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문학과 식물을 사랑한 작가 김민철이 펴낸 2020년대 한국 문학 안내서다. ‘꽃 기자’로 알려진 김민철 작가가 『꽃으로 박완서를 읽다』 『꽃으로 토지를 읽다』에 이어 펴낸 이 책은 최근 주목받는 젊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을 꽃과 나무 이야기로 풀어낸다. 최은영, 정세랑, 김애란, 백수린, 조해진 등 202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식물들을 소개하고 그 식물이 작품에서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 문학적으로 설명한다. 무심코 넘긴 소설 속 꽃 한 송이에 작가들이 어떤 의미를 담았는지 그 의도를 파악하는 재미가 있다.
■우리 시대에 뿌리내린 문학 속 꽃
식물에 대한 관심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한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식물은 단순한 배경 장식이 아니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상징이다. 2000년대 이전 한국 소설에서 화단 꽃과 야생화들이 정겨운 향토성과 전통적 가치를 상징했다면,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에서 다루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실내식물과 절화, 외래종이 등장해 도시적 감수성과 세계성을 드러낸다.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싱아는 시골에서의 유년기를 떠올리고, 박경리의 『토지』에서 서희가 움켜쥐는 해당화는 광복의 기쁨을 드러낸다. 한편 젊은 작가 서유미의 「밤이 영원할 것처럼」에서 집무실 책상 아래 놓인 고무나무는 상처 입어도 이어지는 삶을,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에서 린덴바움은 한창때 유학생의 학문적 열정을 상징한다. 실내로 수렴하는 동시에 국경 밖으로 뻗어나가는 현대인의 관심사가 젊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이러한 한국 소설 속 식물의 변화를 조명하며, 독특한 상상력으로 소설 속에 식물을 담아낸 25명의 작가와 그 대표작을 소개한다.
최은영, 정세랑, 김금희, 김숨, 김연수, 정지아, 조해진, 백수린, 김애란, 손원평, 김지연, 김멜라, 박상영, 김기태, 서유미, 윤성희, 홍민정, 김초엽, 김호연, 윤정은, 이유리 등 요즘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들이 그 주인공이다. 여기에 더해 꾸준히 사랑받다가 오늘날 다시 주목받는 작가인 이금이, 양귀자, 천명관, 구효서의 소설도 다룬다. 나이가 어린 작가들의 작품만을 고르기보다 젊은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품에 집중한 셈이다.
■식물학과 문학, 생태와 서사의 교차점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작품 속 꽃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젊은 작가들의 소설 속에서 꽃이 다양하게 활용되는 방식을 해설한다. 한 가지 식물이 등장하는 여러 작품을 선보이고, 한 명의 작가가 작품에 그려낸 여러 식물의 생태와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독자들에게 다층적인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이야기는 식물의 서식지, 유전적 계통, 활용법 등 공통점을 통해 여러 소설로 뻗어나가 문학적 상상력과 식물학적 지식의 접점이 된다.
예를 들어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열대 꽃 플루메리아는 이 꽃을 자주 그린 천경자 화백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곧이어 플루메리아와 함께 찾아볼 수 있는 열대 꽃 부겐빌레아, 하와이무궁화 그리고 협죽도의 생태와 특징으로 연결된다. 협죽도라는 주제는 성석제 작가의 단편소설 「협죽도 그늘 아래」에 대한 소개로 이어진다.
■121장의 사진으로 만나는 문학 속 식물
김민철은 20여 년 동안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풍부한 사진 자료를 수집해왔다. 오대산 옥수수꽃, 제주도와 거문도의 수선화, 하와이 꽃 플루메리아, 이른 봄에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 스페인 아몬드꽃 등 121장의 식물 사진을 통해 꽃의 생김새와 특징, 개화 시기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여름철 흔히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 자생 나리류, 열대 지방의 대표적 관상수 알라만다와 익소라와 란타나 꽃, 우리도 모르는 사이 수출되어 서구권에서 크리스마스트리로 인기를 끄는 우리나라 특산식물 구상나무까지, 다른 식물과 구별하기 쉽지 않은 식물들을 구별하는 방법까지 함께 담았다.
서유미 작가의 단편소설 「토요일 아침의 로건」에 등장하는 리시안셔스 꽃은 장미와 착각할 수밖에 없는 외형을 가졌다. 더군다나 절화로 인기 있는 구근식물 라넌큘러스와도 비슷하게 생겼다. 김민철은 화려한 겹꽃을 피워 사랑받는 세 식물을 사진으로 담아 그 차이점을 눈으로 보여준다.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입동」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흔히 ‘고무나무’로 뭉뚱그려 이야기하는 실내식물 삼 형제, 인도고무나무·벵갈고무나무·떡갈잎고무나무가 각자 어떤 특징을 가졌는지도 설명한다.
■문학과 식물의 공생을 꿈꾸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한국 소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김민철의 『꽃을 사랑한 젊은 작가들』은 문학과 식물의 교감을 독창적인 시선으로 주목한다. 단순한 문학 해설을 넘어, 꽃과 나무를 매개로 문학을 새롭게 바라보는 안내서 역할을 한다. 김민철은 꽃을 사랑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어떤 작가의 어떤 소설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 이 책을 써냈다고 말한다. 식물 애호가는 소설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를 통해 문학의 깊이를 느끼고,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익숙한 작품 속 무심코 지나쳤던 식물에서 아름다움과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