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냄새 맡으며 온몸으로 느끼는
사계절 자연 감상법
우리 주변에는 어떤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을까? 어쩌면 동식물이 우리 주변에 사는 게 아니라, 인간이 수많은 동식물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잘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지구라는 넓은 집의 한편을 잠시 빌려 쓰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보다 더 오래전부터, 더 다양한 영역에 분포하며 생존해 온 여러 생명이 있다. 이 책은 그중에서 우리 일상과 가까운 산과 하천을 배경으로 한다. 온갖 생명이 자연 속에서 오래 함께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푸른산’, ‘맑은천’이라고 명명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모습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식물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용택 시인은 저자에 대해 “가만가만 걷고 가만가만 말하고 가만히 오래 들여다본다.”라고 말한다. 바로 이 책의 화자인 ‘할아버지’이자 저자 김성호 선생님의 자연 관찰 방법이다. 그리고 책 속 청자인 ‘초롱이’와 묻고 답하며 자연스럽게 독자를 자연의 산책길로 이끈다. 산책이라고 해서 그냥 무작정 걷지는 않는다. 평소보다 천천히 걷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자연의 소리를 듣고, 냄새도 맡아 본다. 때로는 무릎을 구부리거나 엎드리고, 누워 보기도 한다. 자연을 온 마음으로, 온몸으로 느껴 보는 것이다. 책 속 할아버지와 초롱이는 그렇게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산책을 하면서 우리 주변의 자연에 깃든 생명을 알아 간다.
생태 지식은 풍부해지고 생태 감수성은 충만해지는
아주 특별한 동식물 이야기 도감
이른 봄, 할아버지를 따라 첫 산책에 나서는 초롱이에게 자연을 산책하는 일은 조금 낯설다. 도시의 여느 초등학생이라면 자연 관찰보다는 스마트폰을 더 좋아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까지 다니느라 산책은커녕 놀 시간도 부족하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한 첫 산책 이후 초롱이의 질문은 늘어 가고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학교 운동장에 핀 작은 들꽃을 눈여겨보고, 도심 하천의 물고기에 발걸음을 멈춘다. 눈밭에 찍힌 고라니 발자국을 보며 고라니의 마음도 생각할 줄 알게 된다. 이렇게 봄에 들꽃을 보면서 시작한 산책이 여름에서 가을, 그리고 겨울로 이어지면서 초롱이의 발길은 더 넓어지고 자연을 향한 공감은 더욱 깊어진다.
『어린이 산책 수업』은 자연을 접하기 어려운 어린이, 자연을 만나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어린이를 위해 만든 아주 특별한 ‘동식물 도감’이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을 위주로 우리 주변에서 자연을 관찰하기 좋은 곳, 어느 계절에 어떤 동식물을 어떻게 관찰하면 좋은지 등 구체적인 정보까지 담았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200여 종의 동식물을 다루지만 딱딱하고 지루한 도감 형태가 아니라 그야말로 이야기책처럼 술술 읽히는 ‘이야기 도감’이다. 책 읽기를 멀리하고 자연 관찰에 별 관심이 없는 어린이도 이 책을 접한다면 재미있게 읽고 기꺼이 자연 관찰에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어린이들의 마음속에 ‘자연’이라는 씨앗 하나를 품어 주는 책이다.
가을의 이야기
“맺음의 계절이자 떠나보내는 시간이야.”
9월 중순, 가을 숲에 가서 버섯을 찾아다닌다. 먼저 버섯은 식물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곰팡이 같은 균류라는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간다. 우산버섯, 붉은그물버섯, 꾀꼬리그물버섯처럼 숲 바닥에서 자라는 버섯과 목이, 때죽도장버섯, 구름버섯, 노루궁뎅이같이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도 관찰한다. 아울러 식용 버섯과 독버섯 분류의 한계, 버섯이 생태계에서 분해자로서 맡은 중요한 역할을 알려 준다. 10월 중순의 가을은 1년 중 가장 알록달록한 빛깔을 띠며, 고유한 소리를 내고, 결실을 맺는 계절이다. 단풍 든 나무를 보면서 가을의 색깔을, 낙엽 밟는 소리에서 가을의 소리를, 햇곡식과 햇과일로 가을의 의미를 되새긴다.
10월 하순, 마침내 결실을 맺은 식물이 어떻게 열매를 떠나보내는지 살펴보는 시간이다. 바람, 물, 동물, 사람을 이용해 씨앗을 퍼뜨리는 식물의 놀라운 능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한다. 11월 초순이 되면 동식물은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한다. 동물이 털과 가죽을 두껍게 만드는 반면, 식물은 잎을 떨궈서 몸집을 줄인다. 떨어진 잎은 나무의 뿌리를 덮어서 마치 이불처럼 추위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어서 나무의 겨울눈, 풀의 겨울 잎 로제트, 나비와 나방의 겨울 집을 관찰하고, 겨울 철새와 겨울잠을 자는 동물도 알아본다.
겨울의 이야기
“다음 해를 기다리며 쉬어 가는 시간이야.”
겨울 이야기는 12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에서 시작한다. 기러기와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 철새 도래지로 유명한 철원을 찾아간다. 이른 아침, 먼저 토교저수지에서 4만여 마리의 쇠기러기 떼가 이루는 장관을 맞이한다. 그다음, 한탄강 상류의 탐조대로 이동해서 전 세계 두루밋과 15종 중 흑두루미, 캐나다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재두루미, 두루미 5종을 관찰한다. 그리고 다시 토교저수지로 돌아와 맹금류의 제왕인 독수리를 비롯하여 흰꼬리수리, 참수리를 만나는 행운을 누린다.
1월 중순에는 한겨울에 만나기 쉽지 않은 포유류, 그중에서도 겨울잠을 자지 않는 삵, 너구리, 수달, 고라니, 멧돼지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맑은천 주변 진흙땅에서 발견한 발자국과 배설물을 관찰하고, 어느 동물이 다녀갔는지 묻고 답하며 추측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하천 상류로 이동해 고라니와 멧돼지의 발자국을 구별하고,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의 배설물의 차이를 비교하며 관찰을 이어 나간다.
‘딱따구리 아빠’ 김성호 생물학자와
‘세밀화의 대가’ 안경자 화가의 만남
글을 쓴 김성호 저자는 대학에서 식물 생리학을 전공했지만 ‘새 아빠’, ‘딱따구리 아빠’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유난히 새를 좋아하는 생물학자다. 새에 대한 각별한 사랑은 자연에 깃든 모든 생명을 만나는 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이 만남에 교사들이 같이했고 더 나아가 중고등학생, 초등학생까지 함께 자연을 관찰하는 수업으로 확대되었다. 이어서 자연을 관찰하면서 느낀 소중한 경험을 책이나 강연을 통해 전해 주는 일에도 힘쓰고 있다. 세상의 어린이들을 모두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책으로나마 경험을 전하고자 『어린이 산책 수업』을 쓰게 되었다.
그림을 그린 안경자 화가는 세밀화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 동식물 세밀화와 생태 그림 분야에서 독보적인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김성호 저자의 작은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따뜻한 글에 공감해서 『어린이 산책 수업』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이 책을 위해 안경자 화가는 동식물 사진을 개체별로 업데이트하고, 사진이 마땅치 않으면 직접 발로 뛰어 다시 찍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실감 나는 자료를 바탕으로 손수 스케치하고 한 획 한 획 채색해 가며 책에 사계절을 입혔다.
오랜 세월 자연을 사랑하고 그것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 오던 두 작가가 이 책에서 만나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책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