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선한 것이 이기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고,
인간은 서로 돕고 나누고 보살피는 존재라는
믿음에 대한 감동적인 증거
관대함으로 세상을 바꾼다니, 너무 이상적이고 순진한 소리 아닐까.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지고, 사람들은 점점 더 이기적이 되어 간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크리스 앤더슨이 일군 TED의 성공이야말로 그의 주장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증거다.
엘리트 지식인들끼리의 비공개 오프라인 컨퍼런스였던 TED를 더 크게 키워보겠다고 다른 사업도 접고 여기에 매달린 앤더슨은 첫 10년간 예상외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다 온라인 동영상이라는 신기술이 막 생겨났을 무렵, 시험 삼아 웹사이트에 올린 영상 몇 개가 그야말로 ‘터졌다’. 그는 돌연 딜레마에 빠졌다. 비영리 단체답게 모든 콘텐츠를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유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면 누가 굳이 큰돈을 내고 강연을 보러 올까?(강연 참가비는 당시 TED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확신이 서진 않았지만 결국 ‘무료 공개’를 택했다.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영상에 감동받아 환호하는 시청자들로 웹사이트 방문자 수가 치솟았고, 강연 내용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겠다며 각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발 벗고 나섰다. 이후 3년간 TED의 수입은 열 배 이상 증가했다.
TED의 인기가 높아지자, 자기네 도시에서도 강연을 개최할 수 있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다.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그냥 각국 주최자들이 알아서 할 수 있게 무료 라이선스를 발급하기로 했다. TEDx는 ‘x라는 지역에서 자체 조직된 TED’를 뜻하는 용도였지만, 실제론 브랜드의 역량을 곱하기로,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늘려 주었다. 이제 TED는 자신의 귀한 시간과 재능을 기꺼이 제공하고자 하는 사람들 덕분에 지구촌 곳곳의 스포츠 경기장, 오페라 하우스, 열대우림, 난민 캠프에서도 열리는 행사가 되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콘텐츠를, 더 나아가 브랜드 자체를 나눠 주기로 한 것은 앤더슨과 그의 동료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 결과로 오늘날 TED는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 리처드 도킨스, 제인 구달, 마이클 샌델, 미셸 오바마 등 내로라하는 명사들의 지식과 영감을 100개 이상의 언어로 전 세계에 전파하며 해마다 10억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앤더슨은 이 모든 일이 ‘관대함의 전염성’이라는 마법 덕적대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다정한 힘을 더욱 적극적으로 이끌어 내고 활용한다면, 갈수록 갈등하고 분열하는 세상을 좀 더 살 만한 곳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지금 우리 곁에서 벌어지는 감동적인 사례들로 증명해 낸다.
타인을 향한 관심과 연민,
돕고 나누고 베풀려는 인간의 선한 충동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될 수 있다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자극적인 뉴스들이 눈길을 사로잡기에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을 뿐, 선행은 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조슈아라는 미용사는 어느 날 퇴근길에 마주친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고 공짜로 머리를 깎아 주겠다고 제안했다. 청소년 자살률 기사를 보고 충격받은 울프라는 여성은 자신이 정신과 의사도 심리치료사도 아니지만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를 담은 표지판을 제작해 지역 주민들에게 마당에 세워 달라고 부탁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도 힘든 99세의 무어는 코로나19로 궁지에 몰린 의료진을 돕겠다며 자기 집 정원 100바퀴 돌기 챌린지로 모금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결코 대단한 부자도, 기발한 천재도 아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지친 내게 자리를 양보해 준 사람, 낯선 동네에서 헤맬 때 친절하게 길을 알려 준 사람처럼 지극히 평범한 이웃들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성향이 있어서, 악행에는 복수심이, 선행에는 보답하고자 하는 욕구가 뒤따른다. 적대감은 적대감을 낳고 친절은 친절을 낳는 것이다. 게다가 꼭 자신이 친절의 수혜자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제삼자에게 선행을 베푸는 모습을 보거나 듣기만 해도 영향을 받는다.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같은 연구자는 특정 행동이 인간 네트워크를 통해 극적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는데, 관대한 행동의 경우 조너선 하이트가 말한 ‘도덕적 고양(moral elevation)’에 의해 그 효과가 증폭된다. 타인의 선행을 목격하면 따뜻한 감정이 들면서 그 행동을 따르고 싶게 되고, 결국 친절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의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이 연쇄반응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잠재력이 있다. 머리를 깎는 동안 노숙자가 들려준 인생 사연에 감명받은 조슈아는 틈만 나면 거리로 나가 노숙자들의 공짜 미용사를 자처했다. 그가 노숙자들의 다양한 사연과 헤어컷 사진을 #DoSomethingForNothing(대가를 바라지 말고 뭐든 하라)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면서, 이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울프의 표지판과 무어의 챌린지도 소셜 미디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예상치 못한 성과를 거뒀다. 무어는 100세 생일에 정원 100바퀴 돌기에 성공하며 당초 목표했던 금액을 훌쩍 넘어 무려 3200만 파운드(한화로 540억 원)를 모금했다. 어떤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러 가던 길에 울프가 제작한, ‘포기하지 마세요’라고 쓰인 표지판을 보고 그길로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우울증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기껏해야 수십, 수백 명 사이에나 퍼졌을 이런 일들을 이제는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즉, 관대함의 전염성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은 없다”
‘의도’보다 ‘효과’에 주목하라
그러나 선한 바이러스를 효과적으로 확산시키려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몇 가지 제약을 넘어서야 한다. 먼저, 어떤 행동을 선행으로 볼 것이냐부터가 문제다. 흥미로운 설문 조사를 하나 살펴보자. 프란시스라는 사람이 자선단체에 5000달러를 기부했고, 그 돈이 한 아이의 시력 회복에 필요한 수술비로 쓰였다는 소식을 전하자, 97퍼센트의 응답자가 그의 행동이 ‘관대하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프란시스가 억만장자이며 악덕 고용주라는 사실을 밝히자, 그 비율이 51퍼센트까지 줄었다. 상황을 재설정하여, 프란시스가 기부에서 수술까지의 과정을 유튜브에 올려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고 하자, 그의 행동이 ‘관대하다’는 평가는 56퍼센트에 그쳤다. 그러나 그 유튜브 영상을 본 100명 이상이 크게 감동하여 자기들도 아이의 시력 회복을 지원하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을 알리자, ‘관대하다’는 평가가 81퍼센트로 늘어났다.
이 조사에서 응답자 대부분은 기부의 실제 결과보다도 기부자의 의도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우리는 선행이란 계산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다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행을 도덕성 테스트로 삼는다면 몰라도, 널리 퍼뜨려 세상을 변화시킬 도구로 삼고자 한다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다. 착한 일을 해서 기분이 좋아지고 남들한테 칭찬받는 것도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다. 그런 이득조차 없다면 선뜻 선행을 베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 〈프렌즈〉에서 조이의 대사처럼, “이기적이지 않은 선행은 없다.”
어떤 사람이 학교에 돈을 기부하고 뉴스에 크게 보도되었다면, 자기 홍보라는 이기적인 의도와 함께 아이들이 좋은 교육을 받길 진심으로 바라는 이타적 욕구가 함께 작용했을 수 있다. 우리는 이제 베푸는 행위 이면의 이런 복합적 동기를 인정해야 한다. 저자는 자기 평판을 위해 관대함을 베푸는 사람들을 오히려 대놓고 칭찬하라고 권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이 선하게 행동하도록 설득할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자선 행위로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는 위선적인 기업가나 정치인처럼 비판적으로 따져 봐야 할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 정말로 위선인지 확실하지 않으면, 일단은 선의로 해석”하라. “뭐가 됐든 베푸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비판할 꼬투리를 찾는 대신 먼저 격려하고, 그다음에 더 나아질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편이 낫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동기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는 세상은 그 자체로 암울해질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하라”
친절에 날개를 다는 법
인간은 기회보다 위험에 더 민감하도록 설계된 까닭에 위협, 분노, 혐오는 이목을 확 끄는 반면, 진지하고 선량한 이야기는 지루하다. 비행기 추락 사고로 100명이 사망한 뉴스는 특종으로 다뤄지지만, 아동 질병 퇴치에 일생을 바친 이들 덕분에 옛날 같으면 어제 죽었을 뻔한 아이들 2만 1000명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소식은 좀처럼 화젯거리가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은 다정함을 전염시키는 데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그렇다면 선한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만들면 어떨까? 착한 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소름 돋게 만들 수는 없을까?
구독자 수 세계 1위의 유튜버 미스터비스트는 이 방면에 통달한 인물이다. 〈시각 장애인 1000명이 난생처음 앞을 보게 되다〉라는 영상에는 실제로 그의 후원으로 백내장 수술을 받은 시각 장애인들이 나온다. 그들이 눈을 떠 사랑하는 사람을 처음 보고서 놀라고 기뻐하는 모습은 1.8억 명의 시청자를 감동시켰다. 도쿄에서 시작된 ‘쓰레기 줍는 사무라이’는 쓰레기를 줍는 평범한 행동에 사무라이 복장이라는 창의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틱톡과 유튜브에서 주목을 받고 수많은 이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착한 일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우리가 쉽게 발휘할 수 있는 창의성 중 하나는 유머다. 사람들을 웃게 하면 그들의 관심을 끌 뿐만 아니라 냉소적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ALS(루게릭병) 아이스 버킷 챌린지가 입소문을 타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무엇보다 유명인들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영상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는 인플루언서인 밀라드는 이렇게 말했다.
“감정적 반응을 유발하는 것은 뭐든 바이러스처럼 퍼질 수 있습니다. 물론 비열하거나 불쾌한 것으로 감정을 유발하기는 훨씬 더 쉽습니다. 그냥 얼굴을 살짝 때리기만 해도 되죠. 좋은 일을 하려면 생각과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하지만, 기꺼이 필요한 일을 한다면 그보다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좋은 것들은 훨씬 더 오래 지속됩니다. 당신은 하루 동안 유명해지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는 얼간이가 될 수도 있고, 중요한 일을 해서 영원히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미덕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전략이 된 ‘관대함의 힘’
기부나 선행을 둘러싼 흔한 논란을 하나 더 짚어 보자. 사실 미스터비스트의 백내장 수술 영상을 본 일부 시청자들은 그런 식으로는 불평등한 공공 의료 서비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분노했다. 앞서 말한 조슈아의 경우에도, 그가 아무리 노력한들 애초에 노숙자가 생겨나는 제도적 문제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비판이 들려 왔다. 그러나 이 책은 개개인의 친절한 행위가 근본적, 제도적 차원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미스터비스트나 조슈아 같은 이들은 그런 변화를 도울 뿐이다. 미스트비스트의 영상이 저비용 수술로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림으로써 제도적 변화를 촉진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돕고 관대함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제도는 물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부자들의 기부가 그저 돈으로 대중의 지지를 사려는 위선일 뿐이며, 애초에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준 불평등한 제도를 오히려 강화할 뿐이라는 비판에도 비슷한 관점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물론 불평등의 심화는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심각한 문제이고, 부자들 중에는 자선 활동을 꼼수로 활용하는 이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과세 정책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사이에 부자들은 자신들의 부를 활용해 정치적 결정을 좌우할 수도 있고, 세금을 덜 매기는 다른 나라로 옮겨 갈 수도 있다.
차라리 이 문제에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공정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개혁과 부자들을 설득해 자선 활동을 늘리게 하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포브스》의 집계에 따르면, 대다수 억만장자가 평생 기부한다고 알려진 금액은 순자산의 5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그들의 자선 활동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이 기부하라고 촉구하고, 어떤 방식의 자선이 사회에 더 유익할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실제로 저자는 대규모 자선 프로젝트를 발굴해 자금 모금을 돕는 ‘담대한 프로젝트(The Audatious Project)’를 이끌며 부자들이 여기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을 확인했다.
냉소와 폭력과 이기심이 파도치는 세계에서
가라앉지 않기 위해 부표가 되어 줄 책
이 모든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나 하나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남을 돕겠냐고 반문할 수 있다. 혹은 돕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돈 말고도 누구나 손쉽게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선물 목록을 알려 준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도 보편적인 선물은 ‘타인을 향한 관심’이다. 조슈아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노숙자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가가 인사를 건넨 것처럼 말이다. 또는 요즘 시대에 특히 필요한 유형의 선물도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뮤지션 대릴 데이비스는 용기를 내어 인종차별주의 집단으로 유명한 KKK단의 로저 켈리에게 만남을 제안했고, 둘의 인연이 이어져 결국 켈리가 KKK단을 떠나 데이비스와 평생 친구가 되었다. 이 사연은 양극화 시대에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보여 준다.
우리 모두가 조슈아나 데이비스처럼 용기를 내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든 일을 겪고 있는 내 곁의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는 일, 온라인에서 비방과 악플 대신 칭찬과 선플을 다는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셜 미디어에서 마주친 타인의 선행에 ‘좋아요’와 ‘공유하기’를 누르는 단순한 행위만으로도 다정한 전염을 일으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일에는 돈도 들지 않고, 그리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지도 않다. 무엇보다 관대함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
휴대폰만 열면 분노와 이기심, 갈등과 분열의 장면들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희망과 낙관을 갖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위기감이 커질수록 인간은 ‘나’에서 ‘우리’로 시선을 돌리는 존재다. 최악의 상황에 절망하기보다, 우리 안에서 최선을 이끌어 낼 지혜로운 해법을 찾는 이들이 이 책에서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