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도 성품도 마음도 모두 둘이 아니요, 있고 없고를 따짐 또한 별것 아닙니다. 그래서 무엇을 알고자 하는 마음도 일으키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사의 가르침이 없었더라면 자칫 가시덤불을 헤매는 꼴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몸속에 감춰진 신령스러운 보배를 알지 못하고 찾지 못하여 애먹는 중생들에게 원음(圓音)이요, 항아리 안에 켜놓은 등불과 같습니다. 세상을 뒤덮을 그물망과 같아서 걸려들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P22. 표훈 거사 감상 중에
♠과일의 익음이란, 깨달음을 알리는 흉금을 열어 보이심인데 그 깨달음의 자리에 머무름이 없으나 국사의 생각은 다릅니다. 잘 익은 과일에 감로수를 적시고 계십니다. 감로의 의미 또한 깨달음의 이슬이요, 갈증을 풀어줄 천상(天上)의 음료수입니다. 이러한 경지는 맛보지 않으면 드러내기 어려운 해탈의 결정(結晶) 입니다.
국사에 의해서 사람이나 천상계가 같은 맛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맛볼 수 있는 자비를 베풀고자 합니다. 기쁨의 희열이 인간 세상에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상의 세상이며 진여(眞如) 무한한 맛일 것입니다. -P33. 고려 원감 국사, 감상 중에서
♠깨침이란 단순히 환희와 상쾌함만 있겠습니까? 덩실덩실 춤을 추어도 그 기쁨을 다 보여줄 수 없고 과거, 현재, 미래세까지 두루 어루만짐을 누구에게 알린들 알아먹겠습니까?
여기 선사도 무심의 자리에 들어서 모든 것을 쓸어내 버렸으니 누구에게 나누어줄 것도 없습니다. 그저 흐르는 샘물이 수생목(水生木)하듯 당신의 끙끙 앓던 신음소리 하지 않으므로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토끼 뿔, 거북 털, 판치생모(板齒生毛, 앞 이빨에 터럭이 난 것), 똥막대기(乾屎橛), 그딴 것 이제 아무 소용없습니다. 싹 쓸어내었으니 가진 것 없는 그 자체가 천만금의 재산입니다. -P59. 고려 만우천봉 선사, 감상 중에서
♠많은 것을 알아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조그마한 한 가닥에 걸려서 애를 태웁니다. 그물코를 찾기 위해 한 생각 크게 일으켜서 화롯불을 머리에 이고 맹렬히 추격합니다. 몸뚱아리가 어떻게 되던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가 납니다. 번뜩 무엇인가 스쳐 갔습니다. “옳거니, 이것이로다.” 하며 무릎을 칩니다. 장부의 할일을 마치셨습니다. 천지간의 삼라만상이 나와 하나인 것을, 북쪽 바다가 어떻고 남쪽 변방이 어떻다고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P78. 조선 무휴당산수 선사. 감상 중에
♠이 세상 별것 아닙니다. 마음이 허물어지면 세상도 허물어집니다. 방망이 지나가는 소리에 참새 떼 날아가 버리고, 방망이 흔들리는 그림자만 보아도 온갖 형상이 무너집니다.
허공에 뜨인 것이나 물속에 있는 것이나,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똑같습니다. 그러함에도 이것과 저것을 가려 내려 하고, 마음 밖의 것이나 마음 안의 것을 구분 지으려 합니다. 한마음 일어났다가 사그라지면 흔적마저 없는 것을 찾으려 합니다. -P88. 조선 소요태능 선사, 감상 중에
♠“백 척 장대 끝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야 시방세계와 한몸이 된다.”라는 중국 경잠 선사의 게송을 훨씬 앞질러 버렸습니다. 이미 장대 끝도 벗어났고, 천 길 절벽도 훨훨 날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활연대오하여 거침없는 마음이 되어 장부의 할 일을 다 마친 듯합니다. 그러나 어딘가 좀 불안합니다. 외나무다리를 타는 것 같다고 합니다. 한 발 헛디디면 그 길로 끝장납니다.
선사의 경고 참 훌륭합니다. 조금 깨우친 듯했다고 까불지 말라고 합니다. 백척간두 진일보했다고 다 얻은 것도, 확철대오한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올바른 한 생각 똑바로 뚫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P97. 조선 월봉책헌 선사, 감상 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