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적 해석학을 필자는 10년 전의 대작 『감정과 공감의 해석학(1-2)』에서 본격적으로 시도한 바 있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저작에서 전개된 공감적 해석학은 몇 가지 이론적・논술적・현실적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 책 『공감적 해석학과 공감장의 이론』은 이 문제점들을 해소하고 공감장 이론을 증보한 새로운 책이다.
10년 전의 공감적 해석학이 안고 있었던 첫 번째 문제점은 ‘이론적’ 결함인데, 그것은 부속이론으로서 공감장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개하지 않아서 공감적 해석학과 공감장 이론 간의 필수적 연관관계에 대한 논의를 결여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공감적 해석학이 외적 ‘준거’로서의 공감장과 연결되지 못함으로써 공감적 해석학과 공감해석학적 인간과학(인문・사회과학)의 이론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으로 완결되지 못했다. 두 번째 문제점은 ‘논술적’ 문제인데, 많은 유사이론들을 논파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다 보니 전체적 논의가 너무나 복잡다단해서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점이었다. 세 번째 문제점은 논의가 상당히 산만하고 두서가 없는 것으로 느껴져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네 번째 문제점은 공감적 해석학에 대한 논의를 불가피하게 제2권의 맨 뒤에 위치시킴으로써 대작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감적 해석학 자체를 충분히 부각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지막 문제점은 공감적 해석학의 독서와 확산을 가로막은 ‘현실적’ 문제점인데, 두 권의 두꺼운 서책이 너무 비싸서 일반인이 입수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 책은 감정이론과 기타 해석학이론에 대한 긴 논의들을 잘라내고 하버마스와 가다머의 ‘언어적 해석학’ 비판을 단독 장절章節로 개작하고 공감해석학적 논의와 관련된 부분들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공감적 해석학’ 논의를 간명하게 만들었다. 이 덕택에 분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은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의 ‘문화산업론’과 하버마스의 ‘지성적’ 공론장 이론을 비판하고, 청년 마르크스의 ‘정감적 언어’ 개념과 ‘공감적 언론’ 테제를 찾아내 되살림으로써 18-19세기 신문 중심의 문자언어 공론장도 ‘지성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감적’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공감적 공론장 개념에 의거해서 라디오・영화・텔레비전의 음성언어적・감성적 공론장을 지성이 말살된 메마른 공론장이 아니라 정감적으로 풍요로운 ‘공감적 공론장’으로 재해석했다.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일으키고 있는 공론장의 새로운 구조변동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소셜 미디어가 주도하는 이 공감적 공론장을 ‘쌍방향의 공감적 공론장’으로 규명했다. 이런 전제 위에서 이 책은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공론장의 구조변동’을 다시 이론화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18-19세기의 고전적 공론장이 라디오・영화・텔레비전 시대에 일직선적으로 타락하여 여론과 문화의 장場에서 지성과 사유를 추방해버렸다는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비관주의적・부정일변도적 문화산업론을 비판적으로 해체했다. 또한 18세기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년 동안 공론장을 부정일변도로 비판하다가 입장을 바꿔 20세기 공론장을 양가치적인 것으로 규정했으나 21세기 소셜 미디어로 형성되는 새로운 공론장을 다시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하버마스의 공론장변동도 비판하고 대안이론을 구축했다.
하버마스는 처음에 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의 문화산업 테제를 받아들여 공개포럼・살롱・신문・잡지 중심의 ‘지성적’ 공론장이 일직선적으로 타락하여 사유와 지성을 정지시키고 ‘해방군’에서 ‘사기꾼’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었다. 그러나 그는 1980년대에 이 일면적 비판을 ‘해방군’이자 ‘사기꾼’이라는 양가치성 테제로 수정했다. 하지만 그는 소셜 미디어로 인해 공론장이 새로운 구조변동을 겪자 다시 부정일변도의 비판적 우려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 책은 하버마스의 이 오락가락하는 공론장의 구조변동론을 비판하고 18-19세기 ‘지성적 공론장’ → 20세기 라디오・영화・텔레비전이 주도한 ‘일방향의 공감적 공론장’ → 소셜 미디어가 주도하는 ‘쌍방향의 공감적 공론장’의 3단계 변동론으로 재정리했다.
그리고 이 공론장 논의를 통해 얻어진 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공감장과 관련된 필자의 그간 여기저기 흩어진 논의들을 모으고 개발・확장하여 ‘민심’으로서의 ‘공감장’을 이론화하고 공감적 해석학의 외적 ‘준거 틀’로 자리매김함으로써 공감적 해석학의 이론구성을 최종 완성했다. 공감적 해석학을 공감장에 맞춰 조정하는 것은 공감적 해석학과 공감해석학적 인간과학이 ‘정상과학(normal science)’으로 올라서서 통용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공감적 해석학과 인간과학이 말 많은 ‘공론장’과 변화무쌍한 일시적 ‘여론’에 영합한다면 ‘곡학아세’일 것이지만, 대를 이어 도도히 흐르며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변하는 말없는 ‘공감장’으로서의 민심에 조응하는 것은 ‘과학의 정상화正常化(normalization of science)’이기 때문이다. “세상사람들의 의미를 힘써 탐구하는(務民之義)” 공감적 해석학’과 공감해석학적 인간과학이 세상사람들의 공감장 또는 민심과 괴리된다면 그것은 ‘정상과학’이 아닐 것이다. 일찍이 공자가 “도道는 세상사람과 멀지 않은 것이니 사람이 도道를 하면서 세상사람을 멀리하면 도라 할 수 없다(子曰 道不遠人 人之爲道而遠人 不可以爲道)”고 천명한 데 잇대서 “공감에 충실한 것(忠恕)”을 “도와 거리가 멀지 않은 것(違道不遠)”으로 규정했다. 이 ‘충서忠恕로서의 도’, 즉 공감적 해석학도 바로 세상사람들이 말과 행동의 거울로 삼는 공감장을 마찬가지로 이론구성의 거울로 삼아 마지막으로 이론의 전체적 프레임워크를 비춰보고 다듬음으로써 완성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쪼록 이 학술서가 배움과 학문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필독서가 되기를 기원할 뿐이다.
끝으로 이 책을 만드는 데 애써주신 한국문화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