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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를 도와주려고 그랬다니까요. 아무도 그 아이를 돕지 않았잖아요? 경찰이 와도 아무 소용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뿐입니다.
처음이요?
일 년쯤 되었습니다. 겨울이 끝나 갈 무렵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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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좀 열어 주세요, 도와주세요. 20층, 19층, 18층, 17층, 16층, 15층, 살려주세요. 14층, 13층, 숨이 찬 아이가 누군가 계단실에 묶어 놓은 자전거 뒤에 몸을 숨겼죠. 그리고 뒤따라 커다란 발소리가 쿵쿵쿵 울렸죠. 모두 아시다시피 아파트 계단은 소리가 잘 울리죠. 하지만 아무도 내다보지 않았었죠. 봄이 될 즈음의 그날 밤이 시작이었죠.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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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또 허물어질 것입니다. 귀동냥으로 들은 사람들 말로는 50층짜리가 지어질 거라고 합니다. 앞으로 내 집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살게 될까요? 제가 과연 그 사람들의 편안하고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어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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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깨니까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내 오른쪽은 109동이고, 내 왼쪽은 901동이다. 나는 109동과 901동 사이에 있다, 딱 한가운데.
길이 생기고 나무도 심고 그러자 사람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109동에도 901동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건물 한 칸 한 칸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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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을 원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죠. 음. 보통은 방이 몇 개인지, 버스 정류장은 얼마나 가까운지, 주방과 화장실은 잘 되어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미로 집 같은 특수한 주택은 저를 찾아오셔야만 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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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씨는 높게 쌓인 파일들을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짚어 봅니다. 가는동자꽃이 살기 좋은 야트막한 산은 이 근처에는 남아 있질 않습니다. 벌써 많은 산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럼 수리부엉이와 올빼미와 박쥐가 살 동굴도 남아 있지 않을 테지요. 수달과 청개구리, 맹꽁이가 살 수 있는 깨끗한 강물도 있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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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씨는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입주민이 있으니까요. 옥상 문을 열자, 널따란 옥상 정원에는 분홍빛 가는동자꽃이 가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