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 만에 학교에 간 용용
여러분의 학교는 안녕하신가용?
학교는 어린이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어린이가 처음 만나는 공적 공간이자 학습 공간이고 생활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책을 읽고 셈을 배우며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선생님 같은 어른들과 상호 작용을 한다. 밥 먹고 운동하고 놀이를 할 뿐 아니라 시간을 엄수하고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등 어린이가 사회적 인간으로 거듭나는 곳도 학교다. 유년 시절의 많은 일들은 학교를 무대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학교에서 달콤하고 즐거운 추억만 남는 것은 아니다. 오래전 학교는 강압적 규율과 체벌, 비인간적 대상화가 난무하던 곳이었고, 많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남겼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써 왔고, 이제는 학교에 촌지를 받고 차별대우를 하는 선생님도, 시험을 좀 못 봤다고 매타작을 당하는 학생들도 없다. 그러면 모든 일이 다 잘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저학년동화 『용용의 학교 점령기』에서 주인공은 숲속 연못에서 오래오래 잠을 자다가 느닷없이 입학통지서를 받은 용이다. 이름하여 용용. 말끝마다 “~용”을 붙이는 용용은 나이는 많지만 동글동글 순진한 모습을 하고 있어 어린이처럼 보인다. 그리고 어린이답게 초등학교에 입학해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한 용용은 신이 나서 학교를 향해 우다다다 뛰어간다. 오늘은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까, 학교 가는 길에 많은 아이들이 가졌을 법한 기대로 잔뜩 부풀어서 말이다. 그런데 용용이 학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람은 호랑이처럼 무시무시하게 생긴 교장 선생님이다. ‘학교의 최고 책임자’답게 위엄이 있고 책임감이 투철한 교장 선생님은 규칙 엄수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린이들에게 이런저런 명령을 하는 데 열심이다. 저기로 가라, 발을 털어라, 조용히 걸어라, 콧김을 내뿜지 마라, 고운 말을 써라, 밀면 안 된다…… 아니, 무슨 규칙이 이렇게나 많아?
“교장 선생님은 잔소리쟁이세용?” “선생님이 지켜야 할 규칙은 없나용?” 용용의 순진한 질문 덕분에 교장 선생님과 학생들은 서로 동등하게 규칙을 정하기로 한다. 선생님도 학생과 똑같이 학교의 구성원이라면 규칙을 따라야 하는 게 공평할 테니까. 그래서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은 번갈아가며 규칙을 이야기하고 타당하면 받아들이기로 한다. 교장 선생님이 뛰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지 않습니다, 시간을 잘 지키세요, 하고 말하면 아이들은 차별하지 마세요, 말을 끝까지 들어 주세요, 반말로 얘기하지 마세요, 라고 각자 원하는 바를 이야기한다. 학교생활을 즐겁고 신나게,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규칙이라면 오케이! 교장 선생님이 열린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해 주면서 학생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고 공평하게 모두가 함께 지켜야 할 규칙이 새로 마련된다.
학교가 모두에게 행복한 곳이 될 때까지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나눠야 할 질문과 답변들
용용이 백년 만에 경험한 학교란 꽤나 수평적인 규율을 가진 곳이다. 더 이상 교사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통제하고 찍어누르지 않는 민주적인 학교. 그럼 모두가 행복한 학교가 되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이 협의하에 학내 규칙을 만드는 것이 절차의 문제라면 실제 생활은 좀 다를 수밖에 없다. 교실로 들어간 용용은 선생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함부로 폭력을 휘둘러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짝꿍을 만난다. 옛날 같으면 혼을 내고 매를 들어서라도 고쳐 주었을 텐데 선생님은 체벌을 하기는커녕 용용이 파바방 콧김을 쏘는 것도 막아선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르기 때문에 절대로 안 돼요.” 점심시간에는 다른 반 교실에서 날마다 학교에 찾아오는 엄마가 선생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장면도 목격한다.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별일 없다는 선생님의 말도 믿지 않는 엄마. 이 열혈 극성 엄마는 담임 선생님과 딸아이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다. 학생과 학부모가 더 이상 학교나 교사의 권위에 주눅 들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해서 모두가 행복해지지는 않는 것이다.
사실 『용용의 학교 점령기』는 작가가 2023년 서이초등학교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건에 마음아파하며 쓰게 된 동화이다. 학교 현장에서 통제되지 않는 학생들과 막무가내 민원들로 교사들이 자괴감과 무력함에 시달린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동화에는 “이래도 괜찮은가용?” 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체벌과 촌지, 엄격한 규율이 존재하던 옛날 학교로 돌아가는 게 답일 리 없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좀 더 진지하게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의인화된 용이 등장하는 저학년 동화에서 이렇게 무거운 의제를 정색하고 다루기는 어려운 일이다. 『용용의 학교 점령기』는 기본적으로 명랑하고 유쾌한 작품으로 용용의 엉뚱한 학교생활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선생님 말을 안 듣는 말썽쟁이 짝꿍도, 날마다 학교에 오는 걱정쟁이 엄마도 근본적으로는 선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말썽쟁이 짝꿍이 사실은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고, 딸을 사랑하는 엄마가 유난히 걱정이 많은 편이라면 그들에게도 문제를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용용이 묻고 답하기를 통해 그들이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점이다. 또 용용은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착한 용이라 “선생님은 제가 만난 선생님 중 가장 친절한 분이에용” 같은 말도 스스럼없이 전한다. 칭찬을 받은 선생님들이 뿌듯함을 느끼며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학교가 모두에게 편안한 공간일 수는 없을까? 행복한 소리로만 채워질 수는 없을까?”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작품이지만 『용용의 학교 점령기』는 용용의 캐릭터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귀여운 용용의 하루를 따라다니고 나면 아마도 노곤해서 얼른 잠자리에 들고 싶어질 것이다. 학교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낸 어린이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