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의 모든 말은 사투리다
어느 한 지역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을 사투리라고 합니다. 수도를 중앙으로, 지역을 지방으로 구분해 온 경향 탓에 사투리는 오랫동안 애꿎은 이미지 속에 갇혀 있었지요. 사투리는 촌스러워, 사투리 쓰는 사람은 교양이 좀 없어, 사투리는 공식적인 언어가 아니야, 공공연한 자리에서는 표준어를 써야 해.
하지만 서울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는 토박이말이 있습니다. 토박이말은 지역 정서를 고스란히 담고 있고, 지역과 지역민 정체성의 기반을 형성합니다.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스며든 말이며, 제각각 다른 팔도 사투리는 우리 언어의 다양성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글말이 아닌 입말로만 전해진 탓에 시간이 지나며 일부는 소멸되었고, 지역 경계를 쉽게 넘나들지 못해 지역 밖에서는 움츠러드는 말이 되었습니다. 글말이 되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기회 역시 없었지요. 아무리 가치 있는 입말이라도 글말로 남기지 않으면 사라져 버리고 보존되지 못합니다. 이에 책과 영화·드라마·신문 등에서 각 지역별 사투리 문장 100개를 그러모으고, 각 지역에 연고 있는 작가들이 지역과 사투리에 관한 이야기를 붙였습니다. 유유는 다양한 정서를 품은 유서 깊은 말, 오래 기억하고 함께 쓰고 싶은 사투리 표현을 모아 우리 언어문화의 다양성을 살피는 기획으로 ‘사투리의 말들’을 선보입니다.
“그릏게 바쁘문 어제 오지 그랬슈…”
오지게 느긋하고 감칠맛 나는, 충청의 말을 위하여
한번쯤 ‘충청도 화법’에 웃음 지어보신 적이 있지 않나요? 다른 사투리에 비해 억양이 뚜렷하거나 비교적 새로운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닌데도 특유의 느긋한 말투와 화법은 이상하리만치 ‘구미를 당기게 그윽한 맛’을 냅니다. 서두르는 이들에게 나지막이 건네는 충청도 어르신의 말처럼요. “그릏게 바쁘문 어제 오지 그랬슈….” 말에도 맛이 있다면 충청도 사투리에는 ‘감칠맛’이 가득합니다.
『충청의 말들』의 저자 나연만은 책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불을 만난 고기가 기가 막힌 풍미를 내는 것처럼, 여유 있고 느긋한 충청도 사투리에 은유적 표현이 결합하면 독특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자아낸다”고요. 요새는 이런 화법이 비교적 덜 쓰인다고는 하지만, 느긋하게 풍미를 더하는 ‘충청의 말들’에는 여전한 감칠맛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이번 책 『충청의 말들』에서는 충청도에서 나고 자란 소설가가 우리 책, 영화, 티브이 등 여러 매체에 충청도 사투리가 쓰인 100가지 문장을 골라 감칠맛 나는 ‘충청도식’ 단상을 덧붙였습니다. 단순히 특정 표현을 소개하고 풀이하는 것을 넘어 충청의 말을 하나의 씨앗 삼아 그 말에 얽힌 자신의 기억과 일상, 사회에 대한 생각을 느긋하고도 자유롭게 풀어냈어요. 느릿한 농담으로 핵심을 꿰뚫는 ‘충청의 말맛’을 이 책으로 함께 느껴볼까요?
“생각이 많으믄 다치는 겨…”
입에 착 달라붙는 말에 담긴, 생생한 충청의 마음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 사실 충청도 사투리로 쓰였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한용운 시인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시에도 홍성 방언이 그대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시의 표현들을 현대 맞춤법에 맞게 고치게 되었고, 우리에게 익숙한 ‘아주 단정한 서울말로 쓰인 시’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표준어에 가려 사투리를 흘려보낸 사례들은 꽤 많습니다. 처음에는 생생한 사투리 그대로 연재되었지만 책으로 묶여 나오며 대사를 모조리 서울말로 바꾸어야 했던 고우영 화백의 만화 『임꺽정』의 사례도 있고요.
『충청의 말들』은 무심코 흘려보낼 뻔했던 수많은 충청도 사투리들을 다시 불러냈습니다. 충청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자에게 충청도 사투리는 수많은 기억과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몸에 붙은 말’입니다. 그러니 단순히 사투리 표현을 제시하고 뜻을 풀이하는 데에서 그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충청의 말 하나하나에 자유롭게 얽힌 저자의 100가지 단상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충청의 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한용운의 시가 서울말로 바뀌었다는 점에 툴툴거리다가도 마지막에는 “언어학자들의 깊은 뜻이 있었겠지….” 하며 느릿하게 덧붙이는 저자의 말과 마음은 정말 ‘충청도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요.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고도 하지요. 이번 책 『충청의 말들』에는 생생하고도 감칠맛 나는 충청의 마음이 빼곡합니다. “생각이 많으믄 다치는 겨”라고 전해준 공장 아저씨부터, 험담하고 슬쩍 덧붙이는 “애는 착햐”라는 누군가의 한마디까지, 때로는 재미나게 때로는 눈물 나게, 지난 기억과 감각을 말로부터 일깨우는 이야기를 『충청의 말들』은 가득 담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감칠맛 가득한 ‘충청의 마음’을 잔뜩 느껴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