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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

한국인에게 커피는 무엇인가


  • ISBN-13
    979-11-88949-69-4 (03910)
  • 출판사 / 임프린트
    틈새책방 / 틈새책방
  • 정가
    19,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1-30
  • 출간상태
    출간 예정
  • 저자
    진용선
  • 번역
    -
  • 메인주제어
    사회사, 문화사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사회사, 문화사 #커피 #한국커피문화사 #한국문화사 #한국사회사 #커피사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388 Page

책소개

·140년에 걸친 한국 커피 문화사

·구한말 망국의 상징이었던 커피는 어떻게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음료가 되었나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140년 동안 한국에 커피가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를 보여주는 커피 문화사다. 지은이 진용선은 등단 시인이자, 커피 아키비스트(archivist)다. 1980년대 문학만큼이나 커피에 빠져들어 커피를 연구하고 관련 자료를 모아 기록하기 시작한 그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커피 문화사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커피 인문학자가 됐다. 특히 인스턴트커피와 믹스커피에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저자는 한국이 커피의 나라가 된 이유를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따라 매력적인 이야기로 풀어낸다. 구한말 개화기부터 1980년대 이후까지 한국 커피사의 중요한 분기점을 6개의 챕터로 나눠 무엇 때문에 한국인들이 커피에 열광했는지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구한말은 최신 서양 문물이었던 커피가 소개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사료를 토대로 커피가 들어온 과정부터 커피 애호가로 유명했던 고종에 관한 이야기, 최초의 커피 전문점에 대한 연구를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와 함께 소개한다. 고종이 커피 애호가였기에 독살을 피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제 강점기는 망국 이후 하와이 등지의 커피 농장으로 떠난 사람들, 모던 보이와 모던 걸로 상징되는 상류층 그리고 문인들이라는 세 계층을 중심으로 커피가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나라를 빼앗긴 후 먹고살 길을 찾아 해외로 떠난 힘없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목을 축이기 위해 마시는 ‘쓴 물’이었지만, 모던 보이와 모던 걸에게는 유행의 최첨단에 서 있던 음료였다. 문인들에게 커피는 다방에 모여 문학과 시국을 논하는 매개체였다. 놀랍게도 당시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그때도 ‘아이스커피’를 즐겼다는 게 흥미롭다. ‘얼죽아’는 이미 100년 전부터 커피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은 커피 불모지였다. 전쟁통에도 커피를 찾는 이들이 많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쌀값보다 비싼 커피를 찾는 이들에게 날선 눈길이 떨어졌지만 커피 애호가들은 개의치 않았다. 불황과 전쟁을 거치는 동안 오갈 데 없는 사람들에게 커피는 ‘위로의 맛’이었다. 한편 당시 많은 사람들은 미군정기 때부터 깡통 시장을 통해 돌기 시작한 미군의 전투 식량 속에 들어 있던 인스턴트커피로 처음 커피를 접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셨던 커피는 어떤 이들에게는 ‘가난의 맛’이었다. 

 

1970년대부터 커피는 점차 일상에 파고들기 시작한다. 정부는 커피값을 통제하고 수입을 억제하려고 했지만, 시장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커피 규제를 포기하고 커피를 생산해서 공급하기로 결정한다. 그때 등장한 회사가 동서식품이다. 동서식품은 국내에서 제조한 인스턴트커피를 필두로 그 유명한 믹스 커피를 만들어 내놓는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믹스 커피는 다방에서 즐기던 커피를 집과 사무실에까지 끌어들였다. 전 국민이 커피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던 데에는 동서식품의 커피믹스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부터는 커피 전문점이 등장했고 스타벅스가 등장하면서 커피 산업이 발전했다. 스타벅스는 부동산의 가치를 올려줄 정도로 상징성을 가지게 됐다. 커피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강릉이 커피 도시가 된 것은 강릉이 가진 ‘스토리’와 커피의 경제성이 결합됐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커피를 즐기면서 한국은 커피의 나라가 됐다. 그 과정은 다사다난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성장한 우리 역사와 같다. 이토록 매력적인 커피, 한국인이 사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PART I. 신문물에서 망국의 상징으로

·커피,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망국의 상징, 고종의 커피

·고종이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셨다는 오해

·고종 황제 커피 독살 미스터리

·대불호텔 레스토랑, 조선 커피 1호점?

·대한제국의 운명과 함께한 손탁호텔의 커피

·코나 커피 농사에 뛰어든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

·부래상의 공짜 커피와 멕시코 애니깽의 ‘쓴 물’

 

PART II. 모던 보이, 모던 걸의 음료

·최승희와 조선호텔 커피숍 선룸의 스타 마케팅

·다방의 등장과 한국인 최초의 다방 ‘카카듀’

·다방 르네상스 시대

·카페인에 대한 궁금증과 인산 커피의 탄생

·문인들의 아지트가 된 이상의 ‘제비’ 다방

·‘얼죽아’의 시작, 모던 보이와 모던 걸

·카페인에 대한 궁금증과 인삼 커피의 탄생

 

PART III. ‘가난의 맛’에서 ‘위로의 맛’으로

·C-레이션 커피, 인스턴트커피 시대를 열다

·문인들의 출판 기념회가 열린 플라워다방

·전쟁 시기 각성제와 구충제로 각광받은 커피

·밀다원을 중심으로 한 피난 수도 부산의 다방

·‘커피병 환자’와 다방 홍수 시대의 커피값

·쌀값보다 비싸도 좋아


 

PART IV. 망국의 사치품에서 낭만의 상징으로

·커피 불허의 시대

·기억의 유물, 모닝커피와 도라지 위스키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다방 찬가가 되다

·음악 다방의 인기몰이와 대중문화 확산

 

PART V. 한국 근대화가 낳은 발명품

·동서식품이 주도한 한국의 커피 시장

·커피믹스의 탄생에는 ‘비빔밥 문화’가 있다

·커피 자판기의 등장과 다방의 위기

 

PART VI. 윤락의 도구에서 일상의 의식으로

·티켓 다방, 강원도 탄광촌에서도 성행

·난다랑,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시대를 열다

·스타벅스 돌풍과 ‘앵커 테넌트 효과’

·서울의 미래 유산이 된 학림다방

·강릉은 어떻게 커피 도시가 됐나

본문인용

커피에 대한 관심과 기록은 1884년 이후부터 서서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1885년 관료였던 윤치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서원으로 돌아왔다”라고 일기에 기록했다. 퍼시벌 로웰의 표현처럼, 도포 차림에 한 손은 뒷짐을 지고 조선의 최신 유행품인 커피를 마시는 조선 관리의 모습을 그려 볼 수 있는 내용이다.

_〈커피,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고종이 우리나라에서 일찍 커피를 즐긴 애호가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최초의 커피 애호가는 아니다. 고종이 마시는 커피는 ‘근대화를 향한 의지’가 아니라 정반대의 길에서 장구한 조선 왕조의 망국을 재촉한 상징처럼 다가온다.

_〈망국의 상징, 고종의 커피〉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조국을 떠난 한인들. 그 덕에 이들은 아주 일찍이 커피 농사를 지어 깨끗한 향미와 신맛, 부드러운 감칠맛이 특징인 고품질의 코나 커피를 생산했다. 이들은 때때로 하와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고국 생각에 잠겨 코나 커피를 음미하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렸을 것이다.

_〈코나 커피 농사에 뛰어든 하와이 한인 이민자들〉

 

조선호텔은 일제 강점기 모던 걸과 모던 보이가 드나드는 커피 명소가 됐다. 단발머리에 서구식 옷과 신발로 꾸미고 화장을 한 최승희의 모습을 보고 많은 남성과 여성들이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되어 낭만을 한껏 누렸다.

_〈최승희와 조선호텔 커피숍 선룸의 스타 마케팅〉

 

이상에게는 사업 자금도 충분했다. 몰락한 양반으로 이상을 입양해 엄격하게 교육한 큰아버지가 1932년 세상을 떠나면서 이상도 유산을 받은 것이다. 이 돈으로 1933년 7월 청진동에 연 다방이 바로 ‘제비’였다. 지금의 ‘그랑서울’ 빌딩이 들어선 곳이다.

_〈문인들의 아지트가 된 이상의 ‘제비’ 다방〉

 

소설가 박완서는 C-레이션에 들어 있는 인스턴트커피를 코코아 가루와 같은 것이려니 하고 먹었다가 “기절하게 쓴맛”을 경험했다. 미국의 풍요로움과 부강함을 보여 주는 C-레이션, 예의나 염치도 굶주림을 이겨낼 수 없던 시절 초콜릿을 달라고 손을 벌려 애걸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구호 물자로 허기를 면하며 가난하고 힘겹게 살아온 시절을 기억하는 그에게 커피는 ‘쓰고도 슬픈 맛’이었을 것이다.

_〈C-레이션 커피, 인스턴트커피 시대를 열다〉

 

커피가 생활 속에 널리 펴져 가기 시작하면서 커피에 대한 별별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커피가 회충약으로 그만이라는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커피가 인기를 끌었다. 검은 빛깔의 커피를 진하게 마시고 장이 자극을 받아 설사를 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뱃속에 기생충이 모두 죽어 생긴 효능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_〈전쟁 시기 각성제와 구충제로 각광받은 커피〉

 

쿠데타가 일어난 지 2주가 되던 1961년 5월 29일 서울 시내 다방은 일제히 커피를 팔지 않겠다는 광고를 걸었다…명목상은 시내 각 다방 스스로가 혁명 과업 수행에 발맞추어 커피 판매를 중단하고 생활의 검소화와 불필요한 외래품 배격에 앞장선다는 결정이라고 했다.

_〈커피 불허의 시대〉

 

오래전 조병화 시인은 부산의 녹원다방에서 처음 마담이 직접 가져다 준 모닝커피를 마신 적이 있다고 했다. 모닝커피는 피난지 부산에서 아침을 거른 사람들이 인근 다방에 모여 달걀노른자를 띄운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생겨난 독특한 커피라고 할 수 있다.

_〈오래된 기억의 유물, 모닝커피와 도라지 위스키〉

 

‘커피 한 잔’이 우리 가요사에 커다란 획을 그으면서 새로운 음악다방 문화가 형성됐다. 이전까지는 다방이 주로 문화 예술인들이나 ‘사장족’들이 문학을 이야기하거나 연락소 삼아 드나드는 살롱과 사무실과 같은 곳이었으나, 이때부터 어른들이 대화를 위해 드나들며 한복 입은 마담이 서빙하는 커피를 마시는 소위 ‘노털 다방’과, DJ가 신청곡을 받아서 팝송과 포크송을 틀어 주는 젊은이들의 다방이 분리됐다.

_〈펄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다방 찬가가 되다〉

 

커피믹스는 해방 이후 근대화를 목표로 한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하나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진 ‘빨리빨리’ 문화와 정보와 재료가 함께 버무려지는 통합과 융합 과정에서 생겨난 초유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_〈커피믹스의 탄생에는 ‘비빔밥 문화’가 있다〉

 

불혹의 나이를 넘어 커피를 좀 마셔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자판기에 대한 추억이 있다. 어쩌면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들에게 자판기는 고단한 시절을 함께한 추억으로만 남길 수 없는 유산이 됐다.

_〈커피 자판기의 등장과 다방의 위기〉

 

티켓 다방은 인구 밀집도에 비해 유흥 시설이 그다지 발달되지 않은 탄광촌에서 최고의 유흥 수단이었다. 탄광촌인 강원 태백, 정선 고한과 사북, 함백, 영월 등지에는 티켓 다방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을 거점으로 인근의 동이나 리 단위는 기본이고 시군 경계를 넘어선 곳까지 배달이 이뤄졌다.

_〈티켓 다방, 강원도 탄광촌에서도 성행〉

 

난다랑이 인기를 끌던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커피숍의 체인점 시대가 열린 배경에는 난다랑의 인기뿐만 아니라, 사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1987년부터 커피 수입 자율화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_〈난다랑,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시대를 열다〉

 

스타벅스의 국내 진출은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에서 크게 다룰 만큼 하나의 사건이었다. 일각에서는 봉지 형태의 싸고 달달한 ‘믹스 커피’와 간편하게 따 먹을 수 있는 ‘캔 커피’가 꽉 잡고 있을 무렵이라 생소한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값비싼 ‘테이크아웃 커피’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_〈스타벅스 돌풍과 ‘앵커 테넌트 효과’〉

 

학림다방은 1960년대 서울대 출신 문인들의 아지트였다. 천상병, 전혜린, 이덕희, 이청준, 김승옥, 김지하, 김광규, 박태순, 황석영, 황지우 등 한 시대를 이끌었던 젊은 문인들과 이인성, 김민기 등 음악·미술·연극 등 예술계 인사들이 드나들던 곳이다. 이곳에 낮에는 커피를 마시고, 밤에는 술잔을 기울이며 시국과 문학에 대해 토론을 이어갔다.

_〈서울의 미래 유산이 된 학림다방〉

 

커피 자판기의 찬란했던 과거를 대신하고 강릉이 커피 도시로 자리 잡았더라도 커피 자판기는 여전히 건재하다. 화려한 커피숍 아래 길가에서 고즈넉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 있는 커피 자판기 주변에는 여전히 포모 사피엔스가 서성인다.

_〈강릉은 어떻게 커피 도시가 됐나〉

서평

·한국인들에게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역사적 상징

·한국인들의 커피는 다양한 문화적 맥락이 조화롭게 섞인 또 하나의 K컬처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왜 한국인들이 커피를 즐기게 됐는지를 문화사적으로 톺아본다. 시장 조사 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커피 소비량은 405잔에 이른다. 전 세계 평균 152잔의 2.6배에 달하는 수치다. 세계적으로도 높은 소비량이고 아시아에서는 1위다. 무엇이 한국을 커피의 나라로 만들었을까? 한국인들이 특별히 커피맛을 좋아해서일까? 커피맛 때문이라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의 커피 산지보다 한국인들이 커피를 더 소비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문화적 맥락을 봐야 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커피는 개항과 함께 조선에 본격적으로 들어왔다. 고종을 비롯해 상류층과 외국인들이 최신 문물인 커피를 즐겼다. 당시 커피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일반인들이 일상적으로 접하기는 힘든 물품이었다. 그러나 발전된 서양 문물의 상징으로 눈도장을 받기에는 충분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은 커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기 시작한다. 서양 문물이 보급되고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커피는 가장 힙한 문화의 상징이 된다. 당시 조선호텔은 월드스타 최승희를 커피숍 모델로 썼다. 유행에 민감한 모던 보이와 모던 걸들은 커피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때도 커피를 쉽게 즐기기는 어려웠지만 얼리어뎁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스커피를 즐겨 마시며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외치는 한국인들의 선구자가 됐다. 찬물을 즐겨 마시는 문화가 외래 음료인 커피와 결합하여 벌써부터 한국식으로 커피를 즐기는 문화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상류층 외에도 커피를 일찍 접한 계층이 있었다. 하와이 커피 농장을 이민을 떠난 이들이다. 그들은 커피 농장에서 일하며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셔야 했다. 물갈이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커피를 끊여 먹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커피는 ‘쓴 물’이었다. 저자는 당시 커피를 서양 문물의 최신 유행으로 즐긴 이들과 이민자로서 ‘쓴 물’을 마셔야만 했던 이들을 언급하며 초창기 한국인들이 계층에 따라 커피를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대비한다.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역사적 질곡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커피는 점차 대중화된다.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것은 미군이었다. 군정 시기와 한국 전쟁 때 미군의 전 투식량 중에는 인스턴트커피가 들어 있었다. 이 커피가 대량으로 유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고 맛볼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다방이 증가했고, 도시를 배회하는 갈 곳 없는 이들이 다방으로 모여들었다. 커피를 파는 다방은 일종의 사랑방이 됐다. 서양의 카페처럼 공간과 시간을 파는 형태가 일반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서구의 카페와는 맥락이 달랐다. 지역 공동체의 주민들이 회합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여러 지역과 출신들이 섞인 일종의 대합실 같은 곳이 다방이었다. 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면서 뿌리를 잃은 사람들은 다방에서 모였고, 미래를 모색했다. 

 

1970년대부터 한국의 커피 산업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 주역은 동서식품이었다. 커피는 해방 이후부터 군사정권 시기까지 계속해서 정부가 가격을 관리하려는 품목이었다. 커피는 수입산이었고 외화가 유출되는 품목이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 정권은 커피 판매를 금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시장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결국 해법은 규제를 풀고 커피를 시장에 더 투명하게 공급하는 일이었다. 그 일을 맡은 회사가 동서식품이었다. 

 

동서식품의 인스턴트커피와 믹스 커피는 한국 사회를 바꾼 제품이 됐다.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를 집과 회사를 비롯한 일터에서도 마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믹스 커피와 종이컵, 뜨거운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커피를 즐길 수 있다. 진정한 커피 대중화는 동서식품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의 문턱을 낮추고 쉽고 저렴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면서 커피에 대한 벽이 사라진 것이다. 후일 한국이 커피의 나라가 된 데에는 동서식품으로 인한 커피의 대중화를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커피 자판기가 더해지면서 커피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즐길 수 있는 음료가 됐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커피 프랜차이즈가 생기고 스타벅스가 상륙하면서 한국은 명실공히 커피의 나라가 됐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에 첫 매장을 낸 스타벅스코리아는 이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매장을 가지고 있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판다는 개념으로 고객을 끌어모았고, 특색 있는 마케팅으로 스타벅스 사용자들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커피만이 아닌 커피 문화를 파는 업체가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스타벅스가 들어선 건물의 가치가 올라갈 정도다. 이제 커피 산업은 커피만을 파는 것이 아니라 커피 문화 그 자체를 파는 산업이 됐다. 커피 도시가 된 강릉도 마찬가지다. 화랑이 차를 마신 곳이라는 전설에서 시작해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자판기가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강릉은 커피 도시가 됐다. 이는 커피 산업이 문화와 결속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한국의 커피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콘텐츠다. 

 

《커피, 이토록 역사적인 음료》는 한국에서 커피가 한국인들에게 어떤 문화적 맥락으로 받아들여졌는지,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지만, 이는 곧 한국인 정체성과 그 문화를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커피가 들어온 지 140년 남짓한 역사 동안 한국인은 커피를 통해 세계를 보고, 위안을 얻기도 했으며, 선망의 대상에서 취향의 일부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만의 독특한 커피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커피는 커피가 처음 들어왔던 그 시절의 커피와는 다르다. 한국인이 즐기는 커피는 K컬처처럼 다양한 맥락이 복합적으로, 그러면서도 조화롭게 섞인 그 무엇인가다. 그렇기에 한국의 커피는 한국인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의식의 일부가 된 것이다.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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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진용선
커피 아키비스트(archivist)이자 아리랑 전문가다.
강원도 정선 출생으로 인하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비교언어학을 전공했다. 1985년 제1회 MBC 청소년문학상을 받았고, 그해 겨울 시 전문지 《심상》 신인상과 《시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유라시아, 미주와 중남미로 확산한 디아스포라 아리랑을 연구하여 《아리랑 로드》를 비롯한 60여 권에 이르는 아리랑 관련 인문서를 저술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수석 연구원, 아리랑박물관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아리랑 아카이브 대표,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리랑이 평생의 업이라면 커피는 그의 동반자다. 1986년 인천에서 로스터리 커피숍 'Warehouse' 운영을 시발점으로 커피 관련 일을 시작한 그는 방대한 인스턴트커피 자료를 수집하고 메타데이터를 분석해 아카이브를 구축하는 일에 매진하며, 강연과 전시 등으로 커피 콘텐츠를 확장하고 활용하는 활동을 해왔다. 2016년부터 한국여성수련원, 국립민속박물관, 이육사문학관, 인재개발원, 교육청 산하 학교 등에서 커피 인문학 강의를 이어 가고 있다. 2023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기록학 전공 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커피 자료의 아카이브 구축과 활용'을 주제로 기록학 영역에서 커피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2009년 기록 관리 유공 국민 포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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