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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무인되기


  • ISBN-13
    979-11-6684-365-5 (94910)
  • 출판사 / 임프린트
    세창출판사 / 세창출판사
  • 정가
    15,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2-02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노영구
  • 번역
    -
  • 메인주제어
    역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역사
  • 도서유형
    종이책, 반양장/소프트커버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40 * 200 mm, 184 Page

책소개

전통생활사총서

한국 전통시대의 다양한 역사적 현장과 인물 속에 숨어 있는 사례들을 하나하나 발굴하여 재구성해 소개한다. 당시 사람들의 일상 속을 세밀하게 파악하여 그간 덜 알려져 있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소재를 대중에게 흥미롭게 전달한다. 특히 중앙정부 중심의 자료가 아닌 민간에서 생산한 기록물을 통해 내용을 재현하는 만큼 각 지역의 살아 있는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기여한다. 매년 해당 분야 전문가를 집필자로 선정하고 지속적인 피드백을 통해 원고의 완성도를 높였다. 본 총서를 통해 생활사, 미시사, 신문화사의 붐이 다시 일어나길 기대한다.

 

현대인의 인식 속 조선 사회는 문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유약한 사회라는 편견이 있는 듯하다. 양반에 대한 이해 자체 또한 대체로 문인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문치주의란 사람들이 떠올리는 ‘문약(文弱)’과는 다르다. 즉, 문치주의란 제도와 법률에 따른 통치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로 말하자면 법치주의와 유사한 맥락을 보인다. 다만 법률과 제도의 구체적인 내용과 범위가 오늘날과 다를 뿐이다. 그럼에도 유독 조선의 사회가 유약한 사회라고 하는 인식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조선에서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문·무의 경중을 다루는 의식들이 다변화했으며 그 필요에 대한 인식도 다각화되었다. 때에 따라 ‘문’이 숭상되기도 했고 여러 전쟁을 거치며 무과시험을 무분별하게 치러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다변화를 겪었던 조선의 문과 무의 균형과 조선 사회에 대한 바른 인식을 재고한다. 조선의 양반은 ‘문’에 편중되어 있지 않고 ‘문’과 ‘무’가 병존하고 있다. 문무를 겸비한 조선의 양반에 대한 바른 이해를 도모한다.

목차

_차 례

 

책머리에 4

들어가는 말 10

 

1. 조선시대 문무 인식과 무과의 성립 13

조선 전기의 문무 인식 15

조선 후기 문무 이해와 문무일치론 21

조선 초 무과 창설과 시험 규정 27

『경국대전』의 무과 시행 절차 31

 

2. 교육기관을 통한 무관 만들기 37

조선 전기 훈련원과 무관 양성 39

조선 후기의 무학과 능마아청 44

 

3. 무과의 종류와 과목 53

무과의 종류 55

무과의 절차 70

무과와 각종 시취의 과목 73

 

4. 조선 무인의 무과 준비 85

16세기 후반 이순신 사례 87

18세기 후반 노상추 사례 92

 

나오는 말 169

주석 175

참고문헌 179

본문인용

위와 같이 정조는 기본적으로 문과 무를 동일하게 인식하였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용의 가치가 있는 무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조는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무예가 뛰어난 오늘날 평안도 지역인 서북(西北) 지역민들을 적극적으로 등용하고자 하였다.

_25쪽

 

임진왜란 직전인 1583년 함경도의 6진 지역을 공격한 여진족의 니탕개(泥湯介)의 난을 계기로 병조 판서 이이(李珥)는 필요한 무인을 확보하기 위해 무과의 선발 인원을 크게 확대하고 비정기 시험인 각종 별시(別試)의 시행 횟수도 늘리기 시작하였다. 무과 선발 인원을 크게 늘리고 각종 별시를 자주 시행하는 추세는 16세기 말 임진왜란 기간 및 17세기 초 광해군 대에도 대외적인 어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계속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 무과의 폐단으로 지적되는 이른바 만과(萬科)의 출현이 그것이다.

_44쪽

 

이순신 집안이 그의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주한 것도 그가 무관으로 전환하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이순신의 부친인 이정이 처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주한 것은 처가의 전장(田莊)이 있는 곳으로 당시 아산은 궁벽한 시골이어서 제대로 된 사족 사회가 형성되지 못한 곳으로 유교적 영향력이 타 지역에 비해 높지 않은 곳이었다. 대신 무예를 익히는 데에는 유리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_89쪽

 

일화는 유교의 기본적 예절인 혼정신성의 의미, 즉 밤에는 부모의 잠자리를 보아 드리고 이른 아침에는 부모의 밤새 안부를 묻는 것조차 모르는 무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무사 3인이 무과 회시의 강경에서 엉터리 답변을 늘어놓는 다음의 사례는 당시 무인의 학문적 수준의 일단을 보여 준다.

_124쪽

 

정약용의 무과 개선안은 기존의 무예 과목에 강서 과목을 대폭 추가한 것이었다. 강서 과목은 반드시 ‘무(武)’와 관련된 내용을 위주로 변형하여 시험하려 하였다. 이는 무과 응시자가 무예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을 검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술·전략을 충분히 이해하여 실제로 국방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조치였다. 그는 무과 응시자의 선정과 급제자의 선발및 관직 진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식년시’로 통합하였다. 관직의 수에 비례하여 급제자와 응시자의 수를 제한하여 유능한 지방 사족 내지 양인에게도 관직 진출과 고위 공직에 임용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 주려 하였다.

_167쪽

서평

※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 우리에게 ‘조선’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보통 양반이나 선비의 모습이다. 그러나 조선에는 양반과 선비뿐만 아니라 상인이나 농민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살았다. 그러니까 조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양반들의 삶뿐만 아니라, 상인과 농민들의 삶도 함께 바라봐야만 한다. 또 양반들의 삶 역시도, 중앙정치에서의 활동만으로는 충분히 이야기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실록이나, 『승정원일기』처럼 국가가 편찬한 관찬 기록에서는 이들의 일상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다행히도 개인의 일기나 서간집 등 다양한 사적 기록이 발굴됨에 따라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일기나 서간집을 남긴 사람들이 주로 식자층에 속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는 있지만, 그러한 식자층이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면서 주변의 이야기도 남겨 왔기에, 우리는 그동안 알기 어려웠던 주변의 삶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통생활사총서는 이처럼 조선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들을 따라서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몰랐던 조선 사람들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군사주의적 전통에 바탕을 두었던 일본이 군인 우위의 정치문화를 만들어 결국 동아시아 침략과 패망으로 귀결된 것과 달리 조선 후기 문무겸비 무인의 전통이 남아 있던 우리나라가 비록 잠시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지만 끝내 해방과 번영을 달성한 것은 단순히 특정 지도자나 계층, 외국 등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칼 찬 선비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문인의 존재와 함께 무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도 단순히 문인과 대립되는 존재 또는 상하, 선후 관계 등으로 이해하기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만 기본적으로 ‘문무겸비의 실천적 지성을 추구했던 지성인’의 또다른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어떤가 감히 제안해 본다.

저자소개

기획 : 한국국학진흥원(권진호, 김형수, 이남옥, 최은주, 나영훈, 조인희, 권지은)
한국국학진흥원은 ‘국학진흥을 통한 글로컬 시대의 인류문화 창달에 기여’라는 목표 아래 전통 기록유산을 중심으로 민간 소장 국학 자료의 체계적인 수집 보존과 연구 활용 사업을 펼치고 있는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전통시대 고문헌과 유교 책판 등의 기록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으며, 그런 기록유산들 속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한국적 스토리텔링 소재를 발굴하여 콘텐츠 제작 현장에 제공하는 일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사업을 통해 자라나는 미래 세대에 선현들의 지혜를 전승하고, 한문교육원과 유교문화박물관을 운영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급에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저자 : 노영구
국방대학교 전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조선후기의 병서와 전법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 논저로 『조선후기의 전술』(2016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연병지남: 북방의 기병을 막을 조선의 비책』, 『한국의 전쟁과 과학기술문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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