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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사람과의 통화


  • ISBN-13
    978-89-364-2509-8 (03810)
  • 출판사 / 임프린트
    (주)창비 / (주)창비
  • 정가
    11,0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9-20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김민지
  • 번역
    -
  • 메인주제어
    시: 시인별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시 #시: 시인별 #창비 #김민지 #잠든사람과의통화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5 * 200 mm, 144 Page

책소개

“다 뺏기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이 덤불을 이룰 때”

모호한 세상을 끈질기게 탐색하고 변별하는 언어적 성취

경계의 기분을 응시하는 세세한 사랑의 관찰기

 

“후무사에서 만나요.

우리는 고만고만한 손을 가지고 있어 서로 알아보기 쉬울 거예요.“

 

밀도 높은 언어를 구사하며 자신만의 시세계를 쌓아온 김민지의 첫 시집 『잠든 사람과의 통화』가 창비시선으로 출간되었다. 2021년 계간 『파란』 신인상으로 등단한 후, 시어와 행간을 통해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고 존재들 사이의 간극을 메워가는 자세는 이번 시집에서 한층 더 성숙해졌다. 특유의 호흡과 개성 넘치는 시어 덕분에 리듬을 타듯 읽히면서도, 독서를 마친 뒤에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뭉근하게 싹트는 것도 바로 이 덕분이다. “‘마음 단어 수집가’와 ‘만물박사’를 자처하며 언어의 활력으로 세상 만물을 정돈”(김수이, 해설)해온 시인은 때로는 경쾌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세상의 풍경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시선을 붙드는 그 모든 풍경에는 세계와 미래에 대한 “가능성의 냄새”(해설)가 서려 있다.

이번 시집에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독특한 소재들이다. 시인은 ‘헤드룸, top note, 유형성숙, 콜로라마’ 등을 소개하며, 이들에 대한 고찰이 곧 세계에 대한 심층적인 탐색으로 이어지게끔 인도한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단어 하나에 오래 머물게” 되고,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단어들에 대한 의심이 불쑥 피어”(강성은, 추천사)난다. 김민지의 시들에는 유독 공간감이 선연한데, 이번 시집에서 공간은 주로 ‘먼지’의 떠다님을 통해 감각된다. 「마티에르」, 「연면적」, 「dayglow」, 「구석을 내밀면」 등의 시 속에서 보얗게 피어오르는 먼지는 있는지도 모르다가 가만히 바라볼 때에야 눈에 걸리지만, 움직이는 순간 어지럽게 일어나고 빛을 받으면 잗다랗게 반짝이는 존재들이다. 시인은 그 개별적이면서도 뭉뚱그려 일컬어지는 먼지들에 눈길을 던진다.

시집에서 공간이 진정 비어 있는 장소가 아니듯 시인은 행과 행 사이의 의미적 간격, 나아가 존재들끼리의 본질적인 차이에 주목한다. 첫 시 「헤드룸」에서 화자는 “무엇 하나 정확히 떨어지지 않아/세상은//무수한 활개들로 중역되는/우회”라며 세상이라는 것이 결코 하나의 단면으로만 정의될 수 없음을 포착한다. 또 「어떤 기쁨은」에서 지적되듯, 혐오가 버젓이 존재하는 세계에서 슬픔을 배척하는 기쁨은 슬픔의 공간을 박탈한다. 이러한 관찰의 결과로 「콜로라마」는 같은 이름으로 묶이는 색깔도 실은 “하나가 아니”라고 말하며, “같은 걸 받는다고 공평해지지 않”는 세상을 진술한다. 오히려 세계는 먼지와도 같은 개별 존재들이 느끼는 주관적인 기분들로 얼마든지 재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시인은 하나의 사안에서 파생되는 모든 이면을 알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기꺼이 “무겁고 부끄러워지는 일을 반복”(「콜로라마」)하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가 되리라고 다짐한다.

시인은 서문에서 “따라 오릴 수 있는 점선과/비뚤거리는 목소리로/순면 같은 시절을”이라고 말한다. 대기중에 떠다니던 희부연 먼지가 가라앉아 투명한 공기만 남듯, 김민지는 이 고요한 소란을 차분하게 응시하며 경계의 영역에 자리 잡은 감정의 세목을 읊는다.

 

“저는 제게 남은 이 느낌을 살려야 해요.

그래서 눈뜨자마자 편지를 씁니다.“

꿈을 가로질러 현실에 가닿는 목소리

상대의 곤한 숨소리를 들으며 통화를 연결해두는 밤

 

『잠든 사람과의 통화』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시적 공간은 꿈의 세계이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어둠, 잠, 꿈을 주요 소재로 삼는 시들이 연이어 등장한다. 보통의 상황에서 꿈의 세계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소망을 투영하거나 현실의 불안을 반영하며, 무엇보다 고정된 시공간의 장면이나 상태를 그려낸다. 그러나 이 시집에서 꿈이란 곧 현실세계와 다름없이 삶이 진행되는 현장이며, “꿈같은 광경도/현실에서만 볼 수 있다”(「염소가 열리는 나무」). 즉 현실세계와 꿈의 세계는 쌍방으로 영향을 미치고, 꿈과 현실 사이의 위계와 경계를 허묾으로써 하나가 되는 두 공간은 같은 방향을 향하여 나아간다. 그 방향이란 꿈만 같던 일을 현실로 가져오고, 빈번하게 찾아오는 슬픈 환상을 “생활이 물고 온 말들”(「실키」)과 “현실을 부둥켜안는 목소리”(「외따로이」)로 보듬을 수 있게 되는 지향이다. 그럴 때 현실의 힘은 환상을 거뜬히 넘어선다.

화자가 꿈에서 겪은 일은 현실의 기분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그가 꿈에서 ‘체험’하는 일들은 현실의 이야기로부터 파생되는 실제 사건으로 인식된다. 화자는 꿈속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상을 일상적인 장면에 포개어보고, “모든 전면전에는 기억할 만한 어둠이 있음”(「회문(回文)공작소」)을 실감하며 밤을 자각한다. 「꿈의 꿈치들」에서는 환상과 현실의 이음매에 위치하면서, 동시에 꿈을 꾸는 데에 서투른 이른바 ‘꿈치’들을 나열한다.

홀로 밤을 견디는 일은 시인에게 고통스러운 노동과도 같은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김민지는 “흩어지던 꿈속”에서도 “어떤 밤의 밑면”(「구석을 내밀면」)을 염두에 둔 채 어둠 속에서 올곧게 빛을 바라본다. 어떠한 가능성을 한없이 기다려온 사람 특유의 쓸쓸한, 그러나 끈질기게 차분한 감각이다. 그리고 「후무사 자두」에서는 자두의 일종인 ‘후무사’로부터 ‘후무사’라는 이름을 가진 꿈속의 절을 상상하기에 이른다. “‘후무사’는 물론 “절이 아니”지만”(해설), 꿈속에서 어떠한 장소로 해석될 때 우리는 서로 만나 하트를 닮은 이 상큼하고도 끈적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네가 너를 안아주”는 일이 가능해진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으로서 태어나 “사랑”을 거듭할 수 있게 된다(「후무사 자두」).

다시 말해, 이 시집은 꿈을 꾸듯 현실을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논리적인 이해보다 직관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시인은 계속해서 “잠든 사람”의 꿈을 현실에 주사(走査)하고(「인부의 말」), 실제로는 먼지 낀 잡음만을 들을 수 있을 텐데도 상대와의 통화를 쉽사리 끊어내지 않는다. 그리하여 잠들지 못한 자신의 편안함보다 잠이 든 상대의 평온을 더욱 바라는 마음으로 시를 쓴다. 이 서투른 마음을 주고받은 결과로서 사랑은 자라고, “덤불을 이”루면서 손을 잡고, 긴 터널을 통과하여 마침내 땅을 뚫고 솟아나오는 “지구의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한다(「깍두기공책」). 사람이기에 끊임없이 엄습하는 “자신 없음”(「인부의 말」) 속에서도 여전히 속절없는 사랑의 가능성을 건네는 방향, 우리는 어쩌면 이것을 ‘김민지식 희망’이라고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세세한 사랑이 가능할 것만 같은 기분을, 그러한 예감을 선사하는 시집이 이미 우리 앞에 도착해 있다.

목차

제1부바닥 마찰하기

헤드룸

홀가먼트

대기실

마티에르

연면적

연면적

연면적

연면적

연면적

자판기 우유를 생각해

염소가 열리는 나무

 

제2부•겨울 들숨 여름 날숨

하나와 마나

겨울깃

top note

꿈의 꿈치들

일장일단 일장일이

외따로이

섬포도

향미증진제

후무사 자두

구근류

불릿의 시

회문(回文)공작소

구분 짓기

0의 분포

유형성숙

 

제3부어둠과 환복

dayglow

포트홀

아몬과 마몬

그나마 심포니

이달의 토핑

가만 나만 다만

어떤 기쁨은

실키

웃옷

깍두기공책

생육 조사

콜로라마

테라포밍

 

제4부•잠든 사람과의 통화

에스키스

타공

일말

너의 전제는 이렇다

너의 전체는 이렇다

너의 천체는 이렇다

동굴영원

구석을 내밀면

루미노그램

디디스커스

우양산

밀양

스톰 체이서

나의 단축어 생성

시간을 재는 시간

인부의 말

 

해설|김수이

시인의 말

본문인용

혼자 있는 공간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공간이 될 것처럼

 

가만히 있는 혀의 감각을 익히며

‘아’ 소리를 낸다

 

떠오르는 감정에 따라 ‘아’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호흡을 다 쓰고 나면 아무 말이나 해본다

 

입안을 벗어나지 않지만 움직이고 있는

혀의 심정이 느껴지는 것 같다

 

느끼고 말하는 것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대기실」 부분

 

그날 밥상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않던 밑반찬, 바위보다 많은 파도를 만난 방파제, 수증기를 달고 사는 욕실 거울, 숨어서 알을 까는 곤충들의 더듬이, 점선을 따라가다 부러뜨린 칼날, 설마와 혹시의 우정, 다른 사람 집에 흘리고 온 머리카락, 힘이 들어간 구두 속 발가락, 공기를 밟고 올라서다 넘어지는 취객의 목소리, 언덕 위의 반지하, 평일 은행원의 시재

―「꿈의 꿈치들」 전문

 

해가 쨍쨍한 날

고개를 숙이고 걷던 이에게

말라 죽은 지렁이를 보여준다

 

(...)

 

비록 눈살은 찌푸렸지만

지렁이의 이로움엔 유감이 없는 사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스스로 눈살을 찌푸린 이유에 대해 생각할지

 

어떤 기쁨은 알 수 없다

 

눈이 부시다는 이유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이유로

 

어떤 슬픔이 꿈틀거리는지

너무 환한 날에 멀어지는지

―「어떤 기쁨은」 부분

 

세상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해서 벌 받는 사람도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하지 않았다고 자랑할 사람도 있는데

너는 네가 어떤 짓을 해도 소용없다 느끼니까

 

말한다고 달라질 게 없겠지만

힘에 부치면 말해

고르고 고르는 게 슬프면 말해

 

강아지가 작은 공을 입에 물고 오듯

생활이 물고 온 말들을 몇번이고

적당한 거리에 던져줄게

 

많은 것 중에

사람을 잘 보는 사람

 

네가 반복하는 만큼

세상은 침이 묻고 단정해진다

―「실키」 부분

 

1. 익명의 가마우지는 콧구멍 없이 태어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2. 익명의 블롭피시는 심해에서만 외모가 빛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3. 익명의 일각고래는 대체로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4. 익명의 아이벡스는 긴 뿔이 자신의 등을 향해 자라나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5. 개별적으로 초대하지 않은 사용자가 파일을 보고 있습니다.

 

다음 밑줄에 들어갈 말을 서술하시오.

 

익명의 아홀로틀은 타고난 신체 회복 능력 때문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중요한 내용이라 밑줄을 그었습니다.

―「유형성숙」 전문

 

물이 닿는 모든 자리가 깨끗해지진 않는다

지하철도 지하로만 다니지 않고

잔뜩 취한 사람 옆에서

꽤 오래 문이 열려 있던

냉장고 냄새와 비슷한 냄새를 맡는다

이 감정은 상온에 보관해야 한다

바닥으로 더 들어가는 바닥과 빗물

작은 웅덩이를 피해 걷는 사람들

앞서가는 뒷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어떻게 걸어도 발이 다 젖는 날

줄눈같이 살아남아 물때가 낀다

분홍색 형광펜을 제 몸에 그은 듯

죄다 중요한 사람들

중요하지 않은 게 없어서

더욱 중요해지려는

미끌거림들

―「포트홀」 전문

 

웃옷 같은 사람들이

좌우로 나란히

좌우로 나란히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웃옷웃옷웃옷웃옷웃옷

 

몇벌의 질서를 지켜야만

팔벌려뛰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웃옷 같은 사람들이

마음 한복판에 모여 있어

 

내리지 못하는 팔과

모으지 못하는 발과

계속해서 걸쳐지는 기분으로 서 있어

―「웃옷」 부분

 

태어난 걸 축하해. 아무도 없을 때 홀로 어느 방바닥과 천장을 쓸고 돌아다니던 냉장고 소리가 너의 전생이었단다. 믿기 싫다면 믿지 않아도 돼. 믿지 않아도 너는 계속돼. 이생에서 너는 무엇이든 될 수 있어. 원한다면 인간이 될 수도 있어. 인간이 되면 가장 먼저 터널에 가봐. 어려운 시기를 통과한 이에게 긴 터널을 빠져나오느라 고생했다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대. 요즘 터널은 그때보다 밝은데. 밝아도 여전히 무너질까 두려운 인간들이 그 속에 남아 있다. 그 광경을 보면 너도 조금은 안심하지 않을까. 같은 인간이 만든 것을 전부 믿지 않는 마음. 다 뺏기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된 사랑이 덤불을 이룰 때. 조금 더 함께하려고 뿌리째 힘껏 주먹을 쥔 나무와 서로 손을 뻗고 깍지를 낀 채 자라난 나무들 사이에서 숲의 손등 위를 거니는 기분을 느껴보는 거야. 마침내 긴 터널을 빠져나온 지구의 기분을.

―「깍두기공책」 전문

 

딸꾹질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은 있어도

죽은 사람은 없다

고이면서 멀리 가는 것에는 형체가 없다

 

거짓말이다

하루 더 살고 알았다

 

지겨움을 이기는 자신 없음

죽음보다 먼저 일당을 번다

그것을 기다릴 게 아니었나

 

순서 없는 일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래서 안 되는 사람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

 

그래, 대답하지 않고

잠든 사람과의 통화를 마치지 못한다

―「인부의 말」 전문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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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no image book
저자 : 김민지
2021년 계간 『파란』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시끄러운 건 인간들뿐』 『마음 단어 수집』이 있다. 창작동인 '관람:觀覽'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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