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제 낯설지 않은 것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너무 진부해졌다고 할까요?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것을 둘러싼 어떤 변수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중 하나는 '속도'입니다.
저는 사회과학자로서 언제나 이 속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회에서는 항상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전쟁, 자연재해, 산업·경제·인구·기술의 변화, 정치적 사건들, 이런 일들은 인류가 처음 사회를 구성했을 때부터 늘 있었던 일입니다. 사실 사회란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류가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회가 버티지 못하고 파괴될 때가 있습니다. 감당하지 못하는 '격변'의 시기가 도달했을 때입니다. _10~11쪽
늘 불쌍한 것은 국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이 시대에는 청년과 여성, 지방에 사는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더 어렵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청년들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극심한 경쟁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겪어 내는 중입니다. 그 경쟁에서 대부분은 불행해집니다. EBS의 한 프로그램에서 물었을 때, 경쟁에서 이긴 청년들조차 행복하지는 않다고 말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이 경쟁이 공정하지 않고 절대 공정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지 않습니다. 나는 지옥에 살지만 내 아이까지 지옥에 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_38~39쪽
그런데 바로 이 시점에 한국은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공동체를 지속시키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과연 인류 역사에 이런 나라가 있었을까요? 세계의 최빈국이자 약소국으로 분단과 전쟁까지 겪은 나라가, 실로 엄청난 속도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치·경제·문화를 성취한 다음, 바로 그 정점에 도달한 때에 소멸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만약 한국이 다음 한 세대 안에 인구 회복의 탄력성을 완전히 잃고 소멸해 버린다면 이는 단순히 한 나라의 소멸이 아니라 인류 문명사에서 볼 때도 참으로 기이한 일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인류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장과 소멸을 통해 '인간과 사회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_43쪽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보면 색깔이 좌우로 나뉩니다. 나라가 그렇게 양분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예산의 분배나 균형 발전의 측면에서, 특히 경제・의료・교육 등의 격차에서 보면 좌우가 아닙니다. 수도권과 지방으로 나뉩니다. 수도권 의원들은 예타를 통해 자기 지역구에 예산을 가져오고 또 합심해서 수도권에 전철망을 열심히 깔고 있습니다. 전철 지하화 이야기도 나옵니다. 호남과 영남의 광역 시・도에서는 버스가 없어지는 마당인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두 개의 나라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_105쪽
소멸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사회가 지속가능성이 없어지면 인구 구조의 변화에 따라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 버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처럼 소아과는 사라지고 노인 요양 병원 같은 고령자 의료 서비스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입니다. 지방 소멸이 가속화되면서 지방에서는 학교와 병원 같은 기본적인 삶의 인프라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고령자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여러 복지 제도도 탄력적으로 운용하거나 중단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령화와 더불어 OECD 최상위권인 노인 빈곤율이 더 증가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 빠르게 인구가 소멸되면 건강 보험과 국민 연금 같은, 미래 세대와의 장기적인 사회 계약을 통해 유지되던 많은 사회 제도와 재정 정책은 심각한 위기에 처할 것입니다. _135쪽
그래서 입법부를 선출하는 총선 시기에, 각 정당의 대표와 정책 책임자들은 선거의 핵심 의제와 주요 공약, 선거의 의미와 구도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고 이렇게 저렇게 투표해 달라고 해야 합니다. 또 유권자들은 그에 대해 욕을 하든 편을 들든 이런저런 품평하기에 바빠야 맞습니다. 가까운 사람들과 마주 앉아서 우리 지역에서는 누가 나온다더라, 저 당의 간판은 누구라더라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은 실로 정치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선거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최종적 목적과 더불어 그 이벤트를 통해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고 서로 토론하도록 하는 기능을 갖습니다. 전자만큼이나 후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22대 총선을 앞두고는 그런 정치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_139쪽
친소 관계가 아니라 정책에 대한 이견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경쟁입니다. 상대 정당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하나의 정당에서 하나의 목소리만 나올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특히 양당제가 고착화되고 있는 우리 정치에서는 다양성의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계파가 정치적 가치와 비전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그 과정에서 토론과 논쟁, 신념과 고락을 함께한다면 그런 계파는 우리 정치의 희망입니다. 가치가 다른 세력들 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고, 그러한 논쟁이 집단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정말로 바람직합니다. 그런 세력이라면 나중에 집권하더라도 계파주의에 너무 물들지 않도록 자기 경계를 할 수도 있고,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기득권을 포기할 수도 있을 겁니다. _163~164쪽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 참사, 잼버리 사태, 엑스포 유치 실패 등에서 보듯이 국가가 해야 할 기본적인 일들을 실패해도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단지 운이 없는 일이거나, 전 정부가 잘못 세팅해 놓은 일이거나, 공무원들이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생긴 문제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이 통치되었던 박근혜 시기와는 분명히 다른 형태의 국가 관리 방법입니다. 이것은 나름대로 철학을 갖춘 하나의 일관성 있는 국정 기조이자 통치 신념입니다. _193쪽
정치적으로 유능한 야당이라면 '날씨가 덥다고 대통령을 탓하면 되겠나?'는 소리가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이슈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기후 위기가 심한데도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하나의 정치적 쟁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정책적 사안을 정치적 레토릭으로 만들어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사실 정치인들이란 원래 그런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요?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공화정이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행위가 공적 이익에 부합하게 되는 체계'입니다. 폭염으로 사람이 죽어 가는 세상입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이라면 한편으로는 노동의 권리와 인권을, 다른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 대응을 말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요. _223쪽
'더 나은 나라, 더 좋은 사회'는 누가 대신 만들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 스스로 소멸하는 대한민국을 멈추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치 혐오로는 아무것도 이뤄 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정치가 만연해서가 아니라 정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정치가 없어서 문제입니다. 정치가 아니라 권력 투쟁에만 몰두하는 정치인과 정당들에게는 박수든 비난이든 보낼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 그 자체입니다.
극단적 권력 투쟁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경쟁・협력하는 정치, 포퓰리즘과 팬덤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 갈등을 드러내고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정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놓고 숙고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_236~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