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스태터 하면 떠오르는 첫 번째 주제는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일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를 작동시키는 것은 투표권을 가진 개개 시민들이다. 그러나 다수결에 의한 국민의 합리적 선택이 국가를 운영해 나간다는 가정이 흔들리고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정책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차별하거나, 세계 시민에게 요구되는 협력을 공공연히 거부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반민주적 정치의 원인을 규명할 필요가 대두하자 호프스태터의 고전,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이미 호프스태터는 이 책에서 비합리적이고 반민주적인 정치의 원인이 반지성주의에 있다고 지적했다.
_“미국사의 모순과 신화를 넘어서” 중에서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미국 정치사를 저술한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정치적 전통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은 미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 정치적 지도자들을 다룬다. 그런데 호프스태터는 각 장 제목을 통해 이 인물들의 모순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토머스 제퍼슨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귀족”이었고, 존 캘훈은 “지배 계급의 카를 마르크스”였으며,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종교 부흥 운동가인 민주주의 옹호자”, 우드로 윌슨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였다.
_“04 모순, 역설” 중에서
매카시즘에 대한 관찰은 미국 역사상 그와 유사한 피해 망상적 정치 운동이 있었는지 살피게 했는데, 호프스태터가 찾아낸 사례는 이른바 ‘무지당(Know-nothing Party)’으로 알려진 집단이었다. 반가톨릭과 반이민 외에 별다른 건설적 목표가 없었던 이 조직은 음모론에 기반을 두고 모든 구성원과 활동을 비밀에 부쳤다. 호프스태터는 정당의 명칭과 신념을 묻는 이들에게 “모른다”라는 답변만 했던 이 이상한 정치 집단에게서 시대 변화에 공포를 느낀 농촌 앵글로·색슨 개신교도들의 반사회적 피해망상을 감지했다.
_“08 미국 정치의 편집증적 망상” 중에서
민권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1965년, SNCC(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의 존 루이스가 앨라배마주의 셀마에서 열린 행진에 참석해 역사적인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건널 때, 배낭에 호프스태터의 ≪미국의 정치적 전통과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흑인의 정당한 투표권 행사를 보장해 줄 것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위대에 사냥개와 물대포로 대응한 폭력적 경찰 진압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준 현장이었다. 합의할 수 없는 미국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순간, 그곳에 호프스태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호프스태터가 추구했던 미국사 연구의 지향점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다.
_“10 합의에 대한 반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