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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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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죽던 날


  • ISBN-13
    979-11-6909-309-5 (0582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식회사 글항아리 / 주식회사 글항아리
  • 정가
    15,4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10-25
  • 출간상태
    출간 예정
  • 저자
    옌롄커
  • 번역
    김태성
  • 메인주제어
    소설: 일반 및 문학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옌롄커 #장편소설 #일식 #소설: 일반 및 문학
  • 도서유형
    전자책, EPUB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책소개

악몽에 사로잡힌 마을의 하룻밤 이야기 

신화의 거대함과 속도감, 놀라운 은유……

밤과 죽음, 꿈과 현실 사이를 우아하고 뛰어난 실험정신으로 가로지르다

 

★홍루몽상 수상 

★『뉴욕타임스 북리뷰』 편집자 선정 도서

★『퍼블리셔스위클리』 올해 최고의 도서

 

 

어둡고 불길한 밤, 하루 동안 벌어지는 꿈같은 이야기 

 

이 책은 하룻밤 동안 한 마을이 악몽에 사로잡히는 이야기다. 건조하고 무더운 6월 6일 오후 5시에 시작되어 검은 밤을 통과한 뒤 해 뜰 시각인 이튿날 아침 6시에 끝난다.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듯 그다음 날 해는 제시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시간대별로 권과 절이 촘촘히 나뉘다가 마지막 9, 10, 11권에 이르러서는 시곗바늘이 계속 06:00에 멈춰 있는 이유다. 

세계적 거장인 옌롄커는 종종 작품에서 꿈을 활용해왔지만, 마을 사람들이 집단 몽유에 빠지는 『해가 죽던 날』은 그 기법에 있어 가장 독특한 실험정신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홍루몽상을 받으며 “마술적 리얼리즘의 색채가 강하다”는 심사평을 받은 것이나, 서구권 평론가들이 제임스 조이스나 후안 룰포의 작품에 견주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차례는 1권에서 11권으로 구성되며, 각 권의 제목은 ‘들새들이 사람의 뇌 속으로 들어간’ 데서 시작해 뇌 안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부화시키고, 어지럽게 날다가 뇌 속에서 죽거나 마침내 비상하는 것으로 끝난다. 작가는 몽유를 ‘들새가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가 어지럽히며, 꿈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거나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화자는 열네 살 소년 녠녠으로, 약간 모자라다. 녠녠이 푸녠산맥 꼭대기에 올라가 온갖 신과 정령께 무릎 꿇고 비는 내용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특이하게도 옌롄커는 소설에서 작중인물로 자신을 등장시키는데, 소년은 이웃에 사는 작가인 옌롄커의 글재주가 다했으니 문학적 영감이 “한 차례 또 한 차례 비처럼 그의 몸 위에 뿌려지기를” 간청한다. 또한 하늘의 먹과 하늘의 종이를 내려주어 그가 『사람의 밤』이란 소설을 써내게 도와달라고 기도한다.

이야기의 서막을 열고 종막을 닫는 주인공은 녠녠의 아버지 리톈바오다. 6월 6일 저녁, 마을 주민이 하나둘 꿈속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이내 전염병처럼 번져 대규모 몽유가 벌어진다. 꿈속에 머무는 사람들은 본능과 욕망을 좇아 현실에서 도둑질과 강간을 일삼기 시작한다. 유일하게 깨어 있는 사람은 녠녠과 그의 아버지뿐이다. 이 두 사람만이 마을을 구할 가능성이 있다. 여기서 잠깐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보자. 현재 쉰 살인 리톈바오는 스물두 살 때 마을의 무덤들이 파헤쳐져 시신을 화장시키고 유골을 잿가루로 만드는 데 첩자 노릇을 한 적이 있다. 오늘 밤의 악몽은 28년 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리톈바오와 함께 모든 상황을 목격할 뿐 아니라 작중 내레이터가 되는 녠녠은 어린아이인 까닭에 피곤함이 없고, 따라서 몽유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 밤 욕망의 세계에서 옌롄커가 어린애를 목격자로 내세운 것은 이야기를 훨씬 더 설득력 있게 만든다. 소년은 어수룩하고 순진해 세상을 투명하게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녠녠은 키가 150센티미터도 안 되는 아버지의 한 많은 삶, 필력이 다해 작품 집필을 못 하는 옌롄커의 초조함, 절뚝발이 엄마의 애환을 함께하며, 그들을 돕다가 마침내 신들에게도 매달리고 호소한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은유와 상징 

독특한 부조리를 펼치는 소름 끼치는 작품 

 

이 소설은 중국어로 쓰인 문학작품에 수여하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홍루몽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인 쭝링은 “상징적 의미가 매우 깊”고, “시간 처리 방식에서 창의성을 보인다”고 평했다. 옌롄커의 작품들이 언제나 그렇듯 『해가 죽던 날』 역시 국가권력이 손을 뻗어 숨통을 조여올 것을 감수하고 쓴 글임을 알 수 있다. 옌롄커는 산문집 『침묵과 한숨』에서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둠을 느낄 수 있는 사람으로 지명됐다”고 말했는데, 이 장편에서 화자 또한 해가 죽어 밤이 지배할 때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과 그 역사를 목격하는 사람으로 지목된다.

녠녠의 집은 푸뉴산맥의 가오톈촌에 있다. 그의 부모는 마을에서 ‘신세계’ 장례용품점을 운영한다. 어느 저녁 녠녠은 이상한 현상을 보게 된다. 잠잘 시간이 다 됐는데 마을 사람들이 여전히 탈곡장에서 밀을 털거나 가게 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알고 보니 이들은 모두 몽유 상태에서 낮의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었고, 그런 면에서 꿈속에 기거하는 것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수가 늘어나 수백 명의 주민이 몽유 상태에 들어가자 이웃 샤씨의 아버지는 도랑에 빠져 익사하고, 팔십 먹은 후씨 노인은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다른 한편 젊은이나 중년들은 낮 동안 억눌러두었던 욕망을 행동으로 옮겨, 밝은 대낮의 노동과 근면성은 암흑 세상이 되자 도덕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서로를 죽이는 살육이 일어나자 리톈바오의 장례용품점은 호황을 맞는다. 사람들이 화환, 수의, 부장품, 지찰을 사러 가게를 들락거리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리톈바오의 가족은 갑자기 자신들이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세계의 중심에 놓였음을 깨닫는다. 

옌롄커는 오직 한 가지 사건을 중심 소재로 삼아 커다란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그것은 바로 어느 날 정부가 더 이상 매장을 허용하지 않고 시신을 모조리 화장해야 한다는 법률을 만든 것이다. 개혁을 위해 정부는 몰래 매장하는 집안을 밀고하는 자에게 포상금을 내리기로 했다. 당시 여자 키에도 못 미치는 데다 여드름 자국투성이인 리톈바오는 볼품없는 외모뿐 아니라 집안도 가난해 결혼을 못하고 있었다. 탈출구는 바로 밀고였다. 그는 집 지을 벽돌과 기와 살 돈을 벌고자 매장하는 이웃을 하나둘 고발하고 그 돈으로 마침내 집을 지어 아내를 얻는다. 곧 녠녠이 태어나지만 그는 자기 때문에 무너진 이웃들의 삶을 계속 지켜보면서 속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즉 이웃들이 몽유에 빠지자 리톈바오는 성인 같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웃들의 얼굴을 씻어 잠을 깨우고 커피와 각성 차를 끓여 먹인다. 하천으로 뛰어드는 노인을 건져내고 길에 버려진 시신을 업고 마을로 돌아온다. 

옌롄커의 소설은 늘 현실의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목소리를 담고 있다. 이 작품 역시 초현실과 풍자를 넘나들며 현실을 조명한다. 특히 서구권 일각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는 일을 다룬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나란히 할 만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했다. 하루 동안의 시간을 분절해 흘러가는 이야기의 속도감, 한 동네 안에서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주인공들……. 

몽유로 인해 죽은 사람이 “병충해로 떨어진 낙과만큼이나 많아”질 때까지 마을의 폭력성은 증가한다. 주인공 리톈바오는 시간이 흐를수록 졸리고, 잠들까봐 무섭다. 하지만 꿈속에 빠지는 것이 꼭 나쁜 일일까? 꿈은 대낮의 ‘이성’이 지배하는 정신을 느슨하게 해 사람들이 솔직해지고 자기 과오를 뉘우치는 효과도 보이지만, 더 큰 흐름은 욕망의 거침없는 분출로 나타난다. 그런 이유에서 이 소설에서도 꿈은 점점 악몽으로 변해가며, 녠녠은 이를 정확히 꿰뚫어본다. “사람들은 꿈을 믿으면서 현실은 믿지 않았습니다.” 꿈에 빠지는 사람들에게는 현재가 없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 역시 과거가 끊임없이 괴롭히는 현재에 시달리며, 현재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꿈속으로 빠져든다. 

 

***

 

대체로 이 소설에 대하여 사람들은 “현대 중국을 어둠에 가려진 세계로 은유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옌롄커는 이전의 산문집에서도 “사람들이 행복감에 젖어 춤추고 노래할 때, 나는 누군가 그들 발밑에서 오라에 묶이고, 걸려서 넘어지고, 구속되는 모습을 본다. 인간의 영혼 속에 감춰져 있는 불가사의한 추악함을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작품 역시 인간의 꿈에 깔린 어둠을 밝히고자 하며 역사의 악몽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쓰였을 것이다. 소설의 결말은 그런 면에서 장엄하고도 낙관적인 면이 있다. 세 살 때부터 부모를 쫓아 화장장을 들락거리고 다섯 살 이후부터는 아버지를 도와 시신 기름을 옮겼던 녠녠은 해를 집어삼키는 마을에 서광이 비치게 하고자 자신의 두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며 산 정상으로 기름통을 실어 나른다. 그리고 그 기름에 불이 붙어 해가 떠오르기를, 일출이 만들어지기를 기다린다. 

 

 

 

추천사

상징적 의미가 매우 깊다. 인성을 탐색하는 동시에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구조가 완벽하고 엄정하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시간 처리 방식의 정교함과 창의성이다. 인성에 대한 깊이 있는 묘사와 심리의 심층 처리, 선과 악의 대치에서 혼을 빼놓는 놀라운 기술을 보이고 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색채 또한 강하다._쭝링鐘玲 홍루몽상 심사위원장

 

후안 룰포의 『페드로 파라모』와 함께 거론되거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쌍벽을 이루는 작품으로 평가된다._『커커스리뷰』

 

구조와 이미지 면에서 시적 정취로 가득하다. 대단히 용감하고 정교한 소설이다. 이 작품에는 비극의 평형과 정치적 공명이 가득하다. 서로 다른 유파와 서사 방식 사이를 교묘하게 오가면서 역사와 기억의 복잡한 방식을 탐색하고 있다._션 휴잇, 『아이리시타임스』

 

그에게서 은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온다._판자양, 『뉴요커』

 

옌롄커는 자기 문화의 독특한 부조리에서 모든 문화를 감염시키는 부조리를 발견하는 보기 드문 천재 중 한 명이다. 이 소설은 내가 몇 년 동안 읽은 책 중 가장 소름 끼치는 작품이었다. 그의 절제된 재치가 낙엽 사이로 뱀이 지나가듯 페이지들을 가로지른다._론 찰스, 『워싱턴포스트』

 

옌롄커의 우화는 독자가 ‘너무 부조리하고 너무 잔인하고 너무 불쾌한’ 세상의 이면을 성찰하게 한다._줄리언 게워츠, 『뉴욕타임스』

 

무섭고, 폭력적이고, 풍자적이며, 어둡게 재밌다. 강력하고 매혹적인 예술작품._『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옌롄커는 독자의 상상력에 씨앗을 뿌리고, 그의 기이한 판타지는 다양한 해석의 싹을 틔운다._『이코노미스트』

 

이 소설에서 꿈은 현재가 여전히 악몽에 시달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놀랍다._『스코츠먼』

 

강력하고 신랄하고 불안하다._『메일 온 선데이』

 

옌롄커는 어둡고도 불길한 이 작품에서 거침없는 풍자, 놀랍도록 유머러스하며 기발한 언어를 보여준다._『북리스트』

 

인간 조건의 소용돌이치는 부조리함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시선._『인디펜던트』

목차

앞: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제1권 일경: 들새들이 사람의 뇌 속으로 날아들었다

1. 17:00~18:00 | 2. 18:00~18:30 | 3. 18:31~19:30

 

제2권 이경·상: 새들이 그곳을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1. 21:00~21:20 | 2. 21:20~21:40 | 3. 21:40~21:50

 

제3권 이경·하: 새들이 그곳에 둥지를 틀었다

1. 21:50~22:00 | 2. 22:01~22:22

 

제4권 삼경: 새들이 그곳에 알을 낳았다

1. 23:00~23:41 | 2. 23:42~24:00 | 3. 24:01~24:15

 

제5권 사경·상: 새들이 그곳에서 알을 품었다

1. 24:50~01:10 | 2. 01:10~01:20 | 3. 01:21~01:50

 

제6권 사경·하: 둥지 가득 새들이 부화했다

1. 01:50~02:20 | 2. 02:22~02:35 | 3. 02:35~03:00

 

제7권 오경·상: 큰 새와 작은 새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다

1. 03:01~03:10 | 2. 03:11~03:31 | 3. 03:32~04:05

 

제8권 오경·하: 산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었다

1. 04:06~04:26 | 2. 04:30~04:50 | 3. 04:51~05:10 | 4. 05:10~05:15

 

제9권 경후: 새들은 밤의 뇌 속에서 죽었다

1. 05:10~05:30 | 2. 05:30~05:50 | 3. 05:50~06:00

 

제10권 무경: 아직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

1. 06:00~06:00 | 2. 06:00~06:00 | 3. 06:00~06:00

 

제11권 상승: 마지막 한 마리 큰 새가 날아가버렸다

1. 06:00~06:00 | 2. 06:00~06:00 | 3. 06:00~06:00 | 4. 06:00~06:00

 

뒤: 또 무슨 말을 할까요

 

옮긴이의 말

본문인용

그는 또 일생에 걸친 자신의 글쓰기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 마을과 그 땅이 세상의 중심임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습니다. 안 쓴 지 여러 해가 됐습니다. 글재주가 다했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글쓰기 때문에 이 세상이 싫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_14쪽

 

이것이 바로 몽유겠지요. 알고 보니 몽유는 들새가 사람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들새가 사람의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이었습니다. 꿈속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뭐든 다 할 수 있거든요.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할 수 있었습니다._43쪽

 

엄마 얼굴의 표정은 낡은 성벽의 벽돌 같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짝 마른 더러운 수건 같았지요. 오래된 신문지 같았습니다. 엄마는 누구도 쳐다보지 않고 혼잣말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_55쪽

 

지금 자기 눈앞에서 똑똑 떨어져 흐르고 있는 것이 바로 자기 어머니이자 내 할머니의 기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아버지는 갑자기 배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고 싶었습니다. 차가운 뱀 몇 마리가 땅바닥에서 발과 다리를 타고 아버지 몸 위로 기어올라 찰싹 붙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쥐가 아버지의 앞가슴과 등을 뚫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살기 위해 굴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는 뱀이 재빨리 아버지 머릿속으로 기어들어갔습니다. 머릿속에서 머물고 쉬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지요._104쪽

 

사람 기름이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얘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것을 얘기하다보면 제 몸의 살이 자꾸 움직여 아픕니다. 마음이 몹시 긴장되고 초조해집니다. 손가락이 문 틈새에 끼인 것 같습니다. (…) 그것이 사람 기름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면 얼음의 차가운 냄새는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얼음의 차가운 냄새는 대부분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_132쪽

 

열네 살이라는 나이는 죽음의 문에 자라는 한 그루 나무 같았습니다. 저는 문 앞에 비를 맞고 바람을 막으면서 서 있었지요. 혼자서 대규모 몽유의 어두운 밤에 시신 기름 한 통을 소각로에서 수레에 실어 산길을 걸었습니다._134쪽

 

옌씨네는 이미 돈이 많은 집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이 그보다 돈이 훨씬 더 많았지요. 그가 책을 쓰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그 책 속에서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 집의 장사는 사람들이 죽어 다른 세상에서 살게 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길은 다르지만 이르는 곳은 같았습니다._171~172쪽

 

잠을 자면서 꿈을 꾸느라 헝클어진 머리칼은 호미로 정돈하지 않은 풀 같았습니다. 표정은 오래된 책과 신문지가 젖은 천이나 붉은 천으로 변한 것 같았지요. 몸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나무 같았습니다._186쪽

 

너무 놀란 저는 그들 가족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오톈진 사람이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고 어지러웠습니다. 겨울철 벌거숭이가 된 산비탈 같았습니다. 옌롄커의 소설에 나오는 연고자가 없는 무덤이 마구 널려 있는 공동묘지 같았지요._205쪽

 

“저는 아무것도 써내지 못할 것 같아요.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 같단 말이에요.”

우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귀신이 들렸거나 정신병에 걸린 것 같았습니다.

“글을 써내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게 낫지요. 글을 쓰지 못할 바에는 죽는 게 낫다고요.”

엉엉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엉엉 울면서 어머니 앞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의 손가락 틈새로 눈물이 새어나왔습니다. 대지의 틈새에서 샘물이 솟아나오는 것 같았지요._283쪽

 

그 역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황망히 이리저리 뭔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종이와 펜과 자기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손발이 다른 세상에서 온 다른 사람처럼 빨리 움직였습니다. 얼굴에는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표정과 사정이 새겨져 있었지요. 안색이 읽어도 이해할 사람이 하나도 없는 책으로 갑자기 변했습니다._285~286쪽

 

“녀석이 글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리거나 죽는다고 하니 그냥 쓰게 해주자고요. 쓰다가 죽어도 살아 있는 걸로 느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옌 아저씨 어머니의 얼굴에 눈물방울이 걸려 있었습니다. 메마른 황무지에 비가 내린 것 같았습니다.

“저 사람이 이미 저런 상태가 됐으니 저런 상태로 있게 해줍시다. 살아 있어도 죽은 것 같게 해주자고요. 죽어야 산 것 같을 테니까요.”_296~297쪽

 

알고 보니 몽유도 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계신 신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저도 갑자기 몽유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처럼 몽유하면서 자신이 몽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는 다른 세상에서 이 세상의 일들을 보는 것과 같았으니까요._301쪽

 

우리 외삼촌은 한 마리 돼지였습니다. 제 외삼촌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외삼촌은 한 마리 개였습니다. 제 외삼촌이기도 했습니다._330쪽

 

다밍, 빨리 와. 빨리 와서 우리 외삼촌 집을 털란 말이야. 달리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소리의 두 발이 제 목구멍 안에서 몸부림치면서 뱀처럼 밖으로 나오려고 꿈틀거렸습니다. 하늘은 파란색과 회색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세상은 온통 꿈이었습니다. 천하가 꿈처럼 독약에 젖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길가의 탑송 나무들이 제 등 뒤로 쓰러져갔습니다. 제 두 발이 탑송들을 넘어뜨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_348쪽

 

이날, 새벽 6시에는 붉은빛이 어김없이 찾아오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동쪽 산의 어둠은 심연의 거대한 골짜기 같았습니다. 어두운 낮의 검은색은 어제의 어두운 밤이 넘친 것이었습니다. (…) 애당초 내일의 낮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과거의 어젯밤은 애초부터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밤이라는 시간의 구간이 영원히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실타래 같았습니다._394~395쪽

 

길을 따라 동쪽으로, 길가와 담장 밑을 따라 진 밖을 향해 뛰었습니다.

몽유의 내부를 향해 뛰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몽유 외부의 깨어 있는 방향을 향해 뛰어가는 것 같았습니다._443쪽

 

죽어가는 사람이 피를 흘리며 내는 울음소리와 신음을 듣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모두 하얀 얼굴이었습니다. 얼굴이 모두 신세계 장례용품점의 하얀 종이꽃 같았지요. 졸린 눈을 부릅뜰수록 얼굴에 불안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얼굴에 땀도 보였습니다. 꿈꾸는 얼굴의 꿈꾸는 눈에 두려움도 보였습니다._469쪽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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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번역 : 김태성
옮긴이 │ 김태성金泰成
한국외국어대학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타이완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학 연구 공동체인 한성문화연구소漢聲文化硏究所를 운영하면서 중국 문학 및 인문 저작 번역과 문학 교류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의 문화 번역 관련 사이트인 CCTSS 고문, 『인민문학』 한국어판 총감 등의 직책을 맡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고전의 배후』 『방관시대의 사람들』 『마르케스의 서재에서』 『번화』 『가장 짧은 낮』 『귀신들의 땅』 등 140여 권의 중국 저작물을 우리말로 옮겼다. 2016년 중국 신문광전총국에서 수여하는 ‘중화도서특수공헌상’을 수상했다.
저자 : 옌롄커
지은이 │ 옌롄커閻連科
중국 허난성에서 태어났고, 허난대학 정치교육과를 거쳐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를 졸업했다. 1978년부터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해 제1, 2회 루쉰문학상과 제3회 라오서문학상, 프란츠카프카문학상, 홍루몽상 최고상,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비롯한 20여 개의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문단의 지지와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성취한 ‘가장 폭발력 있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에서는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미국과 영국,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세계 20여 개국에 번역 출간되었다.
옌롄커는 자신의 고향 땅에 대한 기억으로 소설을 써냈는데, 『일광유년』 『물처럼 단단하게』 『딩씨 마을의 꿈』 『풍아송』 『사서』 『작렬지』 등이 모두 대지에 대한 비판과 배반이었다. 『물처럼 단단하게』는 ‘혁명’과 ‘성적인 주제’ 면에서 모두 금기를 범한 책으로 간주돼 쟁론을 비껴가지 못했고 『레닌의 키스』를 발표함으로써 작가는 군복을 벗어야 했다. 군인의 신분을 벗어나면서 옌롄커는 해방을 느끼며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썼는데, 또다시 중국에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며 비판과 금지 대상이 되었다. 중국 현실 세계에 대한 도피와 풍자를 담은 『사서』와 『작렬지』 역시 금서가 되었다.
옌롄커 자신은 『딩씨 마을의 꿈』이 “인성의 따뜻한 온정으로 가득한 정신의 여행”이었다고 하며, “쓰는 과정에서 최대한도로 스스로 현실과 역사에 대해 너그럽고 포용하는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책 역시 금서 목록에 올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작가는 자기검열을 수없이 해 스스로를 “인격적 결함과 연약성의 실천 도감”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옌롄커는 자신이 “어둠을 가장 잘 느끼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산문집 『침묵과 한숨』에 그가 목격한 중국 현실과 문학의 어둠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 썼다. 불안, 두려움, 초조함이 평생 그의 뒤를 따라다녔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봤고, 이를 작품으로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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