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짧아. 너무 짧아, 안녕과 안녕 사이가….”
최초의 꽃과 최후의 공룡이 조우한 쥐라기,
찰나와도 같은 3000만 년 동안의 로맨스
중생대 백악기 말에는 ‘5차 대멸종’이라 불리는,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하지만 최후의 공룡인 디노의 모델이 된 바로사우루스는 그보다 더 전에, 쥐라기 시대부터 이미 천천히 멸종하고 있었다. 반면 자신을 ‘최초의 꽃’이라고 소개하는 플로라는 공룡시대에 나타나 백악기에 들어서면서 다양한 종으로 번성한 속씨식물이다. 천천히 운명을 달리해가는 디노와는 반대로 플로라는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갔던 것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운명을 가진 두 종이 스쳐 지나갔던 쥐라기 말을 배경으로, 그들에게는 찰나와도 같았던 3000만 년 동안의 로맨스를 그렸다.
디노에게 플로라는 자신을 공룡이라고 소개했는데도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유일한 이였고,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플로라에게 디노는 인사를 선뜻 받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였다. 두 인물은 서로에게 유일무이한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은, 변화하는 환경은 디노와 플로라가 오랫동안 서로만을 바라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공룡의 시대는 저물어갔고, 플로라는 유시류 즉 날개가 있는 곤충류인 버기를 받아들임으로써 새로운 생을 살아가야 했다. 마음은 서로에게 있지만 본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의 변화와 종족의 운명으로 인해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는 두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변화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두 인물의 서사에 깊은 여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바로사우루스인 디노, 속씨식물 플로라, 유시류 버기,
그리고 포유류인 모로의 1억 3000만 년 전의 생존기
디노와 플로라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각자의 삶에, 주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디노는 종족의 마지막 후예였고, 플로라는 종족의 시작을 알리는 속씨식물이었다. 디노는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플로라는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디노는 플로라가 디노를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저 담담히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플로라를 원망할 수도, 자신의 처지를 비난할 수도 없었다. 모로에게 얄팍한 기회주의자라고 정의되는 버기는 스스로를 ‘영리한 사업가’라 칭한다. 플로라와 자신이 서로 가진 것을 나누면 각자가 원하는 사업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그 때문에 디노와 플로라가 맺어질 수 없는 현실이 더욱 부각되지만 버기가 나쁜 인물인 것은 아니다. 곤충류인 버기 또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여 대자연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선택을 한 것뿐이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모로는 공룡시대에는 그리 주목받는 종이 아니었다. 하지만 중생대 백악기 말, ‘5차 대멸종’ 속에서 살아남으로써 진화에 속도가 붙었고, 아주 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구의 주인공이 되었다. 디노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플로라처럼 수많은 동족을 만들 수도 없고 버기처럼 날지도 못하지만 오래도록 살아남아 1억 3000천 번이나 봄을 맞이하며 플로라가 피고 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이 함께 있었던 쥐라기 시대는 생존과 멸종이 몇 번이나 거듭된, 결코 로맨틱하다고 표현할 수 없는 시기였다. 그러나 디노, 플로라, 버기, 모로는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내었고 각자의 방법으로 사라지거나 생존하기를 택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은 가늠할 수조차 없을 만큼 오랜 시간 전, 지구상에 존재했던 종들의 생을 가만히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서는 제8회 경기 히든작가 선정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