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트먼은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인 초기 계약이론을 페미니스트의 시선에서 면밀하게 재해석한다. 사회계약론을 주창한 루소는 여성이 본성상 시민의 자질을 결여하고 있으며 정치 질서에 영구적이고 전복적인 위협이라고 보았다. 여성이 시민사회의 구성원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여성이 가정에 머물러 있을 것이라는 모순적 주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연과 사회의 긴장, 성적 삶과 정치적 삶의 관계는 민주주의 이론에서 공백으로 방치되었다.
_ “01 여자들의 무질서” 중에서
교과서적인 근대 민주주의 역사는 왕권을 옹호하던 가부장주의를 물리치고 계약론자들이 승리한 이야기다. 하지만 페이트먼은 프로이트의 부친 살해 신화를 이론적 지렛대로 삼아 시민사회의 탄생 이야기를 새롭게 읽어 낸다. 사회계약을 맺는다면 정확히 누가, 언제 계약에 참여하고 합의하는가? 시민사회가 만들어질 때 여성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원초적 아버지를 살해하고 자유를 얻은 형제들의 정치적 권리는 바로 여성에게 접근할 성적 권리였다.
_ “02 부친 살해와 정치적 자유” 중에서
결혼은 계약인가? 페이트먼은 결혼이 계약처럼 보이면서도 그 밖의 계약과 다른 점을 상세히 분석한다.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을 남편에게 종속시키는 결혼법의 개정을 요구했고, 그 결과 결혼은 계약의 형태에 더욱 가까워졌다. 하지만 페이트먼은 계약은 신분과 반대되는 것인 동시에 가부장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라고 지적한다. 계약과 개인이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적인 가부장적 권리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고용 계약과 결혼 계약은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계약이며, 서로 연결되어 공고화되는 관계에 있다. .
_ “05 결혼 계약” 중에서
동의는 자유주의 이론과 실천에서 핵심적 개념이다. 또한 일상적 삶에서, 특히 여성과 남성의 친밀한 관계에서 동의 여부는 많은 것을 결정해 준다. 동의 없는 강제 결혼은 무효이며, 동의 없는 성교는 강간 범죄가 된다. 하지만 여성들이 말하는 ‘아니오’는 강간 법정에서 증거가 되지 못한다. 페이트먼은 강요된 복종과 동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법적 불확실성과 법적 실패가 단지 강간 법정에 국한되지 않으며, 자유민주주의의 광범한 실패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_ “06 동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