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내가 더 엉망이 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어요. 의아했어요. 사람들은 모두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고 하는데 나는 왜 괜찮을까? 그게 제 질문이었어요. 나는 왜 괜찮았을까요?” _서문. 왜 나는 괜찮았을까요?
회복탄력적 특징이 몇 개나 있느냐는 핵심이 아니다. 나는 연구에서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특징을 여럿 찾아냈다. 장담컨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개수는 상관없다. 문제는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회복 가능성 체크리스트’에 매달리다 보면 그 리스트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사람은 결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회복탄력성의 역설resilience paradox’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는 회복탄력성과 상관관계가 있는 통계적 특징, 곧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이 가지는 특징을 알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실제로 고통스러운 사건이 일어났을 때 누가 회복탄력성이 높고 누가 낮을지는 이 상관관계로 예측할 수 없다. _서문. 왜 나는 괜찮았을까요?
PTSD 증상도 마찬가지다. 잠재적 트라우마 사건에 노출된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단지 몇 가지 증상만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이것저것 많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으며 거의 모든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증상들은 하나의 연속체로 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통계적으로 분석했을 때 일관성 있는 원칙도 없고, 증상이 나타날 때와 나타나지 않을 때를 명확히 구분할 만한 범주도 찾을 수 없다. 사실 거의 모든 정신질환이 마찬가지다. _1장. PTSD의 발명
자연재해나 성폭행, 육체적 폭행, 심지어 총기 난사처럼 다른 사건에 관한 연구에서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회복탄력성 궤적이 발견된다. 암이나 심장마비처럼 생명이 위급하고 건강에 치명적인 사건을 겪은 뒤에도 회복탄력성 궤적의 비율은 비슷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이나 이혼, 실직같이 쓰라린 경험을 한 사람들도 거의 동일한 빈도로 회복탄력성 궤적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서로 상이한 조사에서 공통적으로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가 회복탄력성 궤적을 보인다는 것은 3분의 2에 달하는 다수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_2장. 회복탄력성을 찾아서
모든 실험 결과는 하나로 귀결된다. 대응 및 정서조절 전략에는 본질적으로 좋고 나쁨이 없다. 모든 전략에는 이득과 손실이 따르며, 특정 상황의 필요만 해결할 수 있어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새로운 이론이 아니다. 대응 및 정서조절 분야의 주요 이론가들은 상황의 변화와 관련된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항상 강조해왔다. 또한 이들은 시기timing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요인 발생 초기에 효과가 있던 전략도 스트레스가 진행될수록 별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이다. _4장. 회복탄력성의 역설
유연성 마인드셋은 기본적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으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유연성 마인드셋의 중심에는 상호연관된 세 가지의 믿음이 있다. 바로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optimism’, 자신의 대응능력에 대한 ‘자신감confidence’, 위협을 ‘도전challenge’으로 간주하는 태도다. 각기 다른 연구 결과를 통해 이러한 믿음이 회복탄력성과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_5장. 유연성 마인드셋
유연성 마인드셋은 본질적으로 변화와 재창조를 겪는 과정이다. 몸이 아플 때마다 칼로는 그림을 통해 다시 태어났다. 그러면서 그녀는 역경을 극복하는 데 유연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로 남았다. 친한 친구였던 롤라 알바레스 브라보Lola Álvarez Bravo는 이렇게 말했다. “칼로는 유일하게 자신을 낳은 화가입니다.” 실제로 칼로의 그림 중에는 출생의 상징을 심도 있게 묘사한 작품이 꽤 있다. _6장. 시너지 작용
“나 자신이 정말 끔찍한 존재처럼 느껴졌어요.”
그는 불안했다. 스스로가 수치스러웠으며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졸다가 가위에 눌려 이상한 꿈에서 깨곤 했다. 아파트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혹시 자신이 노출될까 봐 두려웠다.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어떡하지? 사실 그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고, 최소한 그들의 생김새에 대한 실질적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알아볼까 봐 무서웠다. 그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놀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들에게 다시 잡혀 온몸을 두들겨 맞을 수도 있었다.
사고 후 세 번째 날 밤, 폴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중략) 자신이 아무런 걱정 없이 안전하게 거리를 걷고 있다고 상상하자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전에 안전하다고 느꼈다면 그때의 느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갈 것 같았다. 최근 들어 처음으로 희망의 빛이 보였고, 낙관적인 기분까지 들기 시작했다. _7장. 유연화 단계
유연화 단계를 구성하는 기술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각 요소를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때로는 고통스럽게 배워야 한다. 어린이들에게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상황 단서를 해독하고, 충동을 억제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수정하고 맞춰나가야 한다. 이 뛰어난 기술은 부모나 다른 어른들의 지도를 받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된다. 나이를 먹고 두뇌가 발달하면서 이런 기술은 점점 쉬워지고 결국 자동화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보았듯이 각 요소 자체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최선의 대응전략을 구사하고 아무리 정확히 맥락 단서를 파악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유연성에는 서로 다른 기술들을 조합해서 추적하고, 조정하고, 변화시키는 작업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_8장. 유연해진다는 것
자기대화는 계획적으로 사용할 때 효과가 있다. 이를 ‘목표지향적 자기대화goal-directed self-talk’라고 한다. 즉흥적인 자기대화와 목표지향적 자기대화는 매우 다르다. 즉흥적 자기대화는 내면의 심리상태가 표출되어 의식 밖으로 내뱉은 것이다. 반면에 목표지향적 자기대화는 내적 언어가 통제된 형태로 표출되며, 이를 계획적으로 이용하여 심리적인 과정과 기술을 쉽게 동원할 수 있다. 또한 목표지향적 자기대화는 유연성의 구성 요소들과 깊은 연관성이 있다. 예를 들어 상황을 재평가하고, 자신감을 키우고,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을 손쉽게 만들고, 노력을 증대시키며, 감정을 조절하고, 대응방식을 변화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
특히 유연성 마인드셋이 목표지향적 자기대화와 결합되면 긍정적인 독백이 만들어지고, 이는 유연성 마인드셋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더욱 강화시킨다. 예를 들어 낙관적 사고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는 괜찮을 거야”, 문제해결의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내가 처리할 수 있지”, 문제해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대책을 마련하겠어”라고 하면 된다. _9장. 우리 자신에게 말 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