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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기 시선


  • ISBN-13
    979-11-288-9296-7 (03820)
  • 출판사 / 임프린트
    커뮤니케이션북스㈜ / 지식을만드는지식
  • 정가
    18,800 원 확정정가
  • 발행일
    2024-08-23
  • 출간상태
    출간
  • 저자
    육기
  • 번역
    이규일
  • 메인주제어
    시: 고전, 20세기 이전
  • 추가주제어
    -
  • 키워드
    #시: 고전, 20세기 이전
  • 도서유형
    종이책, 무선제본
  • 대상연령
    모든 연령, 성인 일반 단행본
  • 도서상세정보
    128 * 188 mm, 193 Page

책소개

육기는 서진 시기의 문인이다. 남조의 시평론집인 종영의 ≪문선≫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했고 조식-사령운을 연결하는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했다. 육기의 시는 규격을 중시했고 화려한 미감을 선호했다. 형식주의 문풍이라는 평가와 시의 외형적 규칙을 탐색했다는 평가가 공존한다.

목차

1.고시(古詩)

은자를 부른다

승명정에서 아우 사룡에게

교지태수 고공진에게

종형 거기에게

장사연에게 답하다

고언선이 아내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 첫 번째

고언선이 아내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 두 번째

풍문비에게 보내다

아우 사룡에게 보내다

봄을 읊다

서쪽 성곽을 나가 노닐다

낙양으로 가는 길에

동궁에서 짓다

다시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 첫 번째

다시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 두 번째

정원의 해바라기

오왕낭중 시절 양, 진 옛 땅을 지나다 짓다

반니에게

주 부인이 거기에게 보내는 시를 대신 짓다

 

2.의고시 (擬古詩)

<가고 또 가고>를 따라 짓다

<오늘 좋은 술자리>를 따라 짓다

<환하고 환한 견우성>을 따라 짓다

<강을 건너 연꽃을 따다>를 따라 짓다

<푸르고 푸른 강가의 풀잎>을 따라 짓다

<밝은 달빛이 어찌나 환한지>를 따라 짓다

<난약은 산의 동쪽에서 피네>를 따라 짓다

<푸른 언덕 위의 측백나무>를 따라 짓다

<동성은 얼마나 높은가>를 따라 짓다

<서북쪽에 높은 누각이 있네>를 따라 짓다

<마당에 좋은 나무가 있네>를 따라 짓다

<명월이 한밤에 빛나다>를 따라 짓다

 

3.악부시 (樂府詩)

사나운 호랑이

군자의 길

예장의 노래

장성굴에서 말에게 물 먹이다

문밖에 수레를 타고 온 나그네가 있어

군자의 생각하는 바는

장안의 좁고 굽은 길

부드러운 소리로 부르는 노래

긴 노래

강둑에서

슬픔을 노래하다

짧은 노래

수양버들 가지를 꺾다

술상을 차리다

반첩여

연가행

양보의 노래

동탁이 도망치다

달무리야

햇무리야

만가 – 첫 번째

만가 – 두 번째

만가 – 세 번째

추호행

해가 동쪽에서 서문으로 지다

상류전의 노래

태산을 노래하다

동무의 노래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본문인용

1.

나그네 되어 떠나온 벼슬길

승화문 부근에 몸을 맡겼네

검을 어루만지며 수레를 따르고

단정한 의관으로 엄숙하고 정중하게 모셨네

세월은 얼마나 빠르게 지나갔나

추위와 더위가 일순간에 바뀌었다

해를 넘긴 이별에 마음은 슬퍼지고

만물의 변화를 느끼나니 측은하기만 해라

-〈동국에서 짓다〉 중에서

 

2.

문밖에 수레를 타고 온 나그네가 있어

내 고향에서 수레가 왔다 하네

“그대 오래도록 돌아가지 못하고

강상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지”

소맷부리 날리며 문밖으로 뛰어갔는데

윗옷은 걸쳤으나 아래옷을 못 입었네

가슴을 쓸며 나그네를 붙잡고 울다

눈물을 감추며 안부를 물었네

고향의 친척들을 물었더니

슬퍼라, 죽고 산 얘기를 말하네

-〈문박에 수레를 타고 온 나그네가 있어〉 중에서

 

3.

도는 비록 하나로 귀결되지만 

길은 만 갈래가 있다

길흉은 어지럽게 뒤엉켜 

행복과 재앙의 근원이 된다네

사람은 운명을 아는 이가 드물고

운명은 살피기 어렵네

삶은 얼마나 아쉬운가

공명에 힘써야 한다네

-〈추호행〉 중에서

서평

작가이자 이론가

육기(陸機)는 ‘문학의 자각’을 보여준 시인 가운데 하나다. 그는 뛰어난 작가이자 날카로운 이론가다. 그가 쓴 문학 이론서 ≪문부(文賦)≫는 중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문학 창작의 이론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글로 평가받는다. 당시의 현학(玄學)으로 인해 유행하던 철학적 개념들을 문학의 영역에 도입해 이론적으로 접근했으며, 자주 발생하는 오류와 대안, 이상적인 심미관, 상상력과 영감, 문체와 풍격 등 창작의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상세하게 묘사했다. ≪문부≫는 “시는 감정을 따라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아름다워야 한다(詩緣情而綺靡)”라고 말함으로써 ‘아름다움’을 문학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속성으로 제시했다.  육기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사상이나 내용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언어와 문자의 형식적 아름다움이다. 유가(儒家)에서는 표현의 미감을 경시해 단순하고 투박한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지만, 육기는 유가 문학 사상의 제약을 넘어 심미성을 인정한 것이다. ≪문부≫에서 문학 창작의 가치와 즐거움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생명의 애상을 고민한 작가

육기가 가장 많이 고민하고 표현한 주제는 생명에 대한 애상이다. 생명에 대한 감상을 노래하는 것은 위진남북조 문학의 보편적인 현상인데 당시 전염병 창궐과 빈번한 전란 때문에 죽음을 일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이다. 육기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사고가 담긴 시를 많이 지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도 상당히 다양했다. 예를 들어 〈달무리야(月重輪行)〉, 〈햇무리야(日重光行)〉, 〈짧은 노래(短歌行)〉 등의 작품은 인생의 짧음과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슬퍼하고 한탄한다. 또 〈동탁이 도망치다(董桃行)〉, 〈해가 동쪽에서 서문으로 지다(順東西門行)〉 등의 시는 어차피 살다가 죽을 테니 후회 없이 신나게 삶을 즐기자는 생각이 드러난다. 또 〈만가(挽歌詩)〉에는 시인이 죽은 자의 입장이 되어 죽음을 바라본다. 이런 발상은 중국 시사에서 육기가 처음 시도한 것으로, 죽음에 대해 그의 생각이 얼마나 깊었는지 보여준다. 

 

숙명적 정서를 담아

육기의 많은 작품에는 ‘천도(天道)’, ‘인도(人道)’, ‘길흉화복(吉凶禍福)’ 등 숙명적 정서를 담은 개념이 많이 등장한다. 육기는 보수적인 유학을 계승하던 오(吳)나라의 학문적 배경에서 성장했기에 천상의 징조가 세상의 일을 예시한다는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을 신봉했다. 그래서 인생의 애환을 묘사하기 전에 먼저 별과 태양, 달과 바람 등의 이미지를 묘사하는 격식을 애용했다. 육기는 오나라 최고 명문가의 적자로 조국과 가문이 멸망한 상황에서 자신의 조국과 가문을 멸망시킨 진(晉)나라 황실을 섬겼다. 육기에게 좌절감, 분노, 복수심 등의 격정이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청대의 문인 중에는 육기가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았으면서 왜 시 속에 진한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는지 의문을 표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육기가 관념적인 서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수향(水鄕)의 선비

낙양(洛陽)은 육기가 성장한 남방과 자연환경도 다르고 문화적 환경도 달랐다. 그는 스스로를 항상 나그네라고 생각하면서 살았고 시에서도 인생을 나그네로 묘사했다. 육기는 스스로를 “수향(水鄕)의 선비”라고 묘사했는데, 오나라를 대표하는 자연을 물이라고 한다면 낙양을 대표하는 자연은 숲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이별시를 보면 물가에서 형제들과 이별하고 숲길을 걸어가는 장면이 많이 등장한다. 물의 고장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의 시에서 숲은 이별과 슬픔과 공포를 상징하는 소재가 된다. 육기는 인생의 나그네가 되어 진지하게 인생과 운명을 고민했고, 그것을 관념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때로는 나그네의 슬픔을 읊기도 하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안의 좁고 굽은 길(長安有狹邪行)〉 같은 작품은 나그네의 실존적 고뇌를 묘사했다. 항상 원칙을 견지하는 근엄한 유학자로 살아왔지만 실존의 순간 앞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가치관이 흔들리고 혼란스럽다. 누구보다 비극적이고 고독한 인생의 주인공이었기에 맞이해야 했던 고민이다. 

저자소개

저자 : 육기
육기(陸機)
육기(陸機, 261∼303)는 오나라 출신으로 서진(西晉) 시기 낙양에서 활동한 문인이다. 유비의 군대를 패퇴시켰던 육손(陸遜)이 그의 조부다. 조부 육손은 승상을 지냈고, 부친 육항(陸抗)은 대사마를 지냈으니 그의 집안은 오나라 최고의 명문가다. 육기는 가문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해 많은 문장에서 선조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다. 280년 서진이 오나라를 침공하자 육기도 부친의 병사를 이끌고 참전했는데 결국 오나라는 멸망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 포로가 되어 낙양에 압송되었다가 돌아왔다. 289년 육기는 다시 아우 육운을 비롯해 고영(顧榮), 주처(周處) 등과 함께 낙양으로 갔다. 남방의 인재를 발탁한다는 서진의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육기는 조국이 멸망한 마당에 낙양에서 다시 가문을 부흥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본래 오나라 학풍은 한나라의 유학을 계승한 보수적 성향이 강한데 육기 집안은 더욱 그러했다. 육기 역시 “예가 아니면 거동하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근엄하고 진지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육기는 패망국의 자손이었고 낙양은 전승국의 수도였다. 게다가 낙양의 명사들은 당시 노장사상에 기초한 현학을 신봉하고 있어서 문화적으로도 육기와 많은 충돌이 있었다.
당시에는 태자를 중심으로 한 동궁 세력, 가씨 일파의 외척 세력, 팔왕(八王) 등의 황실 세력이 서로를 견제하며 정치적 대립 관계를 형성했으므로 이들의 역학 관계에 따라 많은 사람이 화를 입었다. 후대인들은 육기가 당시의 권력자 가밀(賈謐)을 추종해서 화를 자초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밀을 추종한 것은 육기가 ‘이십사우(二十四友)’에 가담한 일을 말한다. 가밀은 황후인 가남풍(賈南風)의 후광을 입고 권력의 실세를 자처했는데 재능 있는 문인을 모아 ‘이십사우’를 결성했다. 이 모임은 순수한 문학 집회가 아니라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모임이었다. 육기는 가밀의 요청으로 이 모임에 가입했지만 내부적으로 다른 문인들과 교류도 없었고, 최후에는 이 모임 구성원들에게 모함을 받아 죽음을 당했다. 이런 일들을 보면 육기에게는 패망국 출신으로 전승국의 수도에 와서 입신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당시 낙양의 문화적 분위기를 주도하던 명사들과도 원만한 관계가 아니었으므로 낙양에서의 생활이 상당히 외롭고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실은 그의 문학이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게 된 배경이 된다.
육기의 시문은 육기가 낙양에 오기 전부터 낙양 문인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육기 형제가 낙양에 왔을 때 당시 문단의 영수 장화(張華)가 “오나라를 평정한 이익은 두 준걸을 얻은 데 있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낙양 문인들에게 최고의 문인으로 인정받았고 남조(南朝) 문인들에게도 대단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남조의 문학 이론서인 《시품(詩品)》은 육기의 시를 상품으로 분류하고, 육기가 조식(曹植)과 사영운(謝靈運)을 잇는 대작가라고 평가했다. 문학작품 선집인 《문선(文選)》에서도 남조까지의 작품 중에서 육기의 작품을 가장 많이 수록했다. 이러한 사실은 남조 문단에서 육기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번역 : 이규일
이규일
이규일(李揆一)은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베이징대학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국민대학교 중국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고전문학 전공으로 위진남북조와 당나라 시기의 시가, 문학사, 문학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한시교양 115》(리북), 《한시, 마음을 움직이다: 중국의 한시외교》(리북) 등이 있으며 〈두보 시안 평론 고찰〉, 〈포조 의고시의 창작방식〉 등 5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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