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두 번째 『비판서』인 『실천이성비판(Critique of Practical Reason)』에서 도덕적 자유에 대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도덕성은 행복이라든가 쾌락과 같은 동기로부터 철저하게 분리되어야만 한다. 도덕적 명법은 정언적(categorical)이다. 그것은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구속한다. 그러나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대상은 모두 우연적이다. 따라서 그중의 어느 것도 무조건적인 도덕적 의무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도덕적 명법은 단지 의지 그 자체 안에서만, 즉 우리의 본성인 이성적인 의지가 우리를 구속하는 것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_31쪽
헤겔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창조의 교리도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재해석하여 창조를 필연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가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세계는 〈정신〉이 존재할 수 있기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것은 〈정신〉이 세계를 정립한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이며, 과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우리는 아래에서 명확히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통 유신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은 세계를 창조할 필요를 느끼지 않으면서도 자유롭게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가 종교철학에 대한 강의록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가 없다면 신은 신이 아니다”(BRel, 148)라는 것이다.
_92쪽
역사 전개의 주요한 드라마는 헤겔의 정치철학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드라마이다. 그러한 문제는 자기 자신을 보편적 이성으로 인식하는 개인의 자유를 어떻게 회복된 인륜성과 화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그런데 역사의 거대한 드라마는 그리스 세계에 나타났던 인륜성의 완전한 통일의 붕괴, 즉 보편적인 의식을 갖는 개인의 탄생에 의해서 개시된다. 그 후 다음 수 세기에 걸쳐서 인륜성을 구체화하는 개인(그의 도야)과 제도들의 점진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결국 양자는 이성적 국가에서 서로 결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_209쪽
변혁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종적 존재’, 즉 자연적 모체 속에 자리 잡은 인간 사회이기 때문에, 서로 분열된 인간은 적합한 표현을 이룰 수 없다. 따라서 계급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표현물을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그 자체의 동력을 갖게 된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소외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소외는 그들이 소외된 세계를 부르주아적인 고전 경제학의 철의 법칙으로 받아들이는 소외된 의식에 의하여 뒷받침된다. 불행한 의식의 시기에서의 헤겔의 〈정신〉과 마찬가지로, 유적 인간은 자기 자신의 표현물에서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계급 분열이 궁극적으로 궁핍에 의해서 강제되는 것일 경우, 사람들이 일단 자연을 충분히 지배하게 되면 이러한 분열은 극복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구체화에서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는 유적 인간은, 독자적인 객체로 분리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속하는 완벽한 표현이 이루어지는 자유의 왕국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들은 서로 화해하게 될 것이다. 공산주의는 “인간의 자기 소외를 폐지하게 될 것이며, 인간을 통한 그리고 인간을 위한 인간 본성의 현실적 획득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인, 즉 참으로 인간적인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에로의 복귀이며, 이전의 발전 과정에서 형성되어 왔던 모든 부를 자기의 것으로 하는 완전하고 의식적인 복귀이다.
_286-287쪽
상황 속에 존재하는 주체성에 대한 이러한 추구가 철학적 형태를 취하는 한, 헤겔의 사상은 그것이 반드시 참조해야 할 것 중의 하나일 것이다. 비록 그의 존재론이 우리의 것은 아닐지라도 ―그것은 사실상 우리가 오늘날 이해하고 있는 문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겔의 저작들은 구체화된 주체성이란 이상을, 즉 생명의 흐름으로부터 나타나 사회적 존재의 여러 형태 속에서 표현을 발견하고 자신을 자연과 역사와의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사유와 자유라는 이상을 완성하려고 하는 가장 심원하고 원대한 기도 중의 하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유를 상황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려는 철학적 기도가 자유로운 행위를 본래적인 우리에 대한 응답 ― 또는 자연으로부터만 또는 자연을 넘어서 있는 신으로부터 유래하는(이 문제에 관한 논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소명에 대한 응답 ― 으로 보는 인간관을 획득하려는 시도라면, 그것은 헤겔의 결론은 뒤에 남겨 두면서 구체화된 〈정신〉에 대한 그의 집요하고도 투철한 반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_3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