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훈련은 제대로 하고 있어?”
“물론이지. 그러는 너는?”
건우가 가슴을 쑥 내밀며 뻐기듯 대답했다.
“나 이제는 쉬지 않고 120미터를 달릴 수 있어. 예전보다 20미터나 늘었다는 뜻이지.”
나도 턱을 좀 더 내밀며 잘난 체하듯 말했다.
“나는 이제 동물들과 하루에 네 번이나 대화할 수 있어. 좀 더 훈련하면 다섯 번도 가능할 거야.” _14쪽
“컹컹!”
뭉치가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순 없었지만 아마 “잘 다녀와!”라는 뜻일 거다. 내 하찮은 초능력은 조금씩 진화하고 있었다.
“이러다 정말로 세계를 구하는 영웅이 되는 거 아냐?” _18~19쪽
한참 동안 고민하던 내가 이윽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용의자를 찾자!”
“용의자?”
“옆 반 아이 중에서도 소민이의 필통을 특히 부러워하거나 탐낸 아이가 있을 거야. 그게 누군지 알아보자는 거지.” _34쪽
“야, 오채아!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방금 학교 안에서 진돗개를 봤는데.”
“거짓말하지 마!”
나는 숨을 헐떡이며 속도를 높였다. 손을 쭉 뻗자, 건우가 잡힐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조금만 더!
“진짠데. 에이, 모르겠다.”
그 순간, 주위를 둘러보던 건우가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더니 초능력을 사용했다.
“달려라, 번개!” _46쪽
“셋 중 누가 필통을 훔쳐 갔는지 알아내야지.”
“어떻게? 걔들한테 물어볼 수도 없잖아. 자기가 훔쳤어도 이제 와서 절대 자백하지 않을걸?”
날카로운 질문이다. 나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다. 리더는 함부로 놀라선 안 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어깨를 쫙 폈다.
“세 명을 미행해 보자.”
“미행?”
이번에는 도윤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중에서 누가 가장 의심스러운지 직접 확인해 보는 거야.” _55쪽
그때 경비 할아버지가 마법사들이 탈 것 같은 기다란 빗자루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얼른 집에 안 가고, 뭣 허냐?”
“이제 가려고요.”
“그래, 조심해서 들어가라. 방금 학교 안에 개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고 해서 찾으러 가는 길이다.”
“개요?”
경비 할아버지가 빗자루에 몸을 기댔다. 빗자루가 끼익끼익 비명을 질렀다.
“유기견 한 마리가 학교로 잘못 들어왔나 보더라고. 쯧쯧. 키우던 개를 버리다니, 사람이 할 짓은 아니지.” _59쪽
나와 건우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요란한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부르릉.
나는 반쯤 입을 벌린 채 뒤돌아보았다. 오토바이 한 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다. 그 앞쪽으로 스마트폰을 하느라 땅만 보며 가고 있는 하린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때였다.
“달려라, 번개!”
“잠깐만!” _97쪽
나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뭉치와 똑같은 눈동자를 보자, 어쩐지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집이 어디야?”
내 말에 까만 눈동자가 조금 더 커졌다. 사람과 대화가 통하는 게 놀라운 모양이었다. 유기견이 덤불 뒤에 몸을 숨긴 채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인님이 나만 두고 이사 갔어.”
내가 건우와 도윤에게 유기견의 말을 통역해 주자, 건우가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이사 간다고 키우던 개를 버리다니! 그런 사람은 동물을 키우지 못하게 해야 해!”
“맞아. 책임감 없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키워선 안 돼.” _114~115쪽
“초!”
“능!”
도윤이 건우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우리를 힐끗거리며 지나갔다. 부끄러웠다.
“오채아, 빨리.”
건우의 성화에 하는 수 없이 나도 손을 내밀었다.
“력.”
“어벤저스!” _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