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당의 여러 저작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변록≫[일명 ≪통설(通說)≫]이다. 그의 학문적인 특징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뿐 아니라, 그 유명한 사문난적(斯文亂賊)의 풍파를 일으킨 대표 저서이기 때문이다. ‘사변(思辨)’이란 두 글자는 ≪중용≫의 “신사지(愼思之) 명변지(明辨之)”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인데, “신중히 생각하고 분명하게 변별한다”는 뜻이다. 사변록은 총 구성 14책에 달한다. 《사변록》의 내용은 사서(四書)인 ≪대학(大學)≫, ≪중용(中庸)≫,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상서(尙書)≫, ≪시경(詩經)≫을 박세당 나름으로 주해(註解)한 것이다. 이러한 주해가 매우 독특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이다.
≪사변록≫에 나타난 박세당의 경전 해석을 현대적 시각으로 볼 때는 별달리 문제 삼을 바 없지만, 당시로 보아서는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한 시도였다. 박세당은 경전에 대한 종래의 어떠한 기존 해석에도 구애받지 않으려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특히 ≪대학≫과 ≪중용≫의 경우에 두드러진다. 그는 대부분의 고경(古經)들이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의 화(禍)를 겪고, 결국 다시 복원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으로 인해 정자(程子)와 주자(朱子) 이전부터 의미와 맥락이 통하지 않는 착간처(錯間處)들이 존재했으며, 정·주(程·朱) 이후에도 그러한 부분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음을 직시했다. 그래서 박세당은 나름대로 의미와 문맥을 비롯해 장절(章節)의 편차(編次)에 이르기까지 모든 측면에서 전통적인 시각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태도가 심지어 당시 학계로부터 거의 절대시되던 정·주의 견해까지도 비판을 가하도록 한 것이다. ≪주역≫은 착수도 못했고, ≪시경≫은 미완성이라는 점에서 안타까운 생각도 들지만, 이미 완성된 것만으로도 한국 사상사에서 차지하는 ≪사변록≫의 지위는 공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