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실패는 그 가치를 모르기 쉬운 원석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빛이 발하는 걸 알 수밖에 없는 보석. 나는 실패의 경험이 지닌 가치를 모두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마치 지금의 내가 되기 위해 실패해온 것처럼.
― 〈들어가며〉, 11쪽
연습생 입장에선 지금까지 인생의 3분의 1 혹은 절반을 바쳤거든요. 게다가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이 회사에 로열티(충성도)도 생긴 상태고요. 이 회사 말고는 갈 데가 없을 것 같고요. 다른 회사에 간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막막하죠. 낭떠러지에서 발 하나 걸쳐두고 버티는데 땅이 흔들리는 듯한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이죠.
― 1st Universe 준비한 적 없는 삶, 〈아이돌 상담심리 전문가 조한로〉, 25쪽
저는 가끔 역할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의 아이이자 부모이고 가장이라고. 한때는 가족의 결핍을 외부에서 해소하려고도 했어요. 예를 들어, 남자 친구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거죠. 그러다 보니 결말이 비참해지더라고요. 내가 내 인생을 오롯이 책임지기로 선택한 것이니 나에게로 돌아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가 내 삶의 온전한 주체로 살아야 하는 거죠.
― 1st Universe 준비한 적 없는 삶, 〈탈가정 청년 배혜림〉, 45쪽
거울에 내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아닌 거예요. 아주 거만한 얼굴이 있었죠. 마치 귀신을 본 듯했어요. 소름이 끼쳐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서 멍하니 있었어요. 나 자신을 잃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 1st Universe 준비한 적 없는 삶,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65쪽
실패했다는 건 최소한 ‘했다’는 뜻이잖아요. 그게 중요해요. 머릿속에 있는 거? 말로만 하는 거? 중요하지 않아요. 해야죠. 실패해도 돼요. 실패가 없는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훨씬 낫죠. 실패는 가능성이니까.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결국은 그게 삶의 원동력이 돼요.
― 2nd Universe 끝장? 아니, 성장, 〈배우 김혜수〉, 91쪽
‘실패하면 죽어야지.’
살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있다. 결기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실패하면 끝이다.’라며 성공에 내 목숨을 거는 때 말이다. 임라라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 2nd Universe 끝장? 아니, 성장, 〈크리에이터 임라라〉, 117쪽
그를 만나기 전 그가 성매매를 누구의 실패로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성매매에서 빠져나오려다 실패하기도 했던 과거를 어떻게 보는지도. 자신을 냉철하게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질문들에 내놓은 그의 말들이 좋아 섬세하게 담았다. 자신을 찾아온 소녀들이 낙담할 때 그는 자신의 실패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그를 만난 뒤 글을 쓸 때 그의 이야기를 ‘우주가 바뀐 스토리’라고 적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틀렸다. 이건 ‘우주를 만든 스토리’다.
― 3rd Universe ‘함께’라는 행성에서, 〈성매매 경험 당사자 진〉, 161쪽
사투리도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가 살아온 환경뿐 아니라 성격, 시간, 웃음과 눈물 같은 것들이 배어있다고 느껴서다. 한부식 원장의 경남 사투리엔 유독 그가 잘 담겨있었다. 그의 말투를 그대로 살리고 싶어 녹음 파일을 듣고 또 들으며 인터뷰를 썼다. 워낙 영화 같은 인생을 살아서다. 마약에 중독돼 인생의 밑바닥, 아니 그의 표현대로 ‘지옥 같은 세상’에 다녀왔으니 오죽하겠나. 게다가 과거 일화를 마치 재현하듯 울고 웃으며 말해준 덕분에 그의 얘기에 푹 빠져 인터뷰를 했다. 다섯 시간 가까이 한 인터뷰가 마치 한 덩어리처럼 느껴졌다.
― 4th Universe 실패를 껴안고 나아간 이들의 우주, 〈중독재활시설 원장 한부식〉, 201쪽
어떤 실패는 발효할 시간이 필요하다. 마치 세균 같은 미생물이 발효를 거쳐 몸에 유익한 음식이 되는 것처럼. 웹툰 〈루나파크〉로 유명한 홍인혜 작가가 그랬다. 실패의 의미를 깨닫는 데 6년이 걸렸다. 지독한 전세 사기를 당해 3년을 괴로움 속에 살았다. 절망의 고점을 갱신하고 갱신한 끝에 겨우 해결하고도 3년간은 그 경험을 입 밖에 내기 어려웠다. 그렇게 6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웹툰으로 그 기억을 소환하고 공유했다. 읽다 보면 분기탱천하게 되는 이 실패 스토리에 많은 대중이 공감했다.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관련 법을 정부가 바꾸는 계기도 됐다. 당시엔 그 실패로 얻은 게 뭔지 자신조차 알 수 없었지만, 수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는 알게 됐다.
― 4th Universe 실패를 껴안고 나아간 이들의 우주, 〈작가 홍인혜〉, 225쪽
삶에 지쳐 스스로 나가떨어지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라는 경험칙. 인생을 역전(逆轉)시키는 건 결국 자신이라는 진리. 그러니 때로 세상이 나를 배신해도, 내가 나를 배신하지 않으면 된다고 ‘루나의 인생 역전’이 말한다.
― 4th Universe 실패를 껴안고 나아간 이들의 우주, 〈작가 홍인혜〉, 245쪽
결국 시간이 지나고 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죠. 콜럼버스는 인도를 찾아 항해를 시작했지만, 도착한 곳은 아메리카 대륙이었잖아요.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콜럼버스의 입장에서는 실패였겠죠. 그러나 지금 우리는 아무도 그걸 실패라고 하지 않잖아요. 신대륙 발견이라고 평가하지. 실패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활용되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 4th Universe 실패를 껴안고 나아간 이들의 우주,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안혜정〉, 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