장을 쓰고 거기에 다른 색으로 좋아질 문장을 쓰면 삶은 분명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