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이영애의 동시에는 고즈넉하면서도 평화로운 시골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과 숱한 생명들의 삶이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아플 때도 잡채를 보면/약보다 잡채를 먼저 먹”(「잡채 할머니」)는 김양자 할머니, “삼 년 전/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진수 삼촌)고 밭에서만 사는 진수 삼촌, 몰래몰래 춤 연습을 하는 “사천 바닷가/구불구불한 소나무들”(「그대로 멈춰라」) 등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들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습기를 머금은 눈이
삼 일 동안 내렸다
설경을 찍으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나무들이 온몸으로
눈의 무게를 버티고 있었다
가지가 찢어지고 꺾이기도 했다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 「미안해」 전문
이 동시는 그와 같은 이영애 동시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삼 일 동안 눈이 내리자 설경을 찍으려고 나무에 다가갑니다. 하지만 힘겹게 “온몸으로/눈의 무게를 버티고” 있고, 더러는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가지가 찢어지고 꺾이기도” 한 나무를 보고는 결국 “사진을 한 장도 못 찍”고 맙니다. 이는 평소 시인이 사람이나 사물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엄마, 엄마도 더운밥 드세요
아니야 데우면 더운밥이야
외할머니도 찬밥을 드셨어
찬밥을 국에 말아 드셨어
나도 너처럼 외할머니한테
왜 찬밥 드시냐고 물었어
찬밥을 먹을 때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만나
찬밥은 가장 따뜻한 밥이야
엄마가 엄마를 생각하는
- 「찬밥」 전문
이번 동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작품입니다. 이 동시에 등장하는 엄마는 “엄마도 더운밥 드세요”라는 화자의 말에 괜찮다며 찬밥을 고집합니다. 왜냐하면 엄마에게 찬밥은 “엄마가 엄마를 생각하는”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연의 “찬밥은 가장 따뜻한 밥이야”는 역설적 표현으로, 자기보다 늘 자식을 먼저 생각하던 엄마의 사랑 즉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는 이영애 동시의 주된 정서 및 가치관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 시인의 말
한동안 숨바꼭질을 했다. 어디에 숨어 있을까 몹시 궁금한 날들이 많았다. 내가 는 시골 동네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숨어 있는 시 친구들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것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마을 길을 걸어가면 돌담 넘어 머리카락이 보였다. 가던 길 멈추어 서면 옷자락이 보이고 신발도 보였다. 허리 숙여 눈을 맞추면 꽃잎 속 목청까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다정다감한 친구로 다가왔다. 시가.
- 2024년 11월
대관령 산자락 보광리에서 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