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기억이 없어서 얼마나 답답할지 난 잘 몰라. 근데, 이미애 씨한테 아무리 물어봤자 네 기억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거 말해 주는 거야. 강림 차사님이 말씀하셨잖아. 저승은 지독한 인과율로 움직인다고. 네 기억을 찾고 싶으면 망자의 기억부터 찾아 줘야 해. 그렇게 물어볼 게 아니라.”
“근데, 장난은 아이다. 니랑 같은 거 먹고, 같이 경험하고, 똑같은 생각을 하고 싶다, 내는. 그런 날이 올 때까지 계속하고 싶고.”
“……정말 그런 걸로 우리가 비슷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나?”
“내야 모르지. 그냥 해 볼 뿐이다, 니를 원하니까.”
승현과 눈을 마주친 미애가 너무 노골적인 자신의 말에 부끄러운 듯 웃었다.
“너 어떻게 여길? 왜 왔어! 왜! 왜! 너 잘 키워 줄 주인 찾으랬잖아! 뭐 하러 왔어!”
한없이 애가 타는 눈빛을 보내는 강아지가 앞발을 번쩍 들어 수혜의 무릎에 올렸다. 그러고는 최선을 다해 그녀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제발 그러지 말라고, 날 떠나지 말라고, 조금만 더 버티면 좋아질 거라고 눈동자로 말을 건네는 강아지가 그녀를 핥고 또 핥았다. 그것은 위로였다. 작은 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
죽음을 마주한 순간, 눈앞에는 살아온 한 생이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가장 후회가 되던 순간에 머문다. 나는 그 순간으로 왔다. 광모에게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보냈던 바로 그 날, 그 순간으로 왔다.
“만약, 그때 당신이 그 선택을 해서 하계를 가게 된다는 걸 알았다면… 그래도 그 선택을 했을 겁니까?”
“다 알면서도 해야 할 때가 있잖습니까. 친구니까, 친구로서 한 겁니다.”
다 알면서도 해야 하는 것, 그 깨달음이 수한의 심장에 아로새겨지던 그때였다. 수한 앞으로 하얀 나비 떼가 몰려왔다. 그러고는 그의 눈앞에 하얀 흰 구슬을 살포시 내려놓고는 다시 사라졌다. 깨달음에 대한 보상 같은 마지막 구슬을 드디어 손에 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