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회사로 출근하듯 승무원도 비행 스케줄에 따라 출근을 한다. 다만, 승무원의 출근 시간은 비행 출발시간에 따라 달라지기에 회사원처럼 일정하지 않다. 이른 새벽 4시부터 집을 나서거나, 남들이 자려고 침대에 누울 무렵 짐을 챙겨 밤 9시에 공항으로 향하기도 한다. 항공사에서는 승무원의 출근을 쇼업Show-up이라는 용어로 일컫는다. 쇼업 시간, 즉 출근하는 시간은 비행 출발시간을 기준으로 하여 2~3시간 전으로 설정되는데, 국내선과 국제선에 따 라 다르고 항공사와 공항에 따라서도 조금씩 달라진다.
직장인 친구들과 만나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다 헤어질 때쯤이 되면 누구 한 명은 꼭 이렇게 물었다.
“내일은 비행 어디로 가?”
“뉴욕.”
그런 뒤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가 이 직업을 가졌음에 감사해야 할 부분들을 마구 읊어주었다.
“야, 진짜 좋겠다. 나는 언제 뉴욕 한번 가보냐.”
“뉴욕 길거리에서 감자튀김만 먹어도 행복할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말을 할 때 서술어까지 분명하게 끝맺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승무원 직업 특강으로 중고등학교 나 대학교에 나가면 꽤 많은 학생이 “질문이 있는데… 승무원이 되고 싶은데… 키는 어느 정도…?”라고 말한다. 대부분 질문을 할 때도 어미까지 깔끔하게 완결 지어 말하지 못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한다. 타고난 키는 바꿀 수 없지만, 말하는 방식은 바꿀 수 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키와 몸무게를 면접 전에 측정했었다. 나 역시 한 국내 항공사의 면접을 보러 갔을 때, 키와 몸무게를 잰 경험이 있다. 면접복을 차려입은 지원자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갑자기 신체검사를 하는 모양새란, 기묘한 느낌을 자아냈다. 현재 국내 항공사들은 인권 문제로 키 제한을 폐지했지만, ‘암리치’를 대신 시행하고 있다. 암 리치는 평평한 바닥에 서서 발의 뒤꿈치를 최대한 들고, 한쪽 손을 쭉 뻗어 손가락 끝이 닿는 높이를 측정하는 것이다.
비행 중 공황 장애로 인해 과호흡 증후군을 나타내는 승객도 많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승객을 똑바로 눕힌 뒤, 꽉 조이는 옷이나 벨트를 느슨하게 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런 다음에는 안정된 심호흡을 하도록 지도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코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입을 오므리며 천천히 입으로 숨을 내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증상이 심하면 비닐봉지나 페이퍼 백을 너무 밀착되지 않는 범위에서 코와 입에 가져다 댄 뒤, 그 안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건 부정의 의미다. 하지만 인도에서는 정반대로 작용했다. 대화 중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 동의한다는 뜻이고, 대화하지 않아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것은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전한다는 제스처다. 머리를 팔자 모양으로 흔들면 상대방의 질문이나 요구에 수락한다는 소리다. 새로운 소통 방식을 알게 된 다음부터 나는 인도 비행에서 그들과 함께 세차게 고개를 젓는 승무원이 되었다.
혹자는 비행기에서 무슨 마인드맵을 그리고 일기를 다 쓰냐며 뭐라 할 수 있겠지만, 그는 ‘비행기니까’ 그런 일을 일부러 한 것이다. 비행기야말로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상태에서 나 홀로 가만히 앉아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들일수록 무진 바쁘고, 쏟아지는 연락은 물론 찾는 사람들이 항상 줄을 잇는다. 외부와의 연결과 접촉이 시도 때도 없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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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무원이 된다면 정말이지 매일 같이 새로운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흥미진진한 경험을 쌓아나갈 것이다. 지금 하는 도전은 승무원이 된 후에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럴듯한 승무원의 모습으로 멋있어 보이다가도 어떤 때에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며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 남몰래 가슴이 뛸 때도, 미소를 짓게 될 때도 있을 것이다. 결국은 그 힘으로 매번 하나의 도전인 비행을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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