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품 테마는 내가 경험해서 잘 알고 있으며, 그 진실과 성실함과 현실성을 보증할 수 있는 인간성이나 사랑이나 본능 또는 숭고한 생을 묘사하는 일이다.”
_2페이지 중에서
1882년 3월 27일의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헤르만은 몰래 학교를 결석했다. 벌을 주느라고 내가 손님방에 가둬 두었다. 그 애는 “날 가둬 두셔도 별 소용이 없어요. 창밖을 내다보면서 재미있게 지낼 수 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얼마 전 그 애는 침대에 누워서 자기가 작곡, 작사한 곡을 노래하고 있었다. 아빠가 들어갔더니 그 애는 “전 바다의 요정처럼 멋지게 노래할 줄 알지만 또 그 요정처럼 못된 아이인가 봐요”라고 말했다.
_13~14페이지 중에서
헤세는 아버지의 덕을 톡톡히 보았는데 그것은 부친이 가졌던 훌륭한 장서였다. 당시 헤세는 열광적으로 독서에 몰두했는데 그 후에도 그는 평생 훌륭한 독서가였다. 부친과 조부의 서재는 항상 열려 있었고 청년 헤세는 독서를 할 만한 자유 시간이 많았던 까닭에 높은 수준의 문학 연구를 할 수 있었다. 멋진 문체를 만들면서 그는 ‘멋진 산문가’가 되고자 노력했다.
_37페이지 중에서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 그것이 바로 저와 쇼팽의 관계입니다. 아니 그 이상인지도 모르지요. 쇼팽의 따스하고도 생생한 멜로디에, 자극적이면서도 세련되고 예민한 멜로디에, 속되지 않고 친밀한 음악에 저의 정신세계의 모든 본질이 매달려 있습니다. 저는 쇼팽이라는 존재의 그 고상함, 세련미, 귀족성을 찬미합니다. 아무리 속될 것일지라도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고귀합니다.
_49~50페이지 중에서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내용이며 위안이다. 물론 모든 생의 찬미자들 역시 죽어야만 할 운명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사랑은 증오보다 우위이며, 이해는 분노보다, 평화는 전쟁보다 우위라는 사실을 지금의 이 불행한 세계 대전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우리로 하여금 더 절실하게 느끼도록 만든다.
_111~112페이지 중에서
“시를 짓거나 사색할 만한 시간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자유로운 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래서 마흔 살쯤 되었을 때부터 목탄이나 물감을 손에 묻혀 왔다. 나는 한 번도 경쟁을 해 본 적은 없다. 자연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꿈의 세계를 그렸기 때문이었다.”
_136페이지 중에서
예술이란 길고 다채롭고 구불구불한 길로, 예술의 목표란 예술가의 인간성과 자아를 완전하고 철두철미하게, 세밀하게 파헤치며, 완전무결하게 표현함으로써 결국은 자아를 벌거벗은 모습으로, 지쳐 떨어지고 재만 남을 때까지 속속들이 파헤치는 일이다.
_143페이지 중에서
내가 쓴 산문은 거의 다 영혼의 자서전으로 줄거리나 사건 또는 긴장을 주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작품 하나하나가 본질적으로는 한 특별한 인간, 즉 앞서 말한 ‘신비한 인물’의 세계와 자신에 대한 세계의 관계를 다루는 독백이다.
_168페이지 중에서
〈4월 밤에 쓴 시〉는 그해 초 세상을 떠나기 전에 쓴 시인데 마지막 연이 이렇게 끝나고 있다.
네가 사랑하고 추구했던 것,
네가 꿈꾸고 체험했던 것,
그것이 기쁨이었는지 고통이었는지 너는 확실히 알 수 있느냐?
G장조와 A단조, E단조와 D장조 이것을 귀로 구별할 수 있단 말인가?
_242~243페이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