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 저자는 오늘날 ‘재생산’이라는 사안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측면들을 인공자궁과 함께 들여다본다. 인큐베이터로 대표되는 신생아학과 발생학의 궤적, 우생학 그리고 그 흔적 및 악용 가능성, 지속되고 있는 건강 불평등, 돌봄 격차, 보건의료와 인권, 임신중지와 인공자궁 담론 등이 그에 해당한다.
- 먼저, 이 책은 신생아학과 발생학이 발달하면서 부분 인공자궁 기술이 현실화가 목전에 다가와 있다는 과학자들의 전망과 최근의 연구 결과 및 그 가능성을 살펴본다.
실험실에서 배아를 기르는 기술과 신생아실에서 아기 생명을 유지하는 기술이 발전하여 어느 날 중간에서 만나는 체외발생 전 과정이, 말하자면 체외임신이 완성될 가능성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으며, 불가능한 일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다가와 있는 일임에 분명하다는 것이다. 물론 임신의 시작과 끝을 다루는 기술이 진보했다고 체외발생 전 과정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상기시킨다.
- 임상시험을 거쳐 윤리적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여러 난관이 남아 있고, 임신의 시작을 다루는 배아 연구의 경우 더 복잡하다는 점도 이 기술의 구현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전망을 내놓는다.
즉, 연구 지침과 규제는 감정을 배제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이기에 인공자궁에 관련된 연구 방향도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다. 너무 빨리 태어나면서 장기의 미발달로 합병증의 위험이 큰 미숙아의 치료를 위한 부분 인공자궁 기술은 비교적 사회적 합의가 쉬운 반면, 체외임신의 시작 단계인 배아 연구는 아주 복잡한 이해관계와 상이한 다양한 시각 때문에 진전이 힘들다. 특히 종교계의 반발이 매우 거세다.
- 인공자궁 기술은 다른 기술이 그렇듯이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도 그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우생학적 사고에 힘입은 권력자들의 행위가 상당히 우려스러운 부분 중의 하나이다.
권력을 가진 자 또는 권위주의적 정부에 누군가의 재생산을 허용하거나 허용하지 않을 권한이 있을 때, 체외발생 기술은 우생학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건강을 위해 임신한 사람의 행동에 간섭하는 데서 나아가, 마약 복용이나 알코올 섭취처럼 태아의 건강에 해로운 행위를 하는 ‘부적합한’ 엄마의 자궁보다 인공자궁이 더 안전하고 아기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발상도 우생학의 한 사례라 할 수 있다.
- 인공자궁 기술이 구현된다 해도, 그 혜택은 제한적이고 오히려 인종 및 지역 간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이 기술이 도입된다 해도 대단히 고가의 기술이 될 가능성이 크며, 그에 맞는 의료자원과 시설이 뒷받침되어야만 필요한 사람에게 적용이 가능하다. 따라서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 기술이 도입된다면, 다른 기술이 그러했듯이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임신한 사람들과 아기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보다 재생산 관련 보건의료 서비스를 기본 인권으로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평등을 유발한 사회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기술적 해법보다 사회적 전략이 우선이라는 이야기이다.
- 인공자궁이 임신중지의 해법으로 언급되지만, 이런 사고 실험에는 여러 문제가 있다.
우선, 임신하는 사람이 있는 한, 임신을 종결하려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임신한 사람의 바람, 필요, 관심사에 따라 그 이유는 다양할 수 있고 정당한 이유도 따로 있지 않다. 그저 임신을 신체적으로 종료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둘째, 기술적으로 시대착오적이다. 이제는 알약 복용으로 임신중지가 가능해졌다. 인공자궁으로 태아를 이식하는 과정은 알약을 복용하는 일보다 훨씬 더 침습적이다. 셋째, 임신한 사람은 강요받지 않고 자신의 가치, 신념, 욕구에 따른 다양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임신중지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인공자궁을 지원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매년 엄청나게 많은 임신중지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인공자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임신과 출산, 아기 돌봄에 대한 막대한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 편향 때문이다.
- 체외발생 기술은 정말로 젠더화된 임신의 부담에서 해방시키는 도구가 될까?
저자는 이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 먼저 1970년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의 주장을 가져온다. 당시 파이어스톤은 과학 기술은 우주에 갈 정도로 발전했지만 유독 임신만이 여성이 감내해야 했으므로 ‘생식 생물학의 폭정’이 초래한 결과라고 말한다. 여성 피임약이 무리한 임상 연구와 상당한 부작용을 감수하면서 상용화되었지만, 남성 피임약 연구는 진전이 거의 없다. 나아가 임신과 출산, 육아는 여성의 사회활동을 제한한다. 육아 휴직은 충분치 않거나 여성에게만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일본처럼 남성 육아 휴직제도가 있어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흑인과 원주민 여성, 장애인, 저소득층 여성은 엄마 될 자격조차 제한받는다. 폭거는 생물학이 아니라 우리의 낡은 생각이다. 또 사회제도 및 관행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