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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널 미워해

『정년이』 원작자가 쓴 유난한 사랑의 목록


  • ISBN-13
    978-89-6090-902-1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마음산책 / 마음산책
  • 정가
    16,8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1-25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서이레
  • 번역
    -
  • 메인주제어
    에세이, 문학에세이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에세이, 문학에세이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90 mm, 248 Page

책소개

“서이레의 산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김화진 소설가 추천

 

『정년이』 원작자 서이레,

창작과 삶에 관해 털어놓는 첫 산문집

 

웹툰 『정년이』 첫 화가 공개되었을 때, 독자들은 단번에 범상치 않은 작품이 등장했음을 눈치챘다. 모두의 생각대로 여성들이 욕망하고 갈등하고 사랑하는 이야기는 ‘여성서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시작으로 2020년 웹툰 최초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2024년 부천만화대상 등을 수상하며 이 시대 가장 사랑받는 웹툰으로 자리매김했다. 나아가 2023년 국립창극단 창극으로 무대에 올랐고, 2024년에는 드라마화되면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까지 큰 인기를 얻기에 이르렀다.

『정년이』는 단순히 재미있는 콘텐츠를 넘어 우리 전통 문화예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끌어 올렸다는 점에서 더욱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 거대한 흐름의 시작에 작가 서이레가 있다. 2015년 두 여성의 창업 이야기를 그린 『보에』로 데뷔해, 『소녀행』 『라나』 『정년이』까지 네 편의 웹툰을 선보인 그는, 뚝심 있게 여자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을 써왔다.

 

『정년이』도 그 재미없는 이야기의 연장선이었다. 여자 나오고, 여자들이 나오고, 여자들이 많이 나와서 뭘 하고……. ‘또 나만 재밌는 얘기를 하겠군’ 생각했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작가로서 인기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세상에 인기작은 차고 넘친다. 나 하나쯤은 나만 좋은, 재미없는 얘기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쨌든 나는 재밌으니까!

_본문에서

 

『미안해 널 미워해』는 픽션 쓰기에 몰두하던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털어놓은 산문집이다. 유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자양분이 되어준 관심, 취향, 애호의 대상부터 작가가 되기 위해 겪은 우여곡절과 엄마와의 갈등, 부족한 자기 확신 등 “삶을 보고 만지고 문질러서” 써낸 애달프고도 웃긴 이야기들이 곡진하게 담겼다.

 

 

옆자리에 ‘정년이’가 앉아 있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의 지난한 여정

 

등장한 지 약 10여 년 만에 ‘서이레’는 여성들이 가장 믿고 보는 웹툰작가 이름 중 하나가 되었다. 글과 그림을 홀로 쓰고 그린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는 이 책에서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의 정체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초등학생 때부터 만화와 소설을 탐독하며 이미 글쓰기에 욕심내는 청소년으로 성장했으나, 그림에서만큼은 재능을 싹틔우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다만 그 덕에 만화 동아리에서의 앤솔러지 출품 등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협업’이라는 재미를 어려서부터 체득할 수 있었다고 덧붙인다.

또 저자는 인터넷소설 카페에 남이 쓴 글을 올렸다 혼쭐이 나기도 하고, 열심히 쓴 ‘해리 포터’ 팬픽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에 주눅 들기도 하고, 빼어난 이야기를 쓴 만화 동아리 후배에게 질투를 느끼기도 했던 지난 시절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자칫 부끄럽고 못난 구석으로 비출지라도 어려서부터 외길을 고집하며 글쓰기를 연마해온 일화들은 “없다기엔 아쉽고, 있다기엔 애매한” 재능을 지닌 뭇 범재들에게 깊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그뿐만 아니라 글쓰기로 먹고살겠다는 딸을 인정하지 않던 엄마와의 오랜 갈등, 대중적인 취향에 관한 고민, 여성국극 웹툰을 쓰기 위한 악착같은 자료 수집, 자연재해처럼 찾아온 우울증, 웹툰작가의 열악한 처우와 연재 환경까지 작가로서의 삶에 관해서도 꼼꼼하게 옮겨 적는다. 이를 통해 서이레라는 개인의 삶의 단면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웹툰작가를 둘러싼 현실 문제들도 두루 펼쳐 보인다.

 

훌륭한 작품을 보면 왜 그리 질투가 나는지! 하지만 뒤돌면 어느새 부족함도 질투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쓰고 싶은 욕망만 남는다. 천재를 미워할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에 글 써야지! 남 미워한다고 내 작품이 나아지진 않는다. 욕망을 갖게 했으면 재능도 줬어야 한다고? 나는 욕망만으로도 행복한…… 욕망의 노예다.

_본문에서

 

 

“내 애정은 유난한 면이 있었다”

온 마음을 쏟아온 살뜰한 사랑의 기록

 

저자의 내면을 채워온 ‘사랑의 목록’도 흥미롭다. 그가 좋아하는 대상은 얼핏 한정적이면서도 폭넓고, 대상을 향해 쏟아붓는 관심과 애정은 집요하고도 유난하다. 일찍이 “될성부른 오타쿠 어린이”로서 3D 인간들 대신 2D 인물들에 열광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연재 중 쌓아놓은 분량까지 깎아 먹으면서 게임에 몰두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부족한 자신을 견뎌주는 성격 나쁜 반려묘 덕만과의 첫 만남과 생활은 애틋하고, 약 7년간의 방영분을 두 달여 만에 섭렵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보내는 감사와 존경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음악”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중이병’을 심화시킨 제이팝부터 애니메이션과 영화 OST, 힙합, 클래식, 밴드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마음의 치유제이자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책의 제목이기도 한 〈미안해 널 미워해〉를 부른 자우림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자우림의 노래를 들으며 “처음 입는 교복, 낯선 학교와 날 선 아이들 그리고 덜 자란 마음을” 버틸 수 있었다는 대목은 뭉클함을 선사한다.

 

그 사람이 노래하자 세상은 분홍 구름이 피어오르는 환상 속 마법의 성이 됐다. 아니 진짜로. 진짜 그랬다. 그 어두컴컴하고 장작 냄새와 구운 달걀 냄새가 피어오르던 찜질방이 향긋한 꿈의 나라가 됐다. 목소리가 예뻤다. 반짝이는 유리구슬 같은 목소리였다. 유리구슬이 은쟁반 위를 도르륵 구르듯 노래했다. 세상에는 이런 아름다운 노래도 있구나. 나는 엉덩이에서 뿌리가 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영원히 그 반짝임 속에 살고 싶었다.

- 본문에서

 

서이레 작가는 산문 쓰기의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천연덕스러운 유머와 기개, 잘 벼린 문제의식과 자기반성은 읽는 이의 마음에 정확히 꽂혀 들어온다. 책을 읽은 독자들 또한 자신의 삶에서 사랑하는 것, 미워하는 것,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고 어루만지는 귀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_삶을 보고 만지고 문질러서

 

1 균열 내는 사람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지 못해도

데뷔작이라 짧게 하고 싶어요

윤정년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내게 강 같은 영감

여자에 살고 여자에 죽다

 

2 유난한 사랑

오타쿠 DNA 가설

야비한 나의 용사여

덕만

레스트 인 피스, 원피스

‘그알’을 응원하는 마음

플레이리스트와 함께 춤을

재미를 찾아서

 

3 살아내는 삶

없다기엔 아쉽고, 있다기엔 애매한

앞길이 막막해서 신점 보러 간 썰

이상적인 작업실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다

문제가 많은 몸인가요

성공한 작가?

미안해 널 미워해

본문인용

일상으로 돌아온다는 점이 이 비장함에 방점을 찍는다. 우주를 지킨 영웅이라도 우리 사이에 들어온다. 그도 우리 중 하나다. 그 말은 나도 그들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눈물 나게 감동적이지 않은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니. 폭식하듯 만화를 탐독하던 나는, 드디어 만화를 만들고 싶어졌다.

_20쪽, 「그림을 못 그리는 웹툰작가」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데뷔작을 연재하면서 어느 순간 글쓰기로 사랑받고 싶다는 달콤한 바람이 사라졌다. 그보다는 오기가 생겼다.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닮는다. 좋은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다채로운 사람을 그리게 된다. 그중에는 사회에서 숨기고 싶어 하는 부분도 있다. 레즈비언 중년 부부나 미등록이주노동자, 촉법소년 같은 ‘불온하고 자격 없는’ 존재들 말이다. 그래서 작가는 필연적으로 균열을 내는 사람이다. 자꾸만 ‘왜?’를 묻고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_45쪽, 「사랑받지 못해도」

 

어느 날, 작업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카페 옆자리에 윤정년이 앉아 있었다. 연구생 연습복을 입고 머리는 묶은 채였다. 윤정년은 테이블에 한쪽 뺨을 대고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오, 이제 된 것 같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_65쪽, 「윤정년이 나를 보고 웃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정년이』 줄거리는 과한 레즈비언 이야기를 안 하려고 애를 쓴 결과물이다. 과한 레즈비언 이야기를 안 하려고 노력한 결과물이 과한 레즈비언 이야기가 되다니. 대중과 나 사이에 흐르는 한강을 메워야…….

_81쪽, 「여자에 살고 여자에 죽다」

 

잠깐, 도망가지 마시라! 여기까지 설명하면 다들 뒷걸음질 친다. 나도 그랬다. 하다 하다 말을 미소녀 모에화하다니. 세상이 이렇게 타락해도 되는 걸까? 그런데 이 미소녀들, 우마무스메는 달리기에 말 그대로 미쳐 있다. 경기, 특히 유명하고 명예로운 경기에 나가 우승하고 싶어 한다. 이기기 위해, 가장 빠르게 달리기 위해, 소녀들은 훈련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성장한다.

_109~110쪽, 「야비한 나의 용사여」

 

코타와 지내면서 제일 많이 한 말은 ‘행복하냐’는 질문이었다. 내 인생은 코타 덕분에 내가 상상할 수 없던 방향으로 풍요로워졌다. 코타는 어떻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었을까. 고양이는 사랑스럽고 때로 경이롭다. 그래서 대답을 듣지도 못할 질문을 계속했다. 행복하니 고양아. 행복하면 좋겠다. 난 이렇게 행복한데 이런 행복을 주는 네가 불행하다면 세상은 영원히 공평해질 수 없게 계산된 것이 분명할 거야.

_116쪽, 「덕만」

 

버스 안에서 글자를 읽으면 무조건 멀미를 하는데도 나는 기를 쓰고 만화책을 읽었다. 집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이지만, 재림한 예수님과 만화책을 든 내가 서 있으면 나를 쫓아와 만화책을 빼앗을 사람이었다.

_131쪽, 「레스트 인 피스, 원피스」

 

새 학기를 맞은 여고에서 반장을 뽑는다. 절차에 의거, 민주적인 방식으로 선출된 반장이 축하 박수를 받은 뒤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반 친구들 이름 외우기? 청소 당번 정하기? 그것도 아니면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교복이라는 죄수복을 입고 공부라는 벌을 받는’ 나의 동지들을 위해 학벌주의와 청소년 인권침해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궐기대회 개최하기? 다 너무 좋지만 내가 다닌 여고에서는 ‘체육대회 준비’였다.

_219쪽, 「문제가 많은 몸인가요」

서평

서이레의 산문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다. 이유가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있는 이상한 눈물. 그와 나는 같은 대학, 같은 과를 나왔다. 각자 쓴 글에 대해 마주 앉아 오래 이야기한 적도 있다. 서이레는 내가 호쾌함,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얼굴이다. 그러나 그는 자주 외롭고 종종 우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 사실을『미안해 널 미워해』를 통해 너무 늦게 안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 운다.

『정년이』보다 서이레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이 산문집이 가닿길 바란다. 서이레가 자신이 만든 이름과 삶을 언제나 터질 듯 좋아하길 바란다. 나에게 너무 늦은 이 만남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서이레와의 너무 늦지도 이르지도 않은 알맞은 만남이길 바라며 작은 진심을 보낸다. 늦어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김화진 소설가

저자소개

저자 : 서이레
웹툰 스토리·대본 작가. 2015년 『보에』(그림 서기진) 스토리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소녀행』(그림 라미아) 『라나』(그림 SangFeel) 『정년이』(그림 나몬)까지 총 네 편의 장편 웹툰을 선보였다.
『정년이』로 2019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2020년 양성평등문화콘텐츠상, 2024년 부천만화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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