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1990년이었다. 아버지가 56세의 나이에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1972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셔서 18년간 헌신적으로 일해 오시다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작업복 차림의 동료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음 한편에 깊은 의문이 남았다. 평소 집에서는 과묵하시고 무던한 모습이었던 아버지. 남은 것이라곤 병역 수첩과 주민등록증뿐이었기에, 아버지의 삶을 나는 그저 평범했던 기억들로만 회상하고 있었다.
직장 동료들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험한 일을 앞장서 맡고, 서툰 기술자들에게 끝까지 기술을 전수해 주시며, 때로는 막걸리 한잔을 기울이며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다정한 분이셨다고 했다. 특히 바다로 떨어진 후배를 구하려고 선박 70미터 높이에서 몸을 던져 구조했다는 일화를 듣고 온 가족이 놀랐다.
당시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찾기 어려웠던 시대라 가정은 잠시 머물다 가는 쉼터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퇴근 후 집에 돌아오시면 말씀을 잘 꺼내지 않으셨기에 나는 아버지께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야, 아버지가 얼마나 헌신적으로 일하셨고 어떤 관계를 맺으셨는지 비로소 알게 되면서 그리움과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와 술 한잔 나누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갈증과 그리움이 있다. 나는 그 아쉬움을 계기 삼아 공직에서 보낸 나날을 돌아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일기를 썼다. 누구나 겪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계약서 없는 의무이행을 위한 이 시대의 고달픈 아버지의 삶을 정리한 이 책은 아버지와 나누지 못한 대화에 대한 나만의 답이자, 내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장면이다. 긴 글이지만, 나와 나누는 잔잔한 대화라 여겨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오랜 시간 써 온 일기들과 나의 일상을 엮어 ‘다미아빠의 울산일기’라 이름 붙였다. 책 제목은 조선 정조 4년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건륭제의 만수절(萬壽節, 칠순 잔치) 축하 사절로 중국에 갔을 때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열하일기’에서 힌트를 얻었고, 다미는 큰딸의 애칭이다. 비록 연암의 글만큼의 무게를 가지지는 않겠지만, 울산에 50여 년을 살면서 겪었던 나의 기록이다. 감히 ‘울산일기’라 이름 붙임을 양해 바라며 ‘다미아빠가 쓴 울산일기’ 정도로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문영 시인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출판에 애써주신 푸른고래 출판사 오창헌 대표께도 감사를 전한다.
2024년 11월, 박 성 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