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급은 사라지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삶과 영혼에서 길어온 고통의 정치학
《커밍 업 쇼트》의 저자 제니퍼 M. 실바가 모색한 계급 정치의 가능성
양극화와 불평등의 시대,
더는 들리지 않는 노동계급의 목소리에 주목하다
전 세계에서 양극화와 불평등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격차는 그 어느 때보다 커져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보일 정도다. 많은 전문가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두고 온갖 제언을 쏟아낸다. 하지만 빠진 게 있다. 당사자의 목소리, 즉 가난한 노동계급의 목소리 말이다.
당사자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기반하지 않는 모든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급은 늘 정부 정책의 수동적 수혜자 정도로만 취급받았다. 그러나 인간은 연료로 작동하는 로봇이 아니다. 적당한 보조금을 쥐여주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단 소리다. 어려운 현실을 벗어나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동계급은 부자들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명예, 존엄을 가진 자들이다.
노동계급의 삶과 문화, 불평등을 주제로 활발히 저술 활동을 해온 제니퍼 M. 실바가 황폐해진 미국 동부의 탄광촌 콜브룩으로 떠난 건 이 때문이다. 실바는 마약, 범죄, 가난, 폭력 등의 문제가 가득한 콜브룩에서 가난한 노동계급이 어떤 현실을 살고 있는지, 하루하루의 힘겨운 일상에서 어떠한 감정의 구조를 구축했는지를 면밀히 살핀다. 그리고 노동계급의 삶과 영혼, 그들의 일상을 잠식한 고통에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정치적 가능성을 벼려낸다. 흐릿해지고 있으나 사라질 수 없는 존재들을 위한 정치학 말이다.
서로 다른 인종과 젠더의 노동자들이 벼려낸,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피어나는 계급 정치의 가능성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가난한 노동계급의 삶을 성실하고도 입체적으로 재현하여 지금껏 누구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 세계로 독자를 인도한다. 저자는 섬세하고 배려 깊은 인터뷰로 노동계급 구성원이 마주한 고난이 무엇인지, 그들은 그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나가는지를 조명한다. 저자는 노동계급을 하나의 동질적 집단으로 뭉뚱그리지 않는다. 콜브룩의 모든 노동계급이 공통으로 마주한 엄혹한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이들을 백인 남성과 여성, 흑인 및 라틴계 남성과 여성의 네 집단으로 나누어 내부의 차이에도 주목한다. 각 인구 집단이 삶, 미래, 자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가 단순하고 평면적인 차원을 넘어서 복잡하고 정교하게 기획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준다.
노동계급 백인 남성은 미국을 건설했다는 자부심이 훼손된 상황에 고립감, 목적 상실,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들은 파편화되고 해체된 남성성의 잔해들 앞에서 길을 잃은 채 서성이는 중이다. 한편 노동계급 백인 여성들은 어떻게든 ‘어머니’, ‘아내’의 역할을 지키려 악전고투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낸다.
콜브룩으로 새로 이주해온 유색 인종은 힘든 상황에서도 미래를 조금 다르게 전망한다. 흑인 및 라틴계 남성은 콜브룩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과거를 걷어내고 아이들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가난뿐 아니라 인종에 대한 차별로 어려운 일들을 겪지만 이 모든 고통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과정으로 수용한다. 이는 흑인 및 라틴계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동시에 유색 인종 여성들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설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한다.
사회 제도의 붕괴, 불평등의 고조, 정치적 소외…
오늘날의 정치적 바람을 이해하기 위해 꼭 읽어야 할 책
저자는 노동계급 내부의 차이를 섬세히 검토하는 동시에 모두를 아우르는 정치적 기획으로 나아간다. 콜브룩 노동자들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 가난한 노동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연대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파편화되어 개별적으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중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노조, 정당, 지역 사회, 공동체, 이웃 등 전통적 준거점을 완전히 휩쓸어 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자기 계발에 탐닉하고 개별적으로 구원을 갈구한다. 누구도 자신을 대변해주지 않는다는 박탈감에 선거를 포함한 모든 공적 제도를 불신한다. 공적 제도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 각종 음모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나아가 별다른 노력 없이 정부가 제공하는 혜택으로만 생활하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자신을 그런 사람과 구분하고자 한다. 좋은 삶은 자신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만 가능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가난이 야기한 현실적 어려움과 문화적 수치심을 개인 탓으로 돌리며 자기 자신을 책임의 주체로 내세운다. 요컨대, 콜브룩 노동자들은 정치에서 완전히 이탈한 상태다.
이 모든 것의 근원에는 고통이 있다. 저자는 자조, 경멸, 분노, 냉소, 희망이 어지러이 교차하는 콜브룩에서 ‘고통을 중심으로 구축된 친밀감’을 토대로 새로운 정치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불완전하고 파편화된 개인과 공동체가 고통받는 존재라는 동질감을 바탕으로 ‘우리’라는 감각을 형성해 다시금 정치적 주체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수치스러워하며 숨기는 대신 모두의 경험으로 의미화하면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사회적 유대의 가능성이 싹틀 수 있다. 저자는 “변화의 가능성은 고통 당사자들이 공동체를 꾸릴 때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공동체의 자원은 가난한 노동계급이 공유하는 계급적 고통이다.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낡은 희망 모델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스산한 탄광촌 콜브룩.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동맹과 미지의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