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죽은 나무 한 그루에 어쩌면 이렇게 많은 생물이 있고, 과학이 있고, 사연이 있을까? 저자는 죽은 나무 한 그루가 다양한 생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래서 지구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자신의 경험과 함께 재미있게 이야기해준다.
바쁜 일상에 지쳐 앞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그루의 나무가 죽어서까지 얼마나 좋은 일을 하는지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책이다.” - 홍승범(농업미생물은행)
말라 죽은 나무 고목의 화려한 두 번째 삶
《고목 원더랜드》에서 소개하는 고목(枯木)은 말라 죽은 나무를 가리킨다. 죽어서 썩은 것처럼 보이는 고목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버섯이라고 부르는 곰팡이인 목재부후균이 나무를 분해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생물이 찾아온다. 나무에 자란 곰팡이를 먹기 위해 곤충들이 오고, 다람쥐와 뱀도 온다. 동물뿐 아니라 많은 식물이 곰팡이와 특별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특히 난초는 뿌리에 사는 균근곰팡이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어렵다. 한 그루의 고목에 이처럼 많은 생물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간다. 분해가 진행되면서 나무 위에 다음 대를 이을 나무가 자란다. 고목은 생태계의 순환을 보여주는 축소판이자 다양한 생물이 생존을 다투는 각축장이다.
저자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말라 죽은 졸참나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목에서 재미있는 현상들이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던 저자는 고목을 그대로 둔다. 나무가 죽은 해 가을, 졸참나무에서 야광 독버섯인 화경솔밭버섯이라 자란 데 이어 참부채버섯, 팽나무버섯이 자랐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다람쥐가 버섯을 먹는 광경까지 보게 된다.
《고목 원더랜드》는 저자의 체험과 연구 과정에서 생긴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썼기에, 학술적인 내용임에도 재미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각 장 뒤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동식물 스케치와 함께 ‘현장 관찰 기록’이 실려 있다. 자신이 연구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연구자로서의 성실함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본문의 사진들은 글만 읽어서는 떠올리기 어려운 균류와 곰팡이, 곤충들을 보여준다. 덕분에 고목에 관한 연구와 실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균류와 곰팡이, 이끼부터 곤충과 다람쥐까지
고목 호텔에 머무르는 손님들
고목은 천천히 분해되는 동안 다양한 숲속 생물의 보금자리가 된다. 저자는 이 모습을 수많은 객실을 갖춘 호텔에 비유한다.
《고목 원더랜드》 1부에서는 저자가 고목 호텔에서 만난 생물들을 소개한다. 1장에서는 초등학교 때 자유 연구 숙제를 하면서 시작된 이끼와의 인연에 관해, 2장에서는 박물관 여름방학 강좌 때 경험한 점균(변형균)과의 충격적인 만남에 관해, 3장에서는 대학 시절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버섯과의 운명적인 만남에 관해, 4장에서는 공동연구자와 함께 갔던 부생란 연구 여행에 관해, 5장에서는 집 마당에 놓아둔 통나무를 찾아온 곤충과 동물에 관해 소개한다.
고목에는 눈에 보이는 생물만 사는 것이 아니다. 6장에서는 맨눈으로 볼 수 없는 세균과 바이러스의 이야기도 정리했다. 눈에 보이는 생물이라도 영양분을 교환하는 과정 등을 직접 관찰하기는 어렵다. 이 책에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여주기 위해 생태학에서 사용하는 환경 DNA 분석이나 안정동위원소 분석 등에 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한다. 첨단 분석법이 보여주는, 고목을 둘러싼 생태계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고 체계적이다.
고목이 세상을 구한다!
- 기후위기와 탄소저류, 탄소중립
고목은 수많은 자연현상과 연결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구 환경이 변화하면서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탄소저류(貯留)다. 고목은 그 무게의 절반가량이 탄소로 이루어져 있어 분해되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지만, 모두 분해되어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것은 아니다. 분해되기 어려운 일부 성분은 남아서 토양유기물로 탄소저류에 기여한다. 탄소저류는 기후위기를 막고, 탄소중립에 큰 보탬이 될 중요한 기능이다.
《고목 원더랜드》 2부에서는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고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정리했다. 7장에서는 균류가 고목을 어떻게 분해하는지를 소개하고, 8장에서는 전 세계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수목의 대규모 고사와 그로 인해 엄청나게 발생한 고목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9장에서는 숲에서 고목이 사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10장에서는 인간은 고목에게서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11장에서는 도목갱신 현상을 소개한다. 도목갱신이란 나무가 죽어 쓰러지면 그 위에 새로운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다음 세대의 수목으로 성장해가는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고목이 사라지면 생태계도 인간도 위협받는다
- 고목을 대하는 슬기로운 태도
고목이 사라지면 고목에 사는 생물의 다양성도 잃어버린다. 음식과 물, 기온 조절, 휴양과 교육, 관광 같은 문화 등 생태계로부터 제공받는 혜택을 생태계 서비스라고 한다. 생물다양성을 잃으면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마저 잃어버릴 것이다. 그중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다. 고목에만 서식하는 어떤 균류가 암이나 감염증의 특효약이 될지 모른다.
탄소저류는 무엇보다 중요한 고목의 생태계 서비스이다. 현재 삼림에는 861기가톤의 탄소가 비축되어 있다고 추산한다. 그중 고목은 73기가톤으로 전체 산림의 약 8퍼센트를 차지한다. 산림 전체 탄소량의 8퍼센트밖에 안 되니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방대한 토양 속 탄소도 원래는 고목이나 낙엽이었다. 분해가 진행된 고목은 분해 속도 자체가 매우 느리므로 고농도 탄소를 오랫동안 저장해준다.
최근 목질 바이오매스 이용이 탄소중립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간단히 말해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겠다는 대책이다. 말이 ‘탄소중립 대책’이지, 단지 화석연료를 바이오매스로 바꾸어 태우는 행위에 불과하다. 태울 목질 바이오매스도 삼림에 축적된 탄소다. 탄소를 대기로 방출할 것이 아니라 보존하는 것이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이러한 내용을 함께 논의하지 않고, 목질 바이오매스 이용만 부르짖는다면 오히려 삼림에서 방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늘릴 것이다.
《고목 원더랜드》의 저자는 숲속 고목은 가능한 그대로 두고 자연스럽게 분해되게 하자고 주장한다. 재생가능에너지로서의 목질 바이오매스를 새 기술을 동원해 이용하면서, 생물다양성과 탄소저류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거목이나 고목은 보전해야 한다고 말이다. 고목의 보존과 이용에 관해 정책 결정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도 균형 잡힌 인식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다. 그에 따라 생태계나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관한 답도 가까운 미래에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