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떨어졌고
낯선 땅으로 보내졌다
이 책은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첫 번째 목소리다
‘없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입증하다
이 책에는 마흔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 목숨, 한 생애가 손바닥만 한 지면에 담겼다. 세상에 태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친부모에게, 가족에게, 국가와 사회에게 없는 사람이 된 이들은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며 살아야 했다. 이 책의 제목이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인 이유다.
다행인 것은 이들 해외 입양인이 자기 서사를 엮어낼 만큼의 세월을 통과해왔다는 사실이다(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만 제외하고.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뿌리, 정체성, 땅에 발 딛고 있다는 감각이 이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뿌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이들이 한국 땅을 찾는 이유다. 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정보는 거의 없고 여태 간직해온 환상만이 산산이 부서진다. 당신의 친어머니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해외로 입양시킨 게 아니며, 당신은 고아도 아니고 납치되거나 거래된 상품이었을지 모른다는 팩트를 접하면서 이들의 세계는 무너진다. 이들이 아기 때 출국하며 몸에 지녔던 서류는 대부분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해외 입양된 사람들, 집단으로 입을 열다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은 생후 몇 개월 혹은 몇 년 만에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과 달리 언어, 관습, 문화, 정체성에서 극심한 차이를 겪게 하고 인종차별에 노출시킨다. 이 책에는 덴마크 입양인 21명, 노르웨이 입양인 5명, 네덜란드 입양인 4명, 미국 입양인 3명, 벨기에 입양인 2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중 친부모와 재회한 이는 4명이다(미아 리, 레나테 판 헤일, 에바 란 호프만, 김동휘). 다른 사람들은 수없이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부모와 만나지 못했거나 혹은 서류가 잘못되어 찾아나설 수 없는 상태다.
입양은 입양 당사자만의 서사가 아니다. 입양 부모, 친생 부모, 입양인과 결혼한 배우자, 입양인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삶까지 바꿔놓는다. 이 책은 입양으로부터 영향받는 모든 이의 삶을 아우르고자 양부모, 친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입양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들은 자기 삶을 직접 증언한다. 이들의 생애 전체가 몇 페이지 안 되는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고, 이어서 그들이 입양됐을 때의 사진과 현재 모습이 같이 실려 있다. 사진을 보면 입양 당시의 그들은 여느 아기들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리고 옆에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이 병치되어 있다. 그 수십 년의 간극에서 독자들은 이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랑, 돌봄, 배척,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인종차별 등 수많은 상실감이 저절로 읽힌다. 각 글 마지막에는 글쓴이의 출생 연도, 입양 시 나이, 한국의 입양 기관, 입양 동의서 포함 여부, 사회적 경력을 기록했다. 이 기록들 가운데 문장 하나가 계속 반복된다. “입양 동의서나 경찰 신고서가 입양 서류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모두 불법 입양이었던 것이다.
입양은 아이의 삶만 뒤흔들지 않는다. 내가 키운 아이가 알고 보니 불법 입양된 것이었다면 양부모는 죽을 때까지 ‘아이 도둑’이 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 피런스의 양아버지가 그런 수치심 속에서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입양인 부모를 둔 자녀들 역시 다른 삶을 산다. 덴마크로 입양된 니아 토프타게르의 딸 마야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명을 갖고 놀았다는 점에서 입양은 쓰레기 같은 일이에요”라고 한다.
“너는 왜 맨날 분노에 차 있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 “너가 서양에서 자란 건 정말 행운이야. 네 삶이 훨씬 더 나아졌으니까.” 생후 5~7개월경 덴마크로 입양돼 매사에 감사하라는 요구를 받은 메이브리트 코드는 되묻는다. “우리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삶이 힘들었을 거라고요? 대신 새로운 부모를 만나고 덴마크의 사회보장번호도 받았으니 만족하라고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여기 글을 쓴 입양인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물론 입양인들은 일반인보다 우울증, 자살충동, 약물 남용을 더 많이 겪는다). 그건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 한국에 비해 더 선진화된 국가에서 자란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입양인으로서 이들의 생존 전략이 그렇게 만든 면도 있다. 이들은 자라면서 늘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하지만 늘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저는 지쳤습니다.”
생의 기본값은 불안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책에는 극단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들이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며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기 삶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 절박한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자.
1968년생 니아 토프타게르는 뇌성마비를 앓았다. 다섯 살경 그녀는 벨기에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 가정에는 이미 네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장애를 가진 니아가 다른 데서 입양을 거부당하자 그의 양부모가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니아에게 어떤 애정도, 소속감도 주지 않았다. 가족여행 때 그녀를 다른 곳에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장애 때문에 너를 데리고 휴가 가는 것은 너무 힘들고 귀찮아.” 열여섯 살 때 미아는 부모님께 집을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미아의 고된 삶은 그러나 결혼 후 낳은 딸 마야로 인해 위로받는다. 현재 중학생인 마야는 엄마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엄마의 한국 가족과 진짜 정체성을 찾길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엄마한테 장애가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정말 멋져요. 엄마가 우리한테 한국어를 좀더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마야는 입양에 대해 뼈 있는 말도 한다. “엄마는 입양 가족들에게 인형이라 불렸어요. 제 입양 이모가 생일 선물로 살아 있는 인형을 받은 셈이죠.”
신광복의 아내 김정아는 1964년생(혹은 1965년생)이다. 1966년에 보육원 안양의집에 입소했다가 12년 뒤 노르웨이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열네 살쯤의 일이다. 문제는 양부모와의 나이 차가 41세나 났다는 것이다(아버지와 어머니 각각 55세와 54세였다). 이는 불법인데, 입양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이 차는 40세를 넘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입양된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그녀는 양아버지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양어머니는 그녀에게 허드렛일을 시켰다.
김정아씨는 불안한 지난날을 털어놓는다. “저는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집 안의 골동품과 예술품을 깨뜨리거나 망가뜨릴까봐 두려웠습니다. 양어머니가 제 다리를 보고 너무 짧다고 말했을 때 이 집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양어머니는 제가 키를 늘이는 수술을 받길 원했어요.” 김정아씨처럼 입양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모자라다고 여겨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자기 존재가 정당화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고의 여성 먹기 대회 챔피언인 메리 바워스(미국으로 입양됨) 역시 자신이 뛰어나면 비인간적 대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아왔다.
덴마크로 입양된 김선아씨는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양어머니에게는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문제는 양부모가 모두 김선아씨의 학교 교사여서 한순간도 그들에게서 놓여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십대를 “뒤에서 누가 덮칠지도 모른다고 느끼면서 앞으로 달려온” 삶으로 비유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던 세월이라고 회상한다.
김선아씨는 학대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여섯 살 때부터의 기억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학대를 잊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녀는 열여덟 살에 집에서 나왔고 이후 파양 신청을 했다.
덴마크에 입양되었던 요아킴 베른은 좋은 양부모를 만났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문제를 겪었다. 누군가는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요아킴 베른은 이런 견해에 반박한다. “친부모와의 인연이 끊어지면서 제 인생에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정체성이 사라졌어요. 저는 겉으로는 복지국가에서 특권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늘 공허함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 이야기를 빼앗아갔는데,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감사하겠다’는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두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크리스티나 닐센은 앞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반면 뒷면은 얼룩덜룩한 삶을 살았다. “저는 양어머니한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어른이 돼서도, 아이들 아빠랑 헤어졌을 때도 양어머니는 저를 안아주거나 저한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휴가 때면 가끔 한국을 찾아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저 사람이 혹시 내 어머니 아닐까? 내 아버지나 형제 아닐까?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한국의 가족이 지금도 그녀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
저자들은 성인이 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 땅을 찾곤 한다. 직장을 다니다 휴가를 내 한국에 잠시 와 머물다 간다. 이들은 난생처음 안도감을 느낀다. 한국 여행이 이들에게 치유의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고정 코스 중 하나는 입양 기관 방문이다. 이들은 백지 상태의 서류를 마주한다. 혹은 조금 두꺼운 서류를 들춰보다가 허위 기재임을 깨닫는다. 그런 서류가 버려지다보면 서류철은 점점 더 얇아진다. 지금까지 해외 입양의 서사는 입양 부모의 시선에서 구성되어왔다. 저자들은 진실된 서사를 재구축하고 싶어 함께 글을 썼다. 이제는 비밀과 거짓말과 모호함에서 벗어나는 삶을 찾고 싶어서.
추천사
이 책에 글을 쓴 이들이 한목소리로 “입양 생존자”라고 자신을 표현한 게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랜 세월 미담으로 포장된 해외 입양의 민낯은 위조된 서류와 불법 절차, 인권 침해, 이익 추구를 위한 입양 기관과 권위주의 정권의 공모로 얼룩져 있다. 그 “거대한 인간 실험”의 피해자로서 존재의 근원에 대한 답조차 얻지 못하고 살아온 입양인의 삶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를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입양인뿐만 아니라 입양인의 배우자와 아이들, 양부모, 친생 부모 등 해외 입양의 다양한 당사자들이 던지는 입양의 정당성에 대한 뼈아픈 질문이다. 이 책이 드러내는 입양인의 고통은 과거사가 아니라 생생한 현재진행형이다. 세계에서 해외 입양을 가장 오래, 가장 많이 해왔고 여전히 미혼모의 아이들을 해외로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은 더 늦기 전에 추악한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_김희경, 『이상한 정상가족』 저자
이 책은 한국이 벌이고 있는 해외 입양에 관해 가감 없고 솔직하면서도 잊을 수 없는 증언들을 담고 있다. 한국인 입양인은 고아이거나, 부모가 키울 여력이 안 됐거나, 서양의 부유한 나라에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사랑으로 보냈다는 서사는 모두 허구로 밝혀지고 있다. 과연 진실은 뭘까? 저자들은 어린 시절에 들었던 거짓말과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했던 고통을 드러내면서 독자들이 20만 명의 입양인과 그 가족이 겪은 일을 함께 인식하도록 촉구하고 있다._그레이스 조, 『전쟁 같은 맛』 저자
나는 모든 사람이, 생존하고 애도하는 목소리 그리고 부패한 시스템에 맞서 싸우는 이 강력한 증언을 읽어보길 권한다. 이 이야기들은 해외 입양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친생 가족, 입양 가족, 친구, 배우자 그리고 그 자녀들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나아가 우리 모두가 같은 역사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준다._마야 리 랑그바드, 『그 여자는 화가 난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