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보다 커다란 달이 따뜻한 태양과 함께 빛나는 곳.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불어온 파도가 새하얗게 빛나며 선선하게 부서지고, 학 한 마리가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곳. 루나시움은 오늘따라 시끌벅적하다. 베브 시리아가 본 미래 때문이다. 그녀는 루나시움 서쪽을 따라 흐르는 세르나 강 동쪽의 생명의 대 지에 숨어 지내지만, 그녀가 본 미래는 이미 루나시움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부드럽게 하늘을 날던 열차가 벽돌색 미드타운 역사 위로 가볍게 내려앉으면,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루나시움 시민들이 타고 내린다. 루나시움 중앙에 자리한 미드타운 역은 조용한 속삭임으로 가득했다.
잠든 사라를 깨운 것은 누군가의 우는소리였다. 사라는 그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인간세계로 나가기 위해 옷장으로 향했다. 깨끗한 하얀 원피스로 갈아입은 사라는 아무도 없는 새벽의 길을 걸었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온몸에 진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가던 길목이다. 습관처럼 집으로 걸어가려던 사라는 멈칫했다.
“맞다, 나… 죽었지.”
맞춤형 선물을 만드는 공방이 있는 3층으로 향했다. 그녀의 시선은 식물 공방 앞에 멈춰 섰다. 공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사라는 탄성을 내질렀다. 공방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고, 책상 한쪽에는 투명한 유리 상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유리 상자 안에는 아침 하늘을 담은 하늘색 가루부터 조각구름이 많은 날 해가 저물 때 하늘을 물들이는 듯한 파스텔톤 연보라색 구슬까지 다양한 마법 재료가 종류별로 분류된 채 꽉 채워 담겨 있었다. 여러 신비로운 힘을 지닌 식물들의 씨앗과 묘목도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진정한 천국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저는…”
사라는 누군가를 사랑해본 적도, 사랑받아본 적도 없었다. 수십 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릴 존재가 있는 할아버지가 그저 부러웠다. 왜 나의 삶에는 행복이 머물다간 순간이 없었을까. 따스한 햇볕 한줄기 드는 법 없는 음지에서 아득바득 자라난 선인장 같은 삶이었다. 선물공장 직원들은 나의 삶에는 왜 한 번도 머문 적 없을까.
“할머니, 저도 언젠가는 선물공장의 고객이었을까요? 왜 제 인생에는 행복한 순간이 없었을까요?”
“…주문은 여러분들이 신성한 힘을 원하는 모습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 자세하게 상상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도구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집중해야 할 것은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 그리고 믿음입니다. 눈을 감고 여러분의 손끝에 신성한 힘을 모으세요. 이 손이 불길을 만들어 낼 것이라 진정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 모습이 가장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 순간, 외치는 겁니다. 플라레오! 이 연습을 충분히 한 뒤에는 주문을 외우지 않고서도 신성한 힘을 모아 불길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
“그럼, 그 사람을 만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봐.”
사라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사라가 상상하는 자신의 진짜 부모님의 모습을 그렸다. 어머니는 사라를 닮아 연한 갈색의 머릿결과 따뜻한 미소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는 인자한 표정으로 사라를 꼭 안아주고 있다. 그 속에서 사랑만 받은 사라는 햇살처럼 화사하게 미소 짓는다. 외로웠던 어린 시절 자주 하던 상상이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공상인 줄 알았던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
“문라이트 서바이벌이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꼭 문라이트 서바이벌을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사라 씨의 간절한 마음을 잘 간직하는 일이죠. 부모님의 말씀이 맞아요. 제가 오늘 여기서 당신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사라 씨의 간절한 마음이 미래를 움직였고, 그래서 제가 그 미래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간절한 마음만 있다면, 방법은 눈앞에 나타나기 마련이니까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베브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다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사라는 붉은 목걸이를 소중하게 주머니에 넣고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잃어버린 부모님의 한 조각을 찾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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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시움 암시장은 유니콘의 신성한 피, 용의 날개 등 아주 강력한 마법을 가진 물건을 파는 곳이다. 값이 매우 비싸 사람들은 유니콘과 용 사냥을 시작했고, 이를 막기 위하여 루나시움 본부에서는 이 물건들의 판매를 금지했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곳에는 눈먼 돈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있는 법. 그렇게 탄생한 곳이 암시장이다. 암시장은 데어 가문에게 매달 돈을 내는 대가로 데어 가문의 지역, 즉 용암이 솟구치는 땅 뒷골목에 자리를 잡았다. 이 지역은 악마들이 우글거려 굉장히 위험하기로 소문이 났다. 데어 가문만이 다룰 수 있는 어둠의 힘이 가득해 셰르핀 가주가 건드리지 못하는 구역이다.
때마침 이승에는 보름달이 밝게 솟아올랐다. 해가 질 무렵부터 애타게 하늘만 바라보던 다현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오늘 밤 동안은 사라를 만날 수 있겠지. 뮤니티로서의 능력이 되살아날 테니. 드디어 떠오른 보름달에 물고기가 빛나기 시작하자 다현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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