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본군 ‘위안부’ 운동과 연구에서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인가
‘위안부’에 대한 최신의 탈식민 페미니즘 연구서
페미니스트,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을 논하다
1991년 8월 14일 고(故) 김학순이 스스로 ‘위안부’임을 밝히고 피해를 공개 증언한 지 30년이 넘었다. 그전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던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했고, 지금도 여전히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위안부’ 문제는 국경을 넘어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인식되었고,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같은 ‘글로벌 희생자’로 위치 지워지면서 지역을 넘은 초국적 텍스트로 논의되는 상황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가운데 그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탈식민 페미니즘 관점의 연구가 너무 적었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페미니스트 연구자들이 논문을 쓰고 쟁점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10여 년의 숙고와 토론의 결과가 바로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이다. ‘위안부’ 문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의 잔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를 막아야 할 필요성을 전 세계에 촉구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위안부’ 운동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과정에서 오랜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에 의지했고, ‘강제로 끌려간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자발 대 강제’라는 이분법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온 망언의 정치에 대해 또다시 민족주의에 의지해 대응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지은이들은 ‘위안부’ 운동이 그동안 이뤘던 것과 하지 못했던 것을 함께 들여다보고, ‘위안부’ 문제를 국가/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여성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위안부’ 연구의 현황을 살펴본다. ‘위안부’ 문제를 탈식민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성찰하는 이 책은 민족주의와 망언이 서로를 강화하는 현실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지구적 정의를 실현하는 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1. ‘위안부’,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
― ‘위안부’ 공론화의 시작점은 1991년이 아니라 1946년 도쿄전범재판이었다
―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연합군도 ‘위안부’ 문제에 책임이 있다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을 기획하고 엮은 여성학자 김은실은 탈식민 페미니즘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오랫동안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를 조명해왔다. 그는 이 책의 서문인 〈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에서 생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 경험을 끊임없이 증언하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당사자 운동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물음으로써 책의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한국인 ‘위안부’를 강제된 피해자로, 일본인 ‘위안부’를 자발적 참여자로 구별함에 따라 시간이 지날수록 곤경에 처하고 있다. 한국인 ‘위안부’가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나 보일 때마다 강제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선택한 것이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위안부’ 운동이 억압받은 민족의 여성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이는 한, ‘위안부’ 문제를 보편적 여성 인권의 문제로 바라볼 여지도 줄어든다.
여기서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연합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본다. 일본 제국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1946년에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전범재판)에서 ‘위안부’ 문제는 전쟁범죄 항목에 포함되지 못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조사관들은 ‘위안부’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관련 자료를 수집해놓았다. 여성주의적 시각이 부족한 시대였다고 하더라도, ‘비인도적 행위’라는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여성을 군수물자이자 성 노예로 동원한 전쟁범죄임이 명확하게 드러날 터였다. 잘못 끼워진 단추는 1991년 유고슬라비아 전쟁에서 벌어진 집단 성폭력에 대해 페미니스트들이 연대하면서 조금씩 바꿔 달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전범재판에서 집단 성폭력이 전쟁범죄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고, 성폭력을 국제형사법의 문제로 등록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는 문제는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민족이라는 장벽에 부딪혀 더 나아가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폭력이 갖는 다층적인 함의가 납작해졌고 집단 성폭력은 민족 간 갈등이라는 틀에서만 법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은실은 ‘위안부’ 문제 공론화의 시작점을 1991년(김학순의 공개 증언)보다 이른 1946년(도쿄전범재판)으로 돌림으로써 ‘위안부’에 대한 민족적/국가적 관점에서 벗어날 것을 요청한다. ‘위안부’를 제국주의 전쟁과 여성의 문제로 조명해야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국제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엮은이의 주장은 ‘위안부’ 문제의 돌파구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전장에 필요한 물자로서의 여성 동원이라는 차원보다 제국에 의한 식민지 여성의 강제 동원이라는 측면이 더 크게 다뤄져왔다. 비록 한국에서의 ‘위안부’ 논의가 두 측면을 어느 정도 포괄하고 있기는 하지만, 식민주의 청산이라는 인식 틀이 더 강하게 운동을 추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오랫동안 일본 정부와 싸워왔던 ‘위안부’ 운동이 일본 정부만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를 일본군의 전쟁범죄에서 제외시킨 연합군의 잘못 또한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한 싸움의 의제로 제기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 〈서문_전시 성폭력을 다시 질문하다〉, 37쪽
2.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
― 식민 지배에 상처 입은 지식인 활동가들의 투쟁은 아니었던가
― 성/폭력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겠다는 욕망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 ‘소녀상’에 대한 윤리적 소비로 운동을 대신할 수 있는가
― 누가 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 1975년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배봉기는 어째서 잊혔는가
이 책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일본군 ‘위안부’ 운동에 대한 성찰〉은 지난 30년 동안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무엇을 해왔고 어떤 한계가 있었는지를 운동 내부의 긴장과 활동가의 고민, 영화에서 성/폭력 재현의 문제, ‘소녀상’을 둘러싼 해석, ‘위안부’ 운동에서 배제된 공창제(公娼制) 문제, 민족의 시선에서 벗어난 ‘위안부’라는 주제로 살펴본다.
1부를 여는 〈1. 야마시타와 영애 사이에서: 틈새의 시점에서 본 일본군 ‘위안부’ 운동〉을 쓴 야마시타 영애는 ‘위안부’ 운동에서 한일 간 가교 역할을 했던 경험을 찬찬히 풀어낸다. 자이니치(在日) 2세로서 정체성을 고민하던 야마시타 영애는 한국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위안부’ 운동에 초창기부터 함께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한 시야를 넓혀갔다. 하지만 한국의 ‘위안부’ 운동이 식민 지배에 대한 상처를 회복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여성 인권을 위한 국제 연대가 차츰 무너져간 것이 아닐까 돌아본다. 이어서 권은선은 〈2. ‘용납할 수 없는 것’을 이미지화한다는 것의 의미: 영화 〈귀향〉의 성/폭력 재현을 중심으로〉에서 2016년 개봉 후 35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귀향〉을 면밀하게 비평한다. 〈귀향〉의 문제는 고통을 적나라하게 재현하는 방식이 여성의 고통 자체가 아니라 민족/남성의 죄책감과 수치심만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있다. 스펙터클은 고통을 재현하는 데 실패하고 ‘위안부’를 신성한 존재로 대상화하고 만다. 허윤의 〈3.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물화되는가: 일본군 ‘위안부’ 표상과 시민다움의 정치학〉은 마찬가지로 ‘위안부’가 ‘순결한 희생자’라는 이미지에 고착될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보여준다. 현재 ‘위안부’의 대표적인 형상은 ‘소녀상’이다. “친구처럼 편안한” 소녀상은 ‘위안부’ 문제를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이와 관련된 ‘윤리적 소비’는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납작하게 만들고 논의의 진전을 가로막는다.
‘위안부’ 운동이 어떤 식으로 국제 연대의 가능성을 좁혀왔는지는 박정애의 〈4. 어째서 공창과 ‘위안부’를 비교하는가: 정쟁이 된 역사, 지속되는 폭력〉에서도 잘 드러난다. ‘위안부’가 공창이냐 아니냐는 한국 민족주의 진영과 일본 우익 진영 사이의 주된 논쟁점이었다. 우익의 역사 부정론에 대항하기 위해 순결한 피해자라는 상에 의지하는 순간, 여성의 주체성과 자율성은 훼손되며 당사자의 목소리도 사라지고 만다. 김신현경의 〈5. 배봉기의 잊힌 삶 그리고 주검을 둘러싼 경합: 포스트식민 냉전 체제 속의 ‘위안부’ 문제〉 역시 ‘위안부’ 운동이 무엇을 배제해왔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가 관건임을 알려주는 글이다. 1975년 고 배봉기의 증언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위안부’ 증언이다. 종전 후 오키나와에 체류하던 배봉기의 삶은 남북한 냉전 구도와 더불어 미군정에서 일본 정부로 행정권이 이양된 오키나와의 역사와 맞물려 있었다. 공개 증언에 대한 일본과 남한의 반응은 정반대였고, 배봉기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는 민단과 조총련 사이의 분쟁으로 축소되었다. 배봉기의 사례는 국경을 넘어선 관점을 통해서만 보이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다.
독자들은 민족/국가의 안팎을 넘나드는 고민이 운동의 안팎에 대한 고민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다양한 시선으로 들여다보면서 ‘위안부’ 운동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3.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
― ‘위안부’는 합리적인 섹스 계약의 당사자라는 주장이 망언인 이유는 무엇인가
― ‘위안부’ 문제는 어떻게 영어권 학술계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었는가
― 전쟁문학을 통해 재현된 ‘위안부’ 서사는 어떻게 제국의 시선과 공모하는가
― ‘위안부’ 피해자들을 숫자로 셈할 때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위안부’ 문제에서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실제로 대립했는가
〈2부. 일본군 ‘위안부’ 연구를 역사화하기〉는 ‘위안부’ 문제가 보편적 여성 인권과 지구적 정의라는 의제로 부상하면서 벌어진 논쟁을 망언의 국제 네트워크, 영어권 학술계의 ‘위안부’ 연구 동향, 탈식민 남성의 언어로 번역된 ‘위안부’ 서사, ‘숫자의 정치’에 매몰된 ‘위안부’의 현실, 여성주의와 민족주의의 허구적 대립이라는 관점으로 톺아본다.
김주희의 〈6. ‘위안부’ 망언은 어떻게 갱신되는가: 신자유주의 역사 해석으로 결속하는 수정주의 네트워크〉는 ‘위안부’들이 강제로 동원된 피해자가 아니라 노동 계약의 당사자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의 ‘망언’을 논파하고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역사 부정론 네트워크를 집중 조명한다. 램지어는 게임이론에 근거해 ‘위안부’ 문제를 ‘합리적으로’ 분석했다고 주장하지만, ‘경제적 인간’이라는 틀은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왜곡하고 부정론자들의 주장을 정당화할 뿐이다. 부정론자들의 네트워크에 대항하려면 현장의 여성주의와 페미니스트 공유 지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논점이다. 한편 김은경의 〈7. ‘인정’ 이후 글로벌 지식장: 영어권의 일본군 ‘위안부’ 연구의 동향과 과제〉는 ‘위안부’ 문제가 글로벌 지식장의 의제에 오른 뒤 영어권 학술계에서 ‘위안부’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또 얼마나 생산해왔는지 분석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성폭력을 전시에 국한해야 하는지, ‘위안부’를 성 노예로 간주하는 것이 적합한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위안부’에 대한 담론을 조명하는 또 다른 시도는 이지은의 〈8. 유동하는 ‘위안부’ 표상과 번역된 민족주의: 1991년 이전 김일면, 임종국의 ‘위안부’ 텍스트를 중심으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있기 이전, ‘위안부’와 전시 성폭력에 대한 기억은 참전군인의 체험담 같은 전쟁문학에서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자이니치 학자 김일면의 책 《천황의 군대와 조선인 위안부》와 문학평론가 임종국이 이를 번역한 《정신대실록》은 ‘위안부’에 대한 일본군 병사의 시선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탈식민 남성의 문제의식이 여성에 대한 비인격화와 공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민족주의 담론이 제국주의 담론과 단순히 대립하고 있지 않음을 보이는 이 글은 당사자의 증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반증한다.
이어서 이혜령의 〈9. 일본군 ‘위안부’는 셀 수 있는가: ‘숫자의 정치’에서 벗어나 ‘바다의 기억’으로 나아가기〉는 당사자의 증언을 동력으로 삼는 ‘위안부’ 운동과 연구가 ‘숫자의 정치’에 얽매인 현실을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모두 고령인 까닭에 시간이 지날수록 ‘위안부’들의 숫자는 줄어간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용기 내어 증언한 데는 전쟁과 죽음의 공포가 바닥에 깔려있고, 이는 숫자로 셈해질 수 없는 것이다. 이혜령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더 낫게 생활하도록 돕는 과정에서 숫자의 정치를 피할 수 없지만, ‘위안부’를 법적 대상으로 등록하는 것을 넘어서는 인식론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정희진은 〈10. 군 위안부 논의에서의 강제성 쟁점: 여성주의와 민족주의는 대립하지 않았다〉에서 지금까지의 논의를 집약하고,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이 유지되는 한 여성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의 대립이라는 구도가 허구적임을 짚어낸다. 한국의 ‘위안부’ 운동은 일본인 ‘위안부’를 운동에서 배제함으로써 강제와 자발의 이분법에 발목을 잡혔다. 국경 밖에서는 일본인 ‘위안부’와, 국경 안에서는 기지촌 여성들과 연대하지 못한 ‘위안부’ 운동이 사실상 “여성의 이름으로 민족(국가)의 피해를 대변해왔다.”는 지적이 아프게 다가온다.
정희진은 글을 맺으며 여성의 피해가 국적에 따라 다르다는 입장, 그리고 전시 성폭력과 평시 성 산업을 분리하는 입장 모두에서 벗어나 피해자를 보살피는 회복적 정의라는 관점으로 ‘위안부’ 문제를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민족주의와 망언의 적대적 공존을 넘어 ‘위안부’ 피해자들의 진정한 회복과 지구적 정의를 실현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