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쉽게 후회하고 ‘손절’하는
요즘 어른들을 위한 언어 길잡이
효자상품, 버진 로드, 여배우, 반팔. 이 단어들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반면 누군가에겐 아무런 이질감 없는 단어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지극히 평범했던 말들에 어느 날 갑자기 ‘쓰지 말아야 할 단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별생각 없이 발설했다가 아차, 싶은 순간을 경험한다. 찰나의 실수로 ‘언어 감수성 떨어지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히는 사회. 재빨리 수습하며 능글맞게 웃어도 보지만 정적만 흐를 뿐이다.
《감정 문해력 수업》으로, 인지언어학과 한국어의 특수성에 관해 사려 깊게 통찰한 유승민 작가가 《착한 대화 콤플렉스》를 출간했다. 저자는 JTBC 보도국 작가이자 인지언어 연구가로 언어 감수성의 최전선에서 일하며,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 기성세대와 MZ 세대 등 다양한 입장에 서본 경험을 바탕으로 양극단의 시선을 유연하고 사려 깊게 오가며 언어의 다면성을 들여다본다. 이 책은 어떤 단어가 옳고, 그른지 정답과 오답을 나누지 않는다. 대신 성별과 세대, 문화와 입장에 따라 ‘언어 감수성’이 다를 수 있는 언어적 맥락과 배경을 살피며, 대화의 궁극적 목표를 “한 명이라도 덜 상처받는 안전한 테두리”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동료 시민으로서 응당 생각해봐야 할 언어적 관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어떻게 하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화해와 회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지 현명한 고민의 과정을 보여준다.
이 책은 나는 결코 무례한 사람이 아니고 싶다는 바람과 시대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싶다는 간절함 사이에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 실수할 바에야 차라리 입을 다물어버리는 양가적인 감정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포용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선의와 무례의 언어 기준 앞에서 고민하고 괴로워해 본 이들에게, 이 책은 논란이 되는 말들의 맥락을 짚어주고 어떤 태도로 ‘언어 공포 시대’를 함께 건너야 할지 길잡이가 되어준다.
칭찬조차 불편해진 시대,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한 미용실 사장이 머리 손질을 마친 20대 여성 손님에게 “예쁘다”라고 칭찬하자 손님은 불쾌하다는 듯 대꾸한다. “죄송한데, 예쁘다는 표현은 쓰지 말아 주실래요?” 당황한 미용실 사장은 ‘예쁘다’라는 단어는 ‘20대 여성에게 쓰면 안 되는 말’로 외워버린다.
한 인플루언서가 소셜 미디어에 ‘유아차’라는 단어를 쓰자, “당신 페미니스트였냐”라는 질문이 댓글로 쏟아진다. ‘유모차’라는 단어를 쓰면 “성차별 언어를 사용한다”라며 질타를 받는다. 둘 다 사전에 등재된 단어인데, 어느 한쪽이 질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우리가 직면한 언어적 딜레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며, 현대사회의 대화 방식을 돌아보게 만든다. 유승민 작가는 일상 속 대화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변화와 세대 간의 충돌을 날카롭게 분석하며, 우리 사회가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흥미롭게 풀어낸다. 가령, ‘예쁘다’는 표현은 외모 평가로, ‘라떼’는 꼰대 발언으로, ‘유모차’와 ‘유아차’는 특정 사회적 이념과 연결되는 발언으로, 말 한마디에 민감한 트리거(Trigger)가 될 수 있는 현실을 꼬집으며 갈등을 넘어 단절로 이어지는 현상을 분석하고, 언어를 새롭게 성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저자는 특정 시대와 맥락에서 탄생한 “단어들을 무작정 미워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며,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언어 사용에 대한 여유와 관용을 권장한다. 특히, 스스로 어떤 차별적 언어도 사용한 적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되묻는다.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언제든 언어적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언어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차별적 언어를 개선하는 작업이 결국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발걸음임을 상기시키며, 우리와 다른 기준과 상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다름’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초대한다.
틀딱, 노인충, 한남, 한녀, 맘충, 개저씨…
갈등 너머 공존을 말하다
《착한 대화 콤플렉스》는 사회 구성원들이 ‘틀딱’ ‘한남’ ‘맘충’ ‘개저씨’ 등의 혐오 표현으로 낙인찍히고, 서로를 미워하는 상황을 바라보며, 혐오와 분열이 넘치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매일 사용하는 단어를 두고 벌어지는 ‘오답 찾기’ 싸움을 잠시 중단하기”를 권하며, “각 단어들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흘러가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쓰이면 좋을지” 함께 찾아나선다. 1부 〈내 선의가 무례가 되는 사회〉에서는 ‘쓰지 말아야 할 단어’가 점점 늘어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디쯤 머무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만 이상해?’ ‘나만 불편해?’ ‘왜 이렇게 다들 까칠해?’라는 질문을 한번쯤 품어보았다면 이 장에서 조금은 갈증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2부 〈말은 잘못이 없다, 쓰임이 잘못됐을 뿐〉에서는 조금 더 단어의 본질에 초점을 두었다. 포털사이트에 곧잘 대두되는 이슈 키워드를 모아 ‘공감’에 죽고 사는 한국 사회, ‘노인’을 둘러싼 다채로운 시선들, ‘아줌마’라는 단어에 감춰진 명과 암, ‘라떼와 꼰대’의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담았다. 3부 〈낡은 단어에 물음표를 던질 때〉는 ‘호칭’ ‘가족’ ‘치매’ ‘우리’ ‘보통’ 등 긴 세월 우리 사회에서 사용해온 단어를 위주로 그 안에 담긴 편견, 반전, 새로운 시각에 대해 소개한다. 마지막 4부 〈말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세〉에서는 서로를 혐오 표현으로 구분 짓는 세상에서 어떻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 이정표를 제시한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단순합니다. 이유도 없이 모르는 사람을 미워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아서, 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틀딱, 노인충, 한남, 한녀, 급식충, 맘충, 개저씨와 같은 영역으로 내몰리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혐오의 언어로 한 명씩 한 명씩 사라진 세상에 온전하게 남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말 한마디, 글자 하나로 단절은 빠르고 쉽게 이루어지지만, 그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는 데 희망을 걸어봅니다.”(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